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퐁 주교, 기독교 박애주의자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스퐁 주교, 기독교 박애주의자

인류애 0 3,307 2003.09.16 12:08
기독교에서 진보 세력 중 하나인 주교파(Episcopal church)의 스퐁 주교가 최근 한 교회에서 한 설교에 대한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의 출처는 역시 www.infidels.org이고요. 길지 않습니다. 음미하세요.^^
꼴통 개독들(근본주의적 기독교인), 이들은 이단인가요?



스퐁 주교, 기독교 ‘박애주의자’

셜리 브레이브맨 씀
 

2003년 9월 3일 라스베가스 매릴랜드 파크웨이 크라이스트 에피스코펄 교회에서 그의 강연을 듣고서

비록 그는 성경에 묘사된 어떠한 초자연적 사건을 믿지 않지만, 존 셜비 스퐁은 사람들이 그를 무신론자로 꼬리표 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기독교인이고 특히 주교파(Episcopalian) 병원에서 태어날 정도로, 주교파 신자이다. 그의 교회는 처음으로 여성을 성직자로 인정함으로써 그리고 신자의 반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동성연애자 주교를 인정함으로써, 미래로의 길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진보에 대한 스퐁 주교의 리더쉽을 신뢰한다.

헌신적인 팬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그의 2권의 책: 부활: 신화 혹은 사실?(Resurrection: Myth or Reality?) 그리고 근본주의로부터의 성경 구출하기(Rescuing the Bible from Fundamentalism) 에 그가 사인할 수 있도록 거기에 일찍 도착했다. 나는 그가 매우 젊고 열성적임에 기분 좋게 놀랐다. 그의 사진은 그를 공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그는 겸손한 방식으로 개인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네바다주의 여성 주교인 캐더린 쇼리 주교가 거기서 준비 사항들을 보조하고 있었다. 스퐁은 그녀에게 옷깃 마이크를 부탁했다. 그는 설교단 뒤에 서있는 것을 싫어한다.

교회는 만원이었고 그가 말하기 시작하면서 잠잠해졌다.

“우리는 또 하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는 말했다. “첫 번째 개혁이 차(tea) 파티로 보이게 만들 그런 것. 결국 첫 번째는 단지 권위와 섬세한 교리의 선을 넘었습니다. 이번 것은 하나님을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유신론적 개념은 오늘날 그리고 이 시대에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입니다.”

경전을 인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요점을 입증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이집트의 장자들을 다 죽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너무 멍청해 표식 없이는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인들로부터 구별할 수 없었기에 희생양의 피로 그들의 문에 표시해야 했다. 나는 그의 미묘한 유머감을 발견해서 기쁘다. 그렇지만 그리고 나서 당신이 폭탄을 떨어뜨릴 때, 당신은 분위기를 가볍게 하는 유머가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사악한-기질의, 망가진 피조물이 자기가 좋아하는 가족만 빼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홍수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입니까? 그렇게도 전능한 존재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좀 더 멋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도 있었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뒤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으나, 그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그 신성한 상징들인 십계명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그것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그것들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얼마나 도덕적입니까? 십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 혹은 소를 탐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유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십계명은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간음에 관한 6번 째 계명은 어떠한가? 솔로몬의 천 여 아내들을 가졌을 때와 남자가 형편이 허락하는 한 많은 아내들을 가질 수 있을 때 간음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확실히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동료 족장의 소유물을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명백하게 계명들은 현대화 되야 할(updating) 필요가 있다. 그것을(현대화), 우발적으로, 더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예수 말했을 때 그가 했다.”

승승장구하며 주교는 성경적 하나님과 포웰식(Fawellian; 근본주의자 Fawell이 주장하는) 사고 방식 깔보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이제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사에 간섭할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6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에이즈로 고통 받고 죽게 한다면, 간섭할 능력이 있는데도 하지 않으면 – 그렇다면 그는 부도덕합니다.”

사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이 거의 기록책을 관리하는 회계사처럼 보임을 제안한다. 약간은 산타클로스와 같이, 그는 목록을 만들고 두 번 점검한다. 그는 죄, 두려움, 상 그리고 벌을 가지고 다스린다.

