죄의 삯은 죽음이다?...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죄의 삯은 죽음이다?...

최재묵 4 4,298 2004.08.12 04:10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요 변하지 않는 참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기 싫어한다 그렇기때문에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더 늦게 죽을려고 정성을 드리고 치료를하고 억지로라도 운동을해서 몸을 건강하게 한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것은 제일 두려운 원초적인 공포이다.......

그리고

이 죽음이라는것이 두려워 미쳐버린나머지

우린죽어도 죽는게 아니고 육체가 죽으면 절대자에게 구원을받아 천국이란곳에가서 영원불멸 '죽지 않고' 평생 행복한삶을 살수있다고 과대망상증에 걸린집단이 있다

바로 개독이다

난 개독들의 실체를 이렇게 나름대로 정의하고있다

'죽음이 너무 두려운나머지 너무 죽기가 싫어서 우린 죽어도 죽는게 아니고 죽고나서 행복한곳에가서 영원히살거고 그러기위해선 예수라는 절대자를 믿어야한다'라고 과대망상증에 걸린 정신질환자들

개독들은 늘~ 전도할때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죽지 않고 천국에간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자들은 지옥에가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여기서 개독들의 성향역시 파악하고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우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한다

하지만 내가보기에 죽음을 제일 두려워하는이들은 개독들이다

인간은 죽는다

그어떤누구도 바꿀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죽음에 순응하며 죽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면서 천천히 죽음에대한 준비를한다

한마디로 받아들인다는것이다

근대 개독들은 이것을거부한다

죽음을 거부한다

왜?..

죽는게 너무너무너무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성경에 의지하고 예수에 의지한다 정신병으로보일만큼 집착한다

왜?..

성경과 예수는 죽음에서 구원해줄수있기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죽지 않는방법은 영원히 행복하게살수있는돌파구는 성경과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

너무너무너무 죽기 싫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미쳐버린나머지 특정 신과 책에 집착증을가진 정신병환자들

바로 개독이다

개독들은 치명적인결함이 있다

바로 우리가 무교인들이나 안티크리스트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죽음을 겁낸다고 인식하고 알고있는것이다

근대 문제는

그 겁낸다는것이 개독들이 생각하고있는 그성질의 것이 아니라는것이다

죽음을 가장 덜 겁내고 가장 잘받아들이는이들이 누구일까?

난 단연코 무교인들이라고 장담한다

무교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개독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죽음을 부정한다

그어떤누가? 저들을 저토록 바보로 만들고 집착하게만들고 과대망상증에 빠뜨렸는가?

그들은 왜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자연의섭리가 두려운나머지 미쳐버려서 우린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수있다고 세뇌가 되었나?

그모든답은

개독과 성경과 예수그리스도에있다

개독들이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하지 마라..

신은 없다

천국과 지옥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우리는 '현실'을 살고있기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무섭기에 발악을하는가?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 너무너무 무섭고 두려운죽음에대한 유일한 대답을 던져주는게 성경과 예수그리스도라서 그토록 집착하는가?..

난 당신들을보면 그냥 한없이 불쌍하다...

개독들이여

받아들여라

우린 결국 모두 죽는다

당신들이 아무리 발악하고 뒈지고나서 뒈지지 않고 영원불멸의 행복한 삶을 살수있다는 과대망상증에서 빨리 빠져나와라..

당신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두려워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허무와 본질의 가운대에 한번서서

조용히 생각해보라..

영원불멸 행복한 삶?..

그래...

있다고 쳐주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쳐주자..

니가 천국에 갔다...

전부다 똑같은놈들만 있겠지

악인도 없고

고통도 없고

불행도 없고

질투도 없고

시기심도 없고

하하하...

고통이 없다면 쾌감은 어떻게 존재할수있는가?

불행이 없다면 어떻게 행복이 존재할수 있는가?

질투가 없다면 관용은 어떻게 존재할수 있지?

시기심이 없다면 포용력은 어떻게 존재할수 있지?..

작용이 없다면 반작용은 어떻게 존재할수 있지?..

원인이 없다면 결과는 어떻게 존재할수있지?..

인이없다면 율은 어떻게 존재할수있는가?..

음이 없으면 양은 어떻게 존재하지?..

1등이 없다면 2등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악인이 없다면 선인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거에대해서 단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고 생각해본적이 있나?..

