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로서의 근대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이데올로기로서의 근대

조한주 0 3,583 2004.08.21 07:05
 



살람파수(Salampasu) 원주민은 아프리카 킨샤샤-콩고의 한 부족이다. 암흑같이 패인 눈, 드라큘라 같은 이빨, 부딪치면 머리가 뽀개질 듯한 이마, 송전탑을 닮은 머리 장식, 거기다 투박하지만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칼까지 손에 들고 있다.



 게다가 피부색은 얼굴을 가린 탈보다 더 뻘겋다. 그 앞에 얼굴이 창백한 가녀린 여인이나, 아니면 어여쁜 아이라도 한 사람 있다고 생각해 보라. 누가 대체 이 기이한 형상의 족속을 야만적인 미개인이라고 하지 않을 것인가!



 인간의 위대한 특징이라는 이성 같은 것은 가면 뒤에도 없을 듯 하고, 손에 든 칼은 주술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어 보인다. 이성과 대립되는 비이성. 합리와 반대되는 비합리, 과학과 반대되는 주술, 한마디로 문명과 반대되는 미개와 야만, 그것이 이들을 보면서 서구의 합리적 이성이 느꼈던 생각이었다.



 생활방식과 문화의 차이는 이렇듯 헤겔적인 문명과 야만,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 속에선 야만과 비이성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들은 인간이란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들은 이성을 갖지 못한 존재, 즉 동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은 소나 말을 사용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만약 이들이 인간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야만과 미개, 비이성에서 벗어나 여호와(!)의 품 안에, 이성의 품 안에 들어가게 해주어야 하고, 문명의 빛을 쪼여서 비합리적이고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모든 것을 녹여 없애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성' 안으로 동일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이성의 반성적 능력이고, 차이를 싸안는 이성의 포용력이다. 그것이 이들의 삶을 문명을 향해 '진보' 하게 할 것이고, 이들의 머리를 과학으로 "계몽' 해 줄 것이다.



 이를 헤겔은 '발전' 이라고 불렀다. 발전이라구?





사실 다른 피부, 다른 모습을 가진 인종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을 이성과 비이성,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대립' 으로 포착하여, 배제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계몽시켜 동일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더구나 그것을 철학으로까지 '승화' 시킨 것은 서구 근대문명에 독특한 요소다.



 그런데 거기에는 약간 곤란한 문제가 있다. 인도나 중국의 거대한 문명은 물론, 야만족이라고 생각해서 노예로 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도 마야나 아즈텍, 잉카 같은 거대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서구와는 다른 종류의 이 이질적인 문명은 과연 문명인가 야만인가? 마야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친다는 이유로 야만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자신들과 너무도 다르지만 '문명' 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저 이질적인 세계를 대체 어째야 할 것인가?



 헤겔은 여기에 묘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미개와 야만에서 문명과 이성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중간 단계들이요 역사적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서양 근대세계로 끝나는 이성의 역사적 발전 안에, 저 이질적인 세계들을 발전 단계에 따라 시간적으로 배열한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철학' 이라고 불렀다.



