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란 말은 '죄'와 관계되어 거의 반드시 언급된다. 죄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 죄행을 처벌하기 위해선 자유의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믿느냐 못 믿느냐-라는 갈림길도 자유의지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보통 기독교인들은 '자유의지'란 말을 선택의 분별력이나 선택 원칙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한 자유의지란 말은 내가 볼 때 명백한 형용모순이다. 자유로운 의지는 없다. 의지의 자유-이 말도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중심적이며 문학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자유의지란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생리학과 심리학을 전혀 배워 보지 못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유란 말은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곧 자기로부터 행동이나 생각이 시작된다는 뜻일 게다. 강압이나 억압이 없는 상태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골라잡는 선택권일 것이다. 지금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거기서 어떤 아이스크림을 골라잡을 지 고민하던 손님이 바닐라 대신에 초코렛을 골라잡은 것이 자유의지의 결과일까? 그 초코렛을 선택하게 한 조건들을 깡그리 무시했을 때는 마치 그러한 선택이 '자유'롭게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손님은 어제밤 꿈에 초코렛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었고, 그 인상이 여태 남아 있는 중임에도, 다만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면, 이때도 역시 '자유의지'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많은 행동은 아직은 그 의미와 가치가 숨겨져 있다. 누가 함부로 그 해답을 말할 수 없는 수수께끼요, 여태 공개되지 않은 무대 뒤의 풍경들이 아직 많이 있을 지 모른다. 인간이 과연 무엇 때문에 행동하느냐,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의문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 문제들 가운데 바로 <자유의지>란 허구적인 이야기가 뱀처럼 기독교인들을 유혹한다. 기독교인들은 <자유의지>를 믿는다. 그래서 <죄>를 믿고 <죄인>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 그뿐이다.
이 점에서 착각하지 말자! <자유의지>가 가리키는 실제 현실은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위이면서 마치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듯한 허영스런 망상임을. 서태지의 팬과 신해철의 팬이 있다. 서태지의 팬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서태지의 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신해철의 팬 역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에게 직접 물어 보라. 다들 우물쭈물하거나 틀린 해답을 낼 것이다. 물론 외부적인 강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수만을 특정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 환경, 교육, 부모 형편, 대인 관계 들과 혼연일체된 상태에서 빚어져 나온 행위다. 엄밀하게 사실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선택에는 그 사람의 인생 모든 게 섞여 있다.
형법은 자유의지를 지지한다. 형법은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자는 범죄인이 아니라 환자로 취급한다.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곧, 책임을 물을 수 있으려면, 사람 행동의 자유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형법은 그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유의지를 필요로 한다. 반면 기독교는 <죄>를 만들면 만들 수록 저한테 이롭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강조해 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의지란 말은 형용모순이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8-05 05:05:29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