없으니까 지금도 찬양하고 천국을 좋아라 상상하고있겠지

당신들은 아주 기본적인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이있다면 그놈이 짜놓은 규칙과 섭리를 아직도 파악못하고있다

이세상 모든 이교도들이 없어졌다

이세상 모든고통과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세상 모든 무교인들도 없어졌다

오직 행복과 찬양 개독인들 너네만 남았다

너네만 남은곳이 천국이다

그게 행복한가?

그게 천국인가?..

끝없이 지루하고

끝없이 무료하고

끝없이 똑같은 삶이 영원 불변한 삶..

당신들은 그걸 추구하고있다

그건

천국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 저주받은.......

말로써 표현하자니까 힘들군..

천국이라는 테두리에

똑같은것을 추구하는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가지고

하나의 대상을 섬기며

고통도 없이 아픔도 없이 그어떤 부정적인것도 없는곳에서

영!원!불!멸!하게 산다...

하하하하....

행복이라는것은 왜있지?

행복이라는것은 어떻게 존재할수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행복을 추구할수 있었을까?

고통이라는것은 왜있지?

고통이라는것은 어떻게 존재할수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고통받이 않으려고 할수 있었을까?

단한번만이라도..

허무와

본질 가운대에 서서

조용히..

생각해보고..

신앙심을 갖기 바란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끊임없이 탐구하라

끊임없이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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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최재묵 2004.08.12 07:57
죄송합니다 제생각을 아직 글로풀어쓰기엔 모자른감이 있내요..; 일단 저글들중 '무교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무교인들

은 죽음을두려워하지 않는다'의 대목이 좀 애매모호하실탠대요 앞의 죽음을두려워하는것과 후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대목글자는 같지만 이둘의 뜻은 다릅니다 모라고 설명해야하지 -_-;

일단 첫대목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말그대로 이현실에서의 생이 끝나는것 그리고 죽음에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뜻함이고

후대목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함은 현실에서의 생이 끝나는것이 두려워하는것이 아닌 죽고난다음의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나 댓가..아씨 --; 모라고 말을못하겟내 --; 미친소리갓겟지만 이말이해하신분들 글잘쓰신분들중에 통쾌하게 해석좀 (-_-;;)해주세요;;
인드라 2004.08.12 04:49
개독들은 치명적인결함이 있다

바로 우리가 무교인들이나 안티크리스트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죽음을 겁낸다고 인식하고 알고있는것이다

근대 문제는

그 겁낸다는것이 개독들이 생각하고있는 그성질의 것이 아니라는것이다
<------------------아주 통렬한 지혜입니다...^^
제삼자 2004.08.12 04:35
** 5. 동로마 제국 땅을 돌아보고서 **

(이 부분도 필자가 직접 터어키의 성지를 순례했다고
생각하고서, 기행문을 써 달라고 하기에 만들어 본 것이다.
필자는 터어키에 가 본 적이 없다.)

기독교를 공인하고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군림했던 로마 제국도,
역시 이슬람의 알라신을 앞세우고 군림 했던
오스만 터어키(투르크)도,
거대한 폐허(ruins)만 남기고 이 지구상에서 살아졌다.

신약의 거의 절반을 기록한 예수(여호와)의 위대한
사도, 바울의 업적이 담긴 에베소 교회 등의 모습도
완전 폐허 뿐이다.

사도 요한이 여호와(예수)의 계시를 받고
신약에 기록을 남긴 7 교회의 모습도
쓸쓸하고 볼품 없는 폐허 뿐이다.

신의 발자취도, 인간의 발자취도,
이 우주 속의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불교에서는
제행 무상(諸行無常) 또는
제법 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 것 같다.

주체로서의 "나"는 물론,
객체로서의 "너"와 "모든 사물"은
그 실체가 없다고 한다.
결국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잠시도 머무름 없이
변하여 없어진다고 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의 모든 것은
형성되는 과정이 있고,
그것이 머물다가,
부서져서,
마침내 없어진다고 한다.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철칙이다.

거대한 폐허를 보면서,
옛날의 인류의 조상들이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냈을까를 더듬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적의 90% 이상이
종교(신)적인 것이다.

또 그 유적은 하나 같이 거대하다.
심심파적으로 구경을 하는 오늘의 우리는
즐거움이 되고 있으나,
그 것을 만들어야만 했던 당시의 사람들은
피와 땀을 쏟아내는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수고(고통)의 대가는
오늘에 이르러 폐허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폐허(無)를 위하여 피와 땀을 쏟았던 것이다.

