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반기독교발췌편3 -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반기독교발췌편3 -
()는 해석입니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나는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을 향해 말하고자 한다. 그들은 다시 배우고 가르침을 변경할 자들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신체로부터 떠나도록, 그리하여 침묵시켜야 할 자들인 것이다.
"나는 육체이며 영혼이다." 라고 어린아이들은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어린아이들처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각성한 자, 통찰한 자들은 말한다. "나는 오직 육체일뿐, 육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이란 다만 육체의 내부에 속한 그 무엇을 나타내는 언어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갖는 다양한 실체이며, 전쟁인 동시에 평화이며, 양떼인 동시에 목자이다.
해석 : 여기서 '이성'이란 정신과 육체의 다양한 기능, 즉 육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생명 단위의 의식 또는 지성을 포괄하는 이성을 말하며, '하나의 의미'란 육체의 여러 기능의 배후에서 각 기능을 규정하는 근원적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가 의미하는 것은 세계의 근원적 진상, 즉 권력에 대한 의지이며, '양떼'와 '목자'는 지배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한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대들의 조그마한 이성(자아)도 그대들의 육체의 도구이다. 그대들의 커다란 이성은 조그마한 도구이며 장난감인 것이다.
그대들은 '자아'라고 말하며 이 말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위대한 것은 - 그대들은 이것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 그대들의 육체이며, 육체의 커다란 이성이다. 이 커다란 이성은 '자아'를 말하지 않고, '자아'를 행한다.
감각이 느끼는 것, 정신이 인식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감가과 정신은, 스스로가 만물의 목적이라고 그대를 설득하고 싶어한다. 그 정도로 감각과 정신은 허영심이 강한 것이다.
감각과 정신은 도구이며 장난감이다. 그 배후에는 역시 '자기(DesSelbst)'가 있다. '자기'도 역시 감각의 눈으로 탐구하고 정신의 귀를 기울인다.
'본래의 자기'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찾는다. 그것은 비교하고, 억압하고, 점령하고, 파괴한다. 그것은 지배하며, 또한 자아의 지배자이기도 하다.
형제여, 그대의 모든 생각과 감정의 배후에는 '본래의 자기'라는 강력한 명령자이며 낯선 현자가 서 있다. 그는 그대의 육체 속에 살고 있다. 그가 바로 그대의 육체인 것이다. 그 누가 이를 알 것인가!
그대의 가장 훌륭한 지혜보다도 그대의 육체 속에 더욱 많은 이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육체가 항상 그대의 가장 훌륭한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의 '자기'는 그대의 '자아'와 자아의 자랑스러운 도약을 비웃는다. "사상의 이러한 도약과 비상은 나에게 있어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자기'는 혼잣말을 한다. "그것은 나의 목적에 도달하는 하나의 우회로이다. 나는 '자아'를 끌고 가는 줄이며, 또한 '자아'의 모든 개념을 제시하는 자이다."
'자기'는 '자아'에게 말한다. "자, 고통을 느껴라!" 그러자 자아는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한다. 자아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는 '자아'에게 말한다. "자, 즐거움을 느껴라!" 그러면 '자아'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주 즐거움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한다. '자아'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한마디 하고자 한다. 그들의 경멸은 그들의 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존중과 경멸, 가치와 의지를 창조한 것은 무엇인가?
창조적인 '자기'가 그 자신을 위해 존중하는 것과 경멸하는 것을 만들었으며, 그 자신을 위해서 기쁨과 슬픔을 만든 것이다. 창조적인 육체가 그 자신을 위해, 일종의 의지의 손으로써 정신을 만든 것이다.
그대,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리석음과 경멸에 있어서까지도 오로지 그대들의 '자기'에게 봉사하고 있다.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육체를 경멸하는 것은 '자기'가 죽기를 원하며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자기'는 가장 갈망하는 것, 즉 자신을 초월하여 창조하는 일을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모든 정열인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자기'가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래서 그대들의 '자기'는 몰락하기를 원하며, 그래서 그대들은 육체를 경멸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대들은 더 이상 그대들 자신을 초월하여 창조할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지금 인생과 대지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의 경멸하는 눈초리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질투가 깃들여 있다.
나는 그대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그대,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나에게 있어서 초인을 향해 건너가는 다리는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6-03 18:30:45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