 이런 점에서 헤겔식의 역사철학이란, 발전이라는 관념을 이용해 이성이 정점에 자리잡은 역사 안에 이질적인 세계를 담는 방법이었던 셈이고, 따라서 결국 '발전' 하면 서구의 문명을 닮게 되는 '동일화' 과정임을 입증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역사가 인간의 힘에 의해 더 나은 단계로 진보해 나간다는 생각은 서양의 근대가 만들어낸 역사관이다. 그것은 현세에서의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신의 의지이며 현세의 삶은 후세의 신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간주하였던 서양 중세의 이른바 기독교 사관이 근대의 문지방 역할을 하였던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중세의 기독교 사관이 한편으로는 르네상스의 이른바 휴머니즘에 의해 부정됨과 동시에 세속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개혁에 의해 계승됨과 동시에 합리화되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중세적 세계관과의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이 서양의 근대 계몽사상이었다. 그 근대 계몽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며,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이성의 힘에 의해 자연을 통제할 수 있고 또 이성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사회로 전진해 나가게 된다. 물론 그 전진의 역사적 귀결 혹은 목표는 경제적으로는 근대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근대 민족-국가, 사회적으로는 근대 시민사회였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들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배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계몽적 합리주의가 부르주아 권력을 뒷받침해 주면서 서양의 사유 전통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과정은 역사적으로 서양이 비서양 지역을 침탈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과 동시에 일어났고 또한 그 과정의 불가분의 일부였다.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말하듯이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이라고 불리는 그 과정은 르네상스, 종교 개혁과 함께 서양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한 또 하나의 문지방이었다. 그 문지방을 넘어선 서양의 식민주의자들은 계몽적 합리주의를 비서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지배 담론/식민 담론으로 작동시켰다. 그들은 휴머니즘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진보의 역사관, 또는 근대적 자본주의·민족-국가·시민 사회 등과 같은 개념이나 사유 방식이나 제도들이 분명 서양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기원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들이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보편적인’ 것인 양 선전하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이미 그러한 개념들이나 사유 방식이 제도화되어 가면서 부르주아의 지배권이 확립되고 있었지만, 서양과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었던 비서양 지역에서는 당연히 그러한 것들이 부재하였다. 서양은 바로 그 역사적 ‘차이’를 식민지배의 근거로 삼았다. 즉 서양의 식민주의자들이나 제국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적 힘에 의해 진보하고 있는 서양과는 달리 비서양 지역은 원래 진보할 수 없는 곳, 비합리적인 제도와 관행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 아직도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우매한 곳,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지 못하여 물질 생활에서 여전히 미개한 상태에 빠져 있는 곳,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곳으로 묘사하면서 비서양에 대한 역사 지식을 생산하였고, 그 같은 역사 지식에 기초하여 비서양에서의 역사의 진보는 자체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미 진보의 길에 접어든 우월한 서양이 열등한 비서양을 문명화시키고 계몽시키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시키는 거룩한 사명이라고 강변하였던 것이다. 이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적 진보, 이성과 과학, 합리주의 등, 요컨대 서양의 근대성을 구성하는 그 요소들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가치 규범으로서 추상되면서 비서양의 역사(의 후진성 혹은 부재)를 해석하고 단죄하고 지배하는 권력/지식으로, 비서양의 역사를 서양의 역사에 종속시키는 지배 담론으로 작동하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은 비서양 역사의 인식 주체가 되었고, 비서양은 주체로서의 서양의 주변에 있는 낯선 타자로 위치지워졌던 것이다.

 서양의 식민주의적 지배는 비서양의 주민들에게 역사가 일정한 방향과 목표(서양이 현재 도달해 있는 근대)를 향해서 진보하는 것이 보편적인 역사 과정이라는 것, 보편적 이성은 역사적 진보의 인간적 원동력이라는 것, 이성적 지식으로서의 과학이야말로 자연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조건, 심지어 인간의 육체와 정신마저도 합리적으로 개선시킨다는 것을 자명하게 생각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따라 그 동안 비서양 지역에서 존재해 왔던 (서양의 기준으로 볼 때의) 비합리적인 정치 제도와 경제 구조와 생활양식 등은, 그리고 비합리적인 역사관과 시간관과 인간관 등은 서양이 강제한 기준에 따라 비교되고 해석되고 평가되면서 동시에 교정되고 배제되고 종속되었다. 식민주의자들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그 같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서양의 우월한 사유 방식을 식민지에 설립한 정치 기구(근대적 민족-국가 체제와 대의제 정부)나 행정 기구(근대적 관료제)나 경제 기구(자본주의적 시장)로, 혹은 근대적 학문 기관(대학)이나 근대적인 의료 기관(병원)으로 표현하였고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기구들을 통해 서양의 사유 방식이 비서양의 주민들의 머릿속에 이식되고 그들에 의해 소비됨으로써 서양 부르주아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비서양 지역에 착근(着根)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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