신(神)들은 그 많은 사람들이 헛수고와
폐허를 만들어 내느라 피와 땀을 쏟아내게 한 책임에
대한 속죄(贖罪)를 무엇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다 종교의 이름으로
착취까지 하여 먹고 살아가는 인간들,
그들의 업보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할 죄(罪)로 남을 것이다.
무섭도다.

인류의 역사를 피와 땀으로 도배질하며 이끌어 온
종교 조직과 통치 조직,
그리고 여기에
부화뇌동(일정한 주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덩달아 좇음)
되어,
인간을 착취하고 기만하는 무리,
그들은 사람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기에
그런 무서운 짓을 할까?

역사(歷史)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로마 제국과 종교의 폐허(ruins)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마감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신(神)의 세계는 인간이 설명하고 가르치고
터득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도 속이고 이웃도 속이고 그리고
신도 속이는 무서운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얕잡아 보고서 벌이는 용서될 수 없는
무서운 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인간에게 행복을 주겠다며
감언이설로 닥아와서 정신과 노력과 돈을
착취하기 시작한 것이 신(종교)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종교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목숨까지 바쳤는가?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 신들의 행적은
모두가 폐허 뿐이다.

신(종교) 다음으로 인간에게 달콤한
미끼를 던지며 닥아온 것이 왕(통치 조직)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의 모든 왕(통치 조직)들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떠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희생되었는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산다고 한다.
이는 종교와 통치 조직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종교와 권력 앞에서 마냥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이러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고 자신을 돌아보고 직시해 볼 때이다.
내가 돈의 노예는 아닌지, 권력의 노예는 아닌지,
명예의 노예는 아닌지,
신(종교)의 노예는 아닌지, 정욕의 노예는 아닌지, .......... ,
수시로 점검할 때이다.

모든 것은 마음 장난이다.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여기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어떤 위치에 처하여도 평화는 얻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천국 맛을 볼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기고 만장(氣高萬丈)하게 굴러가듯,
신(神)의 역사 역시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인류의 역사가 흥망 성쇠를 반복하듯,
신의 역사도 역시 흥망 성쇠를 거듭한다.
이는 인류 사회와 역사 속에 나타났던 신들이
모두 허구였음을 증명하고도 남는 현상이다.

과학적인 이론을 대입하든,
기적적인 이론을 대입하든,
신이 인류 사회 속에 들어온 일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이 지구는 오로지 인간의 보금자리일 뿐이다.
인간의 행불행은 신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치의 차질 없이 자연 현상일 뿐이다.
단지 이 자연 현상에다 우리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서 아주 작은 변화를
얻어 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의 불행은 영원히 살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불행은 탐욕과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 학자 토인비는 늙었을 때,
그의 아들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아들 ; "아버지는 인류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습니까?"

토인비 ; "나는 내 인생이 결코 불행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일생을 살아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고는 싶지 않다.
나는 늙은 것에 안도를 느낀다."

죽음을 생각할 때,
생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에 의한 휴식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이라고 예견되기도 한다.
오히려 죽음이란 안식이 있어서
인생을 한 번 살아봄직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죽음의 안식에 크게 의지해서 훌류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바로 버트란트 럿셀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는 말했다.
"죽음이란 안식처가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라고.

인간이 마지막으로 믿을 곳은
고독한 일이지만 '자기' 뿐이다.
"자기가 바로 자기의 의지할 곳"이다.

우리 인간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학교 선생과
선배와 친구 등 누군가를 의지하여 자라 왔다.
이는 아직 '기둥'이 될 '자기'가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成人)이 된 후에도
이 의지하려는 습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어 걸핏하면 누구에겐가 의지하려고 한다.
"괴롭고 외로울 때 신(神)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유뢰한(有賴漢)'의 처지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엔가 의지하여 안심하는 삶에서는
참된 것은 나올 수가 없다.

참되고도 깊은 인생이란 남이나 신에게 걸고 있던
모든 의뢰심이 붕괴된 시점에서 펼쳐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의뢰자'에게서 버림 받아 본 사람만이
참된 자기를 돌아 볼 수 있다.