그리고 다음으로 성경의 웃기지도 않은 기적들이 있다. 여호수아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자 태양이 멈춰 선다. 그는 데이라이트 세이빙 타임(우리말로 서머 타임-번역자역)의 첫번째 사용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적들을 계속 도륙하도록 하기 위해 여호수아를 위한 이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의 관점에서 이것이 불가능함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또한 별들이 사람들을 이끌어 말구유로 인도하도록 하늘을 이리 저리 방황할 수 없음을 안다. 이것들은 초기, 더 무지한 신자들을 위해 필요했던 기적들이었다.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그가 믿는 것인데) 간략히 짚으면서, 그는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들 자신들이 선택한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관해 강력하게 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라고 그는 말하고, 내 옆 사람들이 “아멘!”이라 속삭인다.

인간적인 하나님

그리고 나서 주교는 그의 하나님을 묘사한다.(그가 이것 함을 들은 적이 처음이다.) 평소와 같이, 그는 이 고대인들이 설명될 수 없었던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히브리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은 너무도 거룩했기에 그들은 그의 이름 조차 쓸 수 없었고 대신 약자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바람’, 하나님의 바람이라는 뜻의 루취(Ruhch)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바람의 힘은 느꼈으나, 볼 수가 없었으므로, 루취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은유가 되었다. 그들의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진흙으로 사람을 성형하나 사람은 단지 거기 누워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자 사람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창세기 2:7] 하나님의 바람이 개개인 안에 있었고, 그 바람을 인간들이 갖고 있는 한 그들은 살아 있었다. 숨이 그들을 떠났을 때, 그들은 죽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에스겔 37장에서, 이스라엘이 정복당했을 때, 선지자는 죽은 자와 말라빠진 뼈들로 (이스라엘에 대한 은유) 가득찬 계곡의 꿈을 꾸었고, 묻는다,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말한다, “물론이지, 생명의 숨을 그들에게 불어 넣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행했을 때, 뼈들은 꿈틀거렸고, 제자리로 와서, 살이 되었다: 발가락 뼈가 발 뼈에 연결되었고 발 뼈는 다시 연결되었다 – 당신이 생각해 보라.

“확실히,” 주교는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저 밖 어딘가에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몸짓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는 생명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는 몸짓으로 청중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설명하기를, “하나님은 빛이다” 와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간단하게 말한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구약의 선지자 미가로부터 온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삶에 사랑과 빛을 더하면, 우리는 잘 그리고 가장 충만하게 살아지는 삶의 형성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복음서들을 통해,” 주교는 말한다, “예수는 그가 세속적 권력을 위해 오지 않았음을 확실히 합니다; 그의 백성을 종교적으로, 의롭게 혹은 도덕적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닙니다; 권력이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게 하기 위해 왔습니다.”

예수는, 그러면, 충만한 삶의 하나님이다. 사랑하고, 살아 있고, 사람을 양육하는 하나님. “미워하거나 스스로 다른 인종, 성별, 문화 혹은 성적 태생의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아멘, 나는 주위 사람들과 함께 속삭인다.

질문들

설교가 끝난 후, 주교는 통로를 걸으며 질문을 받는데, 여기서 그의 천재성과 성실성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기도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는 6년 전에 죽은 그의 첫번째 부인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가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고 알려졌을 때,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의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살자, 그들은 확신에 차 말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됨을 보세요.”라고. 그러나 그 때 그녀는 죽었다. 그렇다면 기도들이 실패했는가? 기도란 아마 타인들을 위해 할 때 도움이 된다고 그는 부드럽게 설명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일 기도들을 점검하는 스위치보드를 갖고 있을까? 주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기도들에 대해 감사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당신을 걱정해주고 당신에 관해 생각해 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선교에 관해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역사로 되돌아 간다. 매 정복 전쟁 후에 영국인들은 사람들을 전환시키고 복종시키기 위해 선교사들을 보냈다, 마치 오늘날 이라크에서 세례교인(Baptists)들이 하듯이. 선교의 기본적 믿음은, “나는 유일한 진리를 갖고 있고 당신은 틀리며, 당신이 내가 하듯이 믿을 때만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다” 이다. 이 철학의 우월주의는 확연하고 비도덕적이다, 그는 굳게 말한다.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질문. 그는 답하기를, “성경에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탓하지 말라.”

