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by 오디세우스) (펀글)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자유의지 (by 오디세우스) (펀글)

자유인 0 2,422 2003.09.30 06:25
카페 기독교 비평에서 퍼 왔습니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인데... 이 홈에서는 못 본 글이라 그냥  하나 퍼 왔습니다.



자유의지 (by 오디세우스) 
 
  번호:16419  글쓴이:  언제나..겨울
 조회:28  날짜:2003/09/29 17:37   
 
 
.. 


.. 1. 프롤로그
'자유의지'는 그동안 이 카페에서 흔히 다루어져온 단골메뉴이며, 나 또한 예전에 몇번인가 논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가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자유의지라는 것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며, 그 의미를 잘못알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오류중의 하나는, "자유의지"에서의 "자유"라는 말을 분리하여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방종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자유의지를 남용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기독교인들의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뜻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인간이 신, 운명, 초자연적 존재 등의 간섭을 배제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선택권을 말한다. "

따라서 자유의지는 방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며, 억압이나 구속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운명, 숙명, 신의 의지 등과 대립되는 것이다.
또한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라는 것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제약이 가해지지만, 자유의지에는 그러한 제약이 가해져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를 논함에 있어서 정작 핵심이 되는 것은, "얼마나 절제하며 책임감있게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운명이 정해져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은, 신이 존재하느냐 안하느냐처럼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예정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우며 주체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느끼게끔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갈 이야기는, 인간에게 진정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어떠한 속성으로, 어떠한 논리적 딜레마를 발생시키는가에 집중될 것이다.
그래도 혹자가 나에게 "자유의지의 존재유무"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모른다......"

2. 자유의지가 던지는 논리적 딜레마들..
기독교인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자유의지는 신의 예지력을 제한하는 특성이 있다. 자유의지를 긍정하면 신의 전지함이 부정되고, 신의 전지함을 긍정하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된다. 즉, 신이 갑이라는 사람의 운명을 알고 있다면 그는 결코 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주어진 운명을 벗어남과 동시에, 신이 한낱 인간의 운명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결과가 빚어지고, 이는 전지전능함의 부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의지와 신의 예지력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함은, 신의 전지전능함이 제약받는다는 것이며, 신 또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신의 전지전능함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동시에 긍정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이 의지로써,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한다 함은, 인간의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있으되, 알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능력은 있되,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전지전능과 자유의지의 적대적 모순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한은 전지전능하지 않고, 능력을 실행하는 한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그럼에도 비교적 합리적인 대답이 될 수는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3. 자유의지 - 신의 선물인가, 지옥의 열쇠인가.
기독교인들은 흔히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정말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잇는 것이라면, 그것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지옥의 개념을 결부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그들의 논증인 즉, 인간은 이 자유의지 때문에 죄의 상태에 빠졌으며, 그리하여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웃긴 얘기인지 기독교인들은 알까?
자유의지가 지옥의 열쇠가 된다면 그것이 어찌 신이 내린 사랑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전지전능하며 사랑으로 충만된 신이 인간이 죄의 상태에 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옥의 열쇠를 내렸다는 모순은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서 지옥과 자유의지를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인 자유의지가 고통스러운 것이 되게 하며, 신 자신도 고매한 속성에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고 유용하게 잘 쓰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4. 몇가지 덧붙이는 이야기들..

1) 예정설의 위험성 : 즉, 모든 것을 신이 예정하고 있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는 것이며,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신의 뜻 안에 머무른다. 지옥갈 사람과 천국갈 사람이 다 정해져 있다면, 굳이 믿음을 가지려는 이유가 무엇이며, 성경 말씀을 실천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차피 불신자가 되는 것도 신의 뜻, 광신자가 되는 것도 신의 뜻... 따라서 인간의 모든 노력이 부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지옥갈 사람, 천국갈 사람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면.. 지옥갈 사람을 미리 정해놓은 신이 과연 공의의 신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2)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 유다에겐 자유의지가 없었다. 예수는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또한 메시아 출현의 예언중에는 인자가 죄인이 손에 팔리워야만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행위는, 신의 의지이며, 모든 비난도 결국은 신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이 말을 수긍할 수 없는 사람은, 유다가 예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예수를 팔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 예수는 거짓말쟁이가 되며, 말씀의 완성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성경에서의 욥기를 보면, 사탄과 하나님이 내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차피 인간의 자유의지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사탄도 하나님도 욥의 선택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의지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욥이 자유의지로 시험을 끝까지 통과한게 아니라면, 보상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 또한 신의 뜻대로만 행하는 로보트라면, 시험을 내릴 필요가 어딨는가.
결국 욥의 신실함에 걸었던 하나님이 내기에 이기지만, 인간이 한낱 사탄과 신의 내기에 이용당했다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아울러, 시험과정에서 죽은 욥의 자식들과 종복들의 목숨은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4) 한가지 더, 신이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경우는 아브라함의 경우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이 되어서야 야훼는 "네가 나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고 말한다. 즉, 아브라함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지는 신도 예측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자식을 바치라는 명을 내림으로써 인간을 시험하는 신은 결과를 알았건 몰랐건간에 선함과 전지함 둘 중의 하나를 상실해야만 한다.. 결과를 알고서도 시험을 내렸다면 선하지 못한 것이요, 결과를 모르고 시험을 내렸다면 전지하지 못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는, 신의 무지함을 증명하는 경우에 종종 인용되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이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다.

5. 기독교인에게 드리는 말
난 이 글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의 교리가 모순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몇번인가의 지난 글들에서 말했다시피, 인간의 언어는 모순을 초래할 수 밖에 없으며, 언어는 현상에 비해서 열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이나 자유의지의 실재 여부에 대한 인간들의 최종대답은 언제나 "모른다" 일수밖에 없다. 알게 되는 순간에 신은 더이상 신이 아니며, 자유의지가 더이상 신의 축복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나 종교, 그 외의 선험적 영역을 이성과 논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절대진리라고 바락바락 우기는 것은 더 웃긴 일이다. 따라서,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논리는 절대진리라 주장되는 명제들에 대하여 그 진실성을 검증하는 도구인 것이며, 아무리 객관적,경험적으로 검증불가능한 선험적인 영역이라도 기초적인 논리와 상식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종교가 왜 진리이며,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기독교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그리고 기독교 외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래도~~~ 입니다" 화법을 자주 쓰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논리성과 객관성을 싸그리 무시해버리는 화법이다. 쉽게 말해 땡깡이다. 땡깡은 결국 감정에의 호소에 불과한 것이며, 스스로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임을 내비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진리"에 대하여 통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동의할 수 있으며 어떻게 동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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