돈에 의지하고 있는 자도, 권력에 의지하고 있는 자도,
친구에 의지하고 있는 자도,
의좋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사람도,
인간은 죽을 때 오직 혼자서 숨을 거두는 존재이다.
신(神)에게 의지하고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받쳐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외에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바로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확고 부동한 '자기'를 우리는 갖고 있을까?
그러나 미련하고 악독한,
그러면서도 자신(自信) 없는 '자기' 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동(不動)의 '자기',
'잘 닦인 자기'를 얻지 않고는
실로 "귀한 보배는 얻을 수 없다."
'의지할 그 어떤 것'을 버리고
하루 빨리 '자기'와 대면하여
그 자기를 단련하고, 인생의 의의를 진실로 이해한
자기를 구축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기를 상실한 군중이 되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자기 아닌 다수의 인간"이 되어 단 한 번의
귀중한 인생을 허비하여도 괜찮은 것일까?
대중 속에 자기를 상실한 불쌍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끝낼 것인가?
평균인간은 되지 않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석가가 말했다고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독립자존" "나 혼자 높다."
는 가장 중요한 근본이 아닐 수 없다.

주제 넘는 짓이지만,
여기에서 석가의 가르침을 한 가지만
소개하고 이 글을 끝내려고 한다.

"자기가 바로 자기의 의지,
자기 외에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잘 다듬어진 자기에게서 실로
얻기 어려운 보배를 얻으리라." (법구경)

"스스로를 등불로 하고 스스로를 의지하여
타(他=사람, 금전, 권력, 신 등)를
의존하지 말라." (장부경전)
제삼자 2004.08.12 04:33
[성지(聖地) 순례란?]

* 이 글은 어느 교인이 자기 교회에서 성지 순례를 하게
됐다면서 필자에게 아는대로 정보를 달라고 하기에
생각나는대로 써 준 글이다.
이왕 써 놓은 글이기에 여기에 올려 본다.
필자는 그 성지(터어키)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역사와 지리에 대하여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부탁해 왔던 것이다.


[ Turkey에 대하여 ]


** 1. 지리적인 면에서 **

(1) 우리 한국 면적의 3.5 배에 달하는 나라이다.
(인구=6,500만, 수도=앙카라)

(2)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 보스포러스 해협 ;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아주 좁은(강 처럼) 바다이다. 그러나 너무 깊어서
오래도록 다리를 건설하지 못했었다.

(3) 지중해식 기후의 영향을 받는 나라이다.
즉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적으며,
겨울에는 따듯하고 비교적 비가 많이 오는 기후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도 지중해식 기후인데,
이 지중해식 기후 지방에서는 과일 재배가 성하다.

그러나 터어키는 큰 나라이므로
지역에 따라 기후의 차가 다양하다.
터어키도 한국 처럼 산악이 많은 나라이다.

** 2. 역사적인 면에서 **

(1) 터어키는 인류 최초의 통일 국가였던
앗시리아의 영토였으며,
다음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토였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로 이어진다.
마침내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다.

더 먼 과거로 올라가면
인류 최초의 철기 문명을 이룬
히타이트족이 터어키의 조상이다.
터어키가 페르시아의 영토로 있을 때,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페르시아가 패한다.

이 때부터 터어키 연안의 거의 모든 섬이
그리스의 영토로 되어 있다.
따라서 터어키와 그리스는
지금까지도 원수와 같은 사이이다.

(2) 로마 제국은 처음에는
기독교를 핍박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독교를 공인 한다. (밀라노 칙령, 313년)

(3)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
아타나시우스 파와 아리우스 파 사이에
치열한 종교 논쟁이 벌어진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여호와),
성자(예수), 성령은 삼위 일체라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예수를 신(神)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타나시우스의 손을 들어준다.
마침내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파문 되고,
기독교는 아타나시우스의 삼위 일체설을
정통으로 채택하게 된다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사람)가 어떻게
삼위 일체 신의 세계를 알았을까?

(4)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서울)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으로
이전한다.

기독교 공인 후 82년 뒤,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을
둘로 나누어 다스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마침내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완전히 갈라지게 만든다.

마침내 교회도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로 갈라선다(1054년).

(5) 두 로마제국으로 나누어진 후 81년 만에
서로마 제국 은 멸망한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순교자를 만들어 내고서
얻어낸 기독교 공인이거늘,
어찌하여 금방 멸망하게 되었을까?

그런데, 동로마 제국은 1,000 여 년 동안 지탱되다가,
이슬람교국(셀주크 터어키제국 및 오스만 터어키제국)으로
대체되어 다스려졌으며,
현재는 98%의 이슬람교도가 다스리는 터어키 땅이다.
이 땅이 이번의 성지 순례 여행 코스이다.
(주로 발칸 반도와 터어키 땅이 동로마제국의 중심지였음.)

