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생각하기에는 <행위는 어렵고>, <믿음은 쉬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꼴 같잖은 주게에 바울이 명언을 뱉어 놓습니다.
<사람은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 여호와(예수)가 은혜로 값없이 내리는 은혜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 받는다> 라고.
다시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행위로는 불가능하지만, 값없이 은혜로 얻은 믿음만으로 천당에 갈 수 있다.>
이런 말이지요.
그러나, <행위>도 어려운 것이지만, <믿음>은 완전 불가능이란 것을 모르고서 하는 말입니다.
<행위>는 어렵기는 해도 사람이 시도는 해 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믿음> 즉, 神에 대한 믿음은 전혀 시도해 볼 수 없는 불가능의 경지입니다.
입으로 건성 입으로야 <믿습니다>하고 떠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의심> 또는 <회의>로 가득 차있습니다.
알 수 없는 것(神)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모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믿는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는 말과 전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믿는다는 말는 신을 놀리는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교에서 <신을 믿는다>는 말은 신을 가지고 장나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천벌을 받고 지옥으로 갈 엄청난 죄악이지요.
그래서 꼴 같잖은 주게에 바울이 명언을 뱉어 놓습니다.
<사람은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 여호와(예수)가 은혜로 값없이 내리는 은혜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 받는다> 라고.
다시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행위로는 불가능하지만, 값없이 은혜로 얻은 믿음만으로 천당에 갈 수 있다.>
이런 말이지요.
그러나, <행위>도 어려운 것이지만, <믿음>은 완전 불가능이란 것을 모르고서 하는 말입니다.
<행위>는 어렵기는 해도 사람이 시도는 해 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믿음> 즉, 神에 대한 믿음은 전혀 시도해 볼 수 없는 불가능의 경지입니다.
입으로 건성 입으로야 <믿습니다>하고 떠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의심> 또는 <회의>로 가득 차있습니다.
알 수 없는 것(神)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모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믿는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는 말과 전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믿는다는 말는 신을 놀리는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교에서 <신을 믿는다>는 말은 신을 가지고 장나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천벌을 받고 지옥으로 갈 엄청난 죄악이지요.
행위는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믿음은 전혀 불가능한 경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