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와 문학3-주요섭, 인력거꾼
chung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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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7 13:44
한국기독교와 문학3
주요섭, <인력거꾼>
<인력거꾼>은 주요섭이 1925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의 빈민굴에서 거주하며 8년 동안 인력거를 끌어온 아찡이 죽어가는 마지막 하루를 묘사하였다. 10년 이상 견뎌내기 어렵다는 중노동에 자신의 육체를 혹사하지 않을 수 없는 하층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인력거꾼의 일상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를 통해 폭로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하층 민중의 피폐한 현실에 대한 폭로와 함께 상류층의 게으름과 하층 민중에 대한 무관심, 종교적 위선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가 주목할 곳은 바로 종교적 위선이 풍자되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주인공 아찡이가 자선 무료 진료소에 찾아가서 의사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병원 대기실에 많은 빈민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 기독교 선교사가 출몰한다. 그리고 선교사는 거기서 마구 기독교 교리를 떠든다. 요즘 지하철에서 흔히 보는 풍경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선교사의 주장은 대충 두 가지로 요약된다.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가서 잘먹고 잘산다"
그러나 아찡이는 이러한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아찡이는 기독교 교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지게 된다.
(가)나 같은 인력거꾼들이 고생하는 게 원죄의 대가라고 하면, 고생을 안 하는 인력거의 손님들, 비단옷 입는 부자들은 무엇인가?(그리고 내가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죄를 받는지 모르겠다)
(나)천당 가서 부귀를 누리려고 왜 현세에서 고생을 해야하나? 죽은 뒤에 부귀가 무슨 소용인가?
(다)부자들도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가나 본데, 그렇다면 고생을 하지 않은 그들은 무슨 자격으로 천당에 가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찡이는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 인력거꾼은 천당에 가서 부자로서 부귀를 누린다. 그리고 우리 손님이었던 부자들은 우리를 태워주는 인력거꾼이 되는거다! 이렇게 입장이 역전되어 세상 공평하게 되는 곳이 바로 천당이다!"
그래서 아찡이는 대기실에 있던 또 다른 기독교도에게 물어본다.
["천당에두 인력거꾼이 있답데까?"
"인력거꾼? 흥,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으문 천당이 좋달게 무얼꼬. 없어요."]
여기서 아찡이는 크게 실망한다. 그는 "천당에 인력거꾼이 없으면 입장이 바뀌어 공평한 세상이 될 수도 없고, 우리 따위는 천당 가봐야 역시 인력거 끄는 것 같은 고생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아찡이는 그런 천국은 안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인력거꾼>에서 추려볼 수 있는 기독교의 추태는 다음과 같다.
(1)기독교 선교사들은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들기나 할 뿐 그것을 듣는 초심자들이 가지는 의문에는 답을 안 준다.(이건 내공이 높은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위에서 아찡이가 던진 질문을 일반인들이 학력 높은 목사에게 물어봐도 그들은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교리상의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2)기독교는 가진 자와 힘센 자를 위한 종교일 뿐 하류층이나 생활인들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기독교가 상류층에게 빌붙는 이유는 그들 옆에 붙음으로써 떨어질 '떡고물'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