(6) 터어키는 다른 말로 소아시아라고도 하는데,
이 땅은 바울이 4 차례에 걸쳐서 전도 여행을 한 곳이다.
신약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바울 서신은 모두
소아시아(발칸반도 포함)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로마서는 제외).
이 땅의 닷소는 바울의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7)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의 7 개 교회
즉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도 모두가
이 소아시아(터어키) 땅에 있다.

(8) 따라서, 발칸 반도(그리스 등)와
터어키 지방의 여행은
사도 바울과 요한의 행적을 돌아보고,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핍박 사례와
기독교 공인 후의
동로마 제국(특히 수도였던 이스탄불; 비잔티움)의
성지(?) 순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국이 멸망한 뒤의
이슬람교국이 다스린 모습도 아울러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도 겸하는 셈이다.

(9) 이스탄불은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0년에 이곳을 서울로 정하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렀다.

이때의 유적 중에 수도(水道)는 유명하다.
약 4 마일 떨어진 수원지(水源池)에서 물을 끌어들여
지하궁전(地下宮殿)이라는 거대한 물통에 저장하여
시민들에게 물을 배급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지하궁전(물탱크)의 기둥만도 1,100 개를 헤아리며,
자그마치 60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10) 세인트 소피아 성당--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시대의 가장 큰 유적으로서,
34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웠는데,
큰 불로 타버려 53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터어키)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후로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하다가,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쓰고 있다.
여호와의 신전이 이렇게 마귀의 손에
놀아나도 되는 것인가?

(11) 괴레메 동굴(로마 제국이 핍박할 때
기독교도들이 숨어 살던 곳)과
소피아 성당(기독교의 융성 모습)을 비교하면서
신의 섭리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12) 터어키 지방의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성지(?)는
신의 역사(役事)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신의 완전한 행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토록 희미하고 쓸쓸한 모습일까?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의 발자취(여호와 또는 예수의 발자취)가
폐허(ruins)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 사람의 발자취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특히 에베소의 폐허는 여호와(예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3. 신(神)의 역사일까? **

(1) 로마 제국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392년에는 국교로 정한다.
엄청나게 많은 기독교인들의 순교로 얻어진 혜택이다.
이만하면 신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던지,
무슨 일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되자 곧
서로마 제국(기독교를 신봉하는)은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멸망한다.

(2) 게르만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위에서 아타나시우스 파와
아리우스 파가 치열한 종교논쟁을 벌이다가
아리우스 파가 파문됐다고 지적한 바있다.

즉 삼위 일체를 정통 교리로 인정하고,
예수를 신이 아니라고 주장한 아리우스 파는 교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쫓겨난 아리우스 파의 주장은
게르만족에게 흡수되어 그들의 종교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에서 가짜(이단)라고 내쫓은 종파가
진짜(기독교; 로마 제국)를 멸망시킨 것이다.

(3) 다윗의 후손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이스라엘(히브리)의 왕위를 계승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던
신(여호와)은 아예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없애 버렸다.
그 이유가 다윗의 후손과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지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땅)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아랍 민족은 무엇인가?
그들은 알라신을 받들면서도 잘만 살아간다.

기독교에서 쫓겨난
가짜들에게 멸망한 로마(진짜; 기독교)와
알라신의 백성에게 멸망당한
다윗의 후손(이스라엘; 여호와의 백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4) 그런대로
동로마 제국이 망하지 않고 버티는 동안,
유럽에서는 수 십 개의 나라들이
엎치락 뒷치락 하는 사이에 어찌 어찌하여,
교황이 황제(왕)보다도 힘이 세어지게 된다.

황제(왕)가 추운 겨울에 밖에서 멍석을 깔고
재를 뒤집어 쓰고 엎드려 빌어야
교황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사건도 있게 될 정도로
교황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밤낮 3일 동안 맨발로 애걸하여 파문 해제의 사면을 받는
사건도 일어났다 (1077년 카놋사의 굴욕).

그런데 동쪽으로 갈라져 나간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교황의 손아귀에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면서
교황까지 주무르려 했다.

** 파문(破門)---유럽 중세 때의 파문은
예수에 의한 내세의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왕의 경우는 신하로부터
충성과 의무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 당하자,
반대파 제후들의 폐위 운동이 일어나므로
굴욕을 무릅쓰고
교황에게 애걸하여 용서를 받게 된다.

