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good은 두 가지 반대말을 갖는다. 하나는 bad, 다른 하나는 evil. 앞의 경우 ‘좋음’/‘나쁨’ 이라고 번역된다면, 뒤의 경우는 ‘선’/‘악’ 으로 번역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의사가 보기에 몸에 나쁘지만, 그렇다고 ‘악’은 아니다. 그러나 목사가 보기에 그것은 악이다. 계율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섹스도 그렇다. 기독교는 성욕과 섹스를 악으로 간주했다. 즉 그것은 도덕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섹스를 얼마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심지어 어떤 욕망과 느낌을 느꼈는지 자세하게 고해하도록 신도들에게 요구했다.
반면 <소녀경>의 중국인에게 섹스는 결코 악이 아니며, 단지 몸의 건강을 위해 적절히 조절해야 할 것이었다. 탄트라 요가를 하던 인도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행을 위해, 득도를 위해 섹스와 성적 에너지를 이용했다.
니체에 따르면 선/악에서는 ‘하지 말라’ 라는 부정적인 금지로 정의되는 먼저 있고, 그 금지를 어기지 않는 것이 ‘선’ 이 된다. 따라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지 마” 라는 부정적인 권력의지가 작동하며, 항상 힘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좋은/나쁨’ 은 다르다. 도덕의 계보학. 니체처럼 스피노자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한다. 스피노자는 선/악에서 도덕(moral)이 발생한다면, 좋음/나쁨에서는 윤리(ethic)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좋음이란 어떤 것과의 만남이 나에게 능력의 증가를 야기하는 것인데, 이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윤리학의 목표는 ‘좋은’ 관계에서 야기되는 기쁨을 극대화하고, 나쁜 관계에서 야기되는 슬픔을 극소화하는 것이다.
善함의 반대말은 惡이 아니라 不善입니다.
원래 惡이라는 말은 혐오, 증오한다는 뜻으로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지요.
惡이라는 글자를 보면 마음심자위에 버금아가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으뜸가는 마음이 아니고 버금가는 마음이 악이라는 말이지요.
사람은 자신의 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 정신이 아닌 다른 정신으로 사는것이야 말로 악이지요.
그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내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게 제 정신으로 하는 기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