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와 문학4-기독교에 유린된 구비문학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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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8 08:25
한국기독교와 문학4
기독교에 유린된 구비문학
각급 대학의 국문학과에서는 매년 학술조사를 나간다. 학술조사란 농번기를 피하여 시골 지역으로 가서 구비문학 자료를 취재해 오는 것을 말한다.(방언조사를 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구비문학이란 문자로 정착되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입으로만 전달된 문학을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아는 '전래동화'가 구비문학 중 하나이다. 구비문학에는 민요, 판소리, 설화(신화, 전설, 민담-흔히 말하는 전래동화), 수수께끼, 속담, 무가(巫歌), 극(劇), 금기어, 욕설까지도 포함된다.
구비문학 자료를 취재할 때에는 시골에 가서 비교적 한가하신 노인분들을 붙잡고 "옛날 얘기 좀 해주세요", "노래(민요) 좀 가르쳐 주세요"하면서 그 내용을 녹음, 기록하는 방법을 쓴다.
구비문학 조사는 날이 갈수록 힘들다. 옛날 것을 기억하는 노인들이 자꾸 돌아가시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정보화의 물결이 시골에까지 퍼지면서 중요한 구비문학 유산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에도 간간히 중요한 자료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조사자들이 가장 애로를 느끼는 사항은 엉뚱한 데에서 튀어나온다. 산업화나 노인 고령화, 제보자(노인들)의 비협조 같은 문제들이야 얼마든지 감당해낼 수 있다.
문제는 시골에까지 침투된 기독교 문화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시골의 정자를 찾아갔다고 치자. 그리고 노인들과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노래를 청하면, 아―……. 기가 막히게도 찬송가가 나오는 것이다. "농사지을 때 부르던 노래 같은거 없나요?"하면 아쉽게도 노화된 기억력에 그 옛노래들을 다 잊고 계신다. 다만, 찬송가 따위는 어찌나 교회에서 반복해서 시키는지 아주 잘 외우고 계신다.
또 "옛날 이야기 좀 해 주세요(설화 취재를 목적으로 하는 요청)"라고 하면 엉뚱하게 성경 속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는 구비문학 조사자 입장에서는 하등 가치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리고 노인분들이 서로를 부를 때 보면 "장로님", "형제·자매님"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 노인정 한쪽에는 어김없이 성경책, 찬송가책이 놓여 있다. 가끔 예수 그림이 매달린 경우도 있고.
이렇게 느닷없는 태클에 조사자들은 허무감을 느끼고 나름대로 중요한 것을 연구한다는 사명감에 품고 있던 향학열과 사기가 떨어진다. C대학 국문과 송 모 교수는 "20세기 초반에 전래된 찬송가의 곡조가 소위 '창가'라고 불리면서 서민들에게 근대적 음악 감성을 심어주는 공로를 했다. 일부 창가에는 우리 민족의 감성이 담기기도 했지만 일부는 구비문학 유산을 파괴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무당의 무가는 미신이라고 하여 기독교에 감화된 신도들이 마구 핍박을 하는 바람에 무당이 마을을 떠나거나 폐업을 하여 무가의 명맥이 기록도 하기 전에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반에 일부 기독교 교회가 시골에 진출해서 무지한 농민들을 계몽해 준 공로는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좀 너무 하는 것 같다. 교회가 우리 전통 문화를 파괴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제는 구비문학 방면에까지 그 마수를 뻗치다니…….
(추신: 요새 시골에서 장승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교회의 '미신이론'과 과연 무관할까? 기독교들은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에 문화적 상징물로 세워진 장승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녀석들이거늘. 요새는 신도시가 건설되면 거기에 필요한 행정기관이 세워지기도 전에 교회가 들어서는 판국이다. 각다귀 같은 교회. 시골도 마찬가지이다. 이거 너무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