** 반대로, 십자군 전쟁 후에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자,
프랑스 왕 필립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아비뇽에 유수(幽囚=잡아 가둠)시키는 사건이 벌어진다.
인간과 신(여호와=예수)이 서로 이기려고
엎치락 뒷치락 하는 모습이다.

** 이번 여행은 여호와신과 알라신 사이에
엎치락 뒷치락 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알라신이 승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현장에 여호와(예수)신의 자손들이
성지 순례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5) 그러던 중, 셀주크 터어키(투르크;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절반 이상 빼앗고, 또 수시로 침략해 왔다.

셀주크 터어키는 기독교인들의
성지(예루살렘) 순례도 핍박하고 방해했다.
견디다 못한 동로마 황제는 교황(우르반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동로마 황제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교황은
"1. 성지(예루살렘)를 탈환하자.
2. 동서로 나누어진 교회를 통합하자."
고 제창,
1096년부터 200년 동안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200년 동안에 모두 7 차례 원정 길에 올랐지만
모두 실패한다.
(1차 때, 잠시 승리하는 듯했으나 곧 실패함.)

(6) 마누라를 믿을 수 없어서
가죽이나 금속으로 만든 정조대를 채워 놓고서
보무도 당당하게 여호와(예수)의 이름으로 출전한다.
위로는 황제(왕)로부터
아래로는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일어선 것이었으나,
그러나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행 중에 마누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속임수를 쓰던 모습과 흡사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결국 마누라를
빼앗기고 (빌려준 셈이지만),
십자군은 마누라를 빼앗기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누라를 빌려준 대신에 많은
돈을 벌었지만,
십자군은 아무 소득 없이 멸망한다.

결과로서,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이 때부터 기독교는 부서져내리기 시작한다.
비참한 아비뇽 유수(교황을 잡아 가둠) 사건도 발생한다.
(그외의 결과가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7) 셀주크 터어키 다음에 세워진
오스만 터어키(역시 이슬람교)에 의하여
동로마 제국은 완전히 멸망한다.
알라신이 여호와(예수)신을 멸망시킨 셈이다.

오스만 터어키(투르크)는 1923년까지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서
번영하던 이슬람의 대제국이다.

이번 여행에서 보게 될
"오스만 투르크의 실크로드 관문"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마호멧 2세 황제)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려고 쳐들어간 관문이다.

(8) 로마 교회(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동물 처럼 잡아 죽이기를 식은 죽 먹듯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을 성지라 하여 껌뻑한다.

작년(2000년)에 비로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으로 사과?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9) 이슬람 교도들이 점령하여
알라신을 받들고 있는 이스탄불(터어키)과
예루살렘은 성지인가 마귀의 소굴인가?

또 그곳의 주민들은
기독교의 절기에 맞는 행사를 벌이는데,
이는 순전히 성지 순례자(여행자)들에 대한 장사속이다.
이런 것을 보는 것도 성지 순례인가?
이슬람교도 98%인 나라를 여행한면서도 성지 순례인가?

(10) 성지를 순례하고 나면 신심이 강해져야 할까,
아니면 회의를 가져야 할까?
사람은 제손으로 거대한 궁궐, 교회, 신전을 만든다.
그런 다음
그 건축물에 압도되어 왕이나 신 앞에 굴복되고 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느 지방검찰 지청장은 영화 "십계"를 보고서
신심을 얻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영화는 누군가가 돈을 벌기 위하여 만든 허구이다.
거기에서 어떻게 신심이 나오는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4. 기독교의 5대 본산(성지) **

(1) 예루살렘---예수의 행적
(2) 알렉산드리아---바이블 기록 행적
(위의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다.)
(3) 안티오키아---바울의 전도 여행 행적
(4)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이스탄불)---기독교 공인 후의
동로마 제국의 행적 (이번 성지 순례의 코스)
(5) 로마---서로마 제국과 중세 시대의 교황들의 행적

그 중에서 (1) (2) (3)은 일찌감치
이슬람 세력 아래 들어가고(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됨),
남은 것은 겨우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콘스탄티노플 뿐이었다.
그러나 서쪽의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쪽의 그리스 정교회(Orthodox)로 완전히 쪼개지고 만다.

지금은 (5)로마를 제외하고 모두가
이슬람 세력의 땅으로 바뀌어 있다.
원주민들은 관광객(성지 순례자)을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하여,
철철이 기독교 행사를 꾸며내고 있다.
그들은 모두 그날 그날 일당을 받고 움직이는 가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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