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반기독교발췌편6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반기독교발췌편6 -
()는 해석입니다.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
나의 형제여, 그대는 고독에 빠지기를 원하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가? 그러나 잠시 멈추고 내 말을 들으라. "찾고자 하는 자는 자칫하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고독에 빠지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다." - 군중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대도 오랫동안 군중에 속해 있었다.
군중의 목소리가 아직도 그대의 내부에 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나는 이미 당신들과는 다른 양심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탄식이며 고통의 소리일 것이다. 보라, 이 고통의 소리 자체도 역시 같은 양심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 양심의 마지막 희미한 빛이 아직도 그대의 고뇌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이르는 고통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 길을 걸어야 할 그대의 힘과 권리를 내게 보여 다오!
그대는 하나의 새로운 힘이며 또한 하나의 새로운 권리인가? 시원(始原)의 운동인가?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창조적인 근원적 행동)인가? 또한 그대는 별(초인 또 이상)까지도 강요하여 그대를 중심으로 운행하게 할 수 있는가?
아, 세상에는 높은 곳을 향한 욕망들이 얼마나 많은가! 야심가들의 발작이 얼마나 많은가! 그대가 욕망에 사로잡힌 자이거나 야심가의 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게 보여 다오. 세상에는 풀무에 불과한 위대한 사상이 많이 있다. 이 사상은 사물을 부풀어오르게 하여 그 내부를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그대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대가 멍에로부터 벗어났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대를 지배하는 사상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다.
그대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인가? 자신의 예속을 던져 버릴 때, 자신의 마지막 가치까지도 팽개친 자들이 수없이 많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이것은 차라투스트라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대의 눈빛은 나에게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자신이 만든 선과 악을 부여하고, 그대 자신의 머리 위에 그대의 의지를 율법으로서 걸어 놓을 수 있겠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의 재판관이 되고 그대의 율법의 복수자가 될 수 있겠는가?(그대의 율법이 그대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을 때, 그것을 저지할 능력이 그대에게 있는가?) 스스로가 율법의 재판관인 동시에 복수자인 자신과 함께 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횡량한 공간 속에, 얼음과 같은 고립의 숨결 속에 내던져진 것과 같다.
오늘 그대는 절대자로서 다수자로 인하여 고뇌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그대는 용기와 희망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고독이 그대를 지치게 할 것이다. 언젠가 그대의 긍지는 고개를 숙이고 그대의 용기는 꺾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나는 다만 혼자이다!" 라고.
언젠가는 그대가 그대 내부의 고귀한 것을 더 이상 보려 하지 않고 저속한 것을 것을 보려고 할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내부의 저속한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볼 것이며, 그대는 숭고함은 마치 유령처럼 그대를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대는 외칠 것이다. "모든 것은 잘못되어 있다." 라고. 고독한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여러 감정이 있다. 만일 그 감정이 고독한 사람들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감정 스스로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살해자가 될 수 있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미 '경멸'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를 경멸하는 자를 공정하게 대할 때의 고뇌를 알고 있는가?
그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대에 대해 가지고 있느 견해를 바꾸도록 강요한다. 그들은 그대의 그런 행동에 대해 거센 반발을 보인다. 그대는 그들에게 가까이는 다가가기는 했으나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그대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들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대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들의 시기에 찬 눈에는 그대가 더욱더 작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비상(飛翔)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당신들이 어떻게 나에게 공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당신들의 불공정을 나의 몫으로서 선택한다." 고 그대는 말해야 한다. 그들은 고독한 자들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오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나의 형제여, 만일 그대가 하나의 별이라고 하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을 희미하게 비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선하고 의로운 자들(기독교도)을 경계하라! 그들은 자신의 덕을 창조하는 자들을 즐겨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들을 고독한 자들을 증오한다. 성스러운 단순성(무지한 자를 의미한다.)도 경계하라! 그들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불경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단순성은 불장난을 좋아하며 장작을 쌓아올려 화형시키기를 좋아한다. 또한 그대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라! 고독한 자들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너무 쉽게 손을 내민다. 그대가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앞발만 내보여라. 그리고 나는 그대의 앞발에 맹수의 발톱이 감춰져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대 자신이 부딪칠 최악의 적은 항상 그대 자신일 것이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도 이르지 못하고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일곱 악마(뒷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일곱 가지 위험을 가리킨다.)의 곁을 스켜 지나가게 할 것이다. 그때는 자신에 대하여 이단자가 되라! 또한 마녀, 예언자, 바보, 염세주의자, 부정한 자, 악한이 되라!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길로서 자신을 불사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고독한 자여, 그대는 창조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일곱 악마로부터 하나의 신을 창조하려고 한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자신을 사랑하며, 그 때문에 그대는 사랑하는 자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다.
깊은 사랑을 가진 자는 경멸함으로써 창조하기를 원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경멸해 보지 않은 자가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과 창조를 가지고서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그대가 멸망한 뒤 정의가 절뚝거리며 천천히 그대의 뒤를 따를 것이다.(후세에 가서야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나의 형제여, 나의 눈물을 가지고서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자신을 초극하여 창조하기를 원하며, 그리하여 멸망해 가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6-03 18:30:45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