주교와 논쟁하기를 명백히 원하는 한 젊은이로부터의 또 다른 질문. 그는 그에게 그리고 그를 위해 일어난 기적에 대해 얘기하고, 주교가 그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주교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간단히 말하며, 다음 질문으로 나아간다.

한 여자가 우리 죄를 위해 죽은 예수에 관해 묻는다. 그는, 다시 히브리 역사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우기 위해 희생양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바쳐졌는지를 설명했다. 양은 도덕적으로 정결했고 육체적으로 “결점 없이” 순전해야 했다. 양이 죽여진 후, 그 피는 죄를 없애기 위해 죄인들에게 뿌려졌다. 그들은 “양의 피로 씻겨”졌고, 그들의 죄는 용서 받았다. 그렇다면 순전한 예수를 취해 그를 동종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은 쉬웠다. 단지 진행되는 신화의 연속. 죽는 구세주는 많은 고대 신화들에서 친숙한 것이다.

“아무도 당신 자신 이외에는 당신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아기들이 ‘죄 짓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경을 믿지 않지요?” 누군가가 묻는다.

“나는 믿습니다,” 라고 그는 도전적으로 그러나 부드럽게 언급한다. “나는 평생 성경을 공부해 왔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나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더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그것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도덕과 말할 줄거리를 갖고 있음을 여러분은 더 많이 압니다. 예수는 추종자였습니다. 그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게다가,” 그는 첨언하기를, “어떤 종류의 아버지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고문 당하고 죽임 당하게 합니까? 만일 십자가 처형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신성한 아동-학대이었습니다”(즉시 범퍼 스티커로 그 이미지가 내게 떠올랐다. 십자가의 구주 그리고 문구, 신성한 아동 학대.) 다시 어떤 사람들은 웃고, 어떤 사람들은 놀라 헐떡거린다. 주교는 계속한다, “죽음 장면의 중요한 부분은 그의 죽음의 순간에 조차, 예수는 비통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그의 제자들을 다시 확신 시킵니다, 그 옆에서 매달려 있는 도둑을 용서합니다. 그는 여전히 사랑과 관심을 표출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적으로 추구해야 할 죽음입니다."

주교의 팬으로서 나는 여러 해 동안 그의 말들과 인터뷰들을 추적해왔다. 그가 유사 종교를 공부했고 어쩌면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시대에 걸친 많은 구세주들의 가장 좋은 속성들이 주어졌음을 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가 “무화과 나무 우화”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처럼 그는 그것이 미트라이즘, 기독교와 동시에 번창했던 종교를 지칭한다고 믿는다. 무화과 나무는 미트라의 상징이었다. 유아 시절, 그는 무화과 나무에 숨었고 무화과 나무가 그를 먹이고 옷 입혔다. 예수가 철이 지난 무화과 나무에 열매 맺으라 명하고 나서 그러지 못하자 죽였을 때, 교부들은 기독교가 미트라이즘보다 우월하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주교는 현명하게 이것을 그의 논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는 집중해 있다. 그의 사역은 그의 기독교 친구들에게이며 그들은 아마 여전히 예수에 붙어 있을 필요가 있다.

나는 만일 기독교인들이 21세기로 들어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스퐁 주교와 같은 내부인에 의해서만 될 수 있고 굳게 믿는다: 단순히 거기 서서 기독교인들에게 부드럽게 사리를 설명해 주는 사랑하고, 정직하고, 이해해 주고 박식한 내부인. 그는 성실하고, 그들을 돌보며 그의 메시지와 함께 타오른다.

“기독교는 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3000년 묵은 신화들을 문자적 진실로 얼마나 오래 우습게 보임 없이 우리가 계속 가르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오래 우리가 무관하게 됨 없이 뉴톤, 아인쉬타인 그리고 오늘날의 과학적 지식의 위대한 진실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오래 우리는 자기들 뜻대로 여자들을 좌지우지 하기 원하는 남자들을 따를 것입니까? 누가 동성연애자들을 교회로부터 배척하기 원합니까? 사랑하기 보다 증오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우리는 따를 것입니까? 우리는 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주교가 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나의 지지와 탄복을 갖고 있다. 장수하고 번영하세요, 존 셜비 스퐁. 힘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오디세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9-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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