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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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신과 그 선교사들
조한주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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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0 23:02
식민지 약탈을 위한 배에는 인간을 특권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신의 충실한 성직자들이 항상 타고 있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끔직한 식민지 '개척'을 자신의 신의 위대한 능력 아래 다른 인민들을 '개종' 시키는 선교로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직접 나서서 식민지인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삼았으며 강탈하고 살육했다.
영화 <미션>은 순진하지만 무력한 '미개인' 과 그들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집단인 교단 사이에서, 이 '미개인' 들 또한 신을 알고 예술을 하는 '인간' 임을 증명하려는 고지식한 선교사를 중심에 놓고 펼쳐진다.
하지만 교단에서 바라는 것은 그들이 '인간' 임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반대였다고 해야 할 게다. 결국 그 미개인들은 한편은 총을 들고 교단에 대항하는 선교사를 따라, 다른 한편은 십자가를 들고 "불쌍히 여기소서!" 를 외치는 선교사를 따라 죽음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길을 간다.
이 경우는 '미개인' 들에 대한 선교사의 진정성이 있었기에 영화거리라도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조차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인간' 임을 증명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미개인' 들을 자신들이 아는 '인간'의 기준에 맞추고자 했으며, 자신들이 믿는 '신' 의 지배 아래 그들의 삶을 끌어들였다.
하긴 그거야 '선교'의 전제니까 문제 삼을 게 없는 건지도 모른다. 문제는 차리리 이런 선교사란 영화에나 나올 정도로 드물거나 아니면 현실에 없는 허구적인 인물이란 점일 게다.
대개의 선교사란 함께 배를 타고 간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그들의 약탈의 잔혹성을 이단자에 대한 신의 노여움으로 치장하고 그들의 정복을 신의 정복으로 찬양하는 인물이었다.
미국땅에 들어간 개신교도들은 땅과 광산을 빼앗기 위한 인디언 사냥을, 여호와의 부름에 답하지 않은 이단자들의 처형으로 묘사했다.
인디언 마을을 침략하는 선봉에는 항상 선교사들이 있었다. 세네카 족 추장인 사고예와타('사람들을 깨우는 자' 라는 뜻. 빨간 윗도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자신들을 가르치러 온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인들은 온갖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교리를 인디언의 입에 강제로 구겨넣으려 하고 있다." (류시화 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p. 49)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시튼(E. Seton)은 자신의 책 <인디언의 복음>에서, 17세기의 프로테스탄트주의자 묘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기록이라고 하면서 린 S. 러브라는 인물의 묘비 명구를 인용하고 있다.
"한평생 그는 주께서 그의 손에 부치신 인디언 98명을 죽였다. 그는 삶이 끝나 그의 본향에서 주의 팔에 안겨 잠들기 전에 100명을 채우길 바랐다." ( <인디언의 복음>, p. 132)
맑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식민지들에서도 본원적 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교의 엄격한 주창자들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1703년에 그들의 의회의 결의에 의해 인디언의 머리 가죽 1장이나 포로 1명에 4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고, 1720년에는 머리 가죽 1장에 상금이 100파운드로 되었......다." (I, p. 1036)
그래서 맑스는 기독교를 전공하고 있는 하위트(W. Howitt)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른바 기독교 인종이 [정복할 수 있었던] 세계의 도처에서 또 모든 주민들에 대해 수행한 야만 행위와 잔인한 행위는 어떤 역사적 시기에도 그 유례가 없으며, 또 아무리 난폭하고 몽매하며 무정하고 파렴치한 인종도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I, pp. 1033~1034)
이 참상을 주재하시는 위대한 축적의 신과 그의 선교사들을 이해하는 데는 전형적 사건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
매사추세츠 해안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자신을 '해안의 성자' 라고 칭했는데, 이 성자들은 왐파노그 족, 피쿼트 족, 나라간세트 족, 니프무크 족 인디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길 거부하자 미스틱 리버라는 이름의 강 하구에 사는 피쿼트 족 마을을 공격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 주민 7백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가운데 남자는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공격 대열에 참여했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류시화 편, 앞의 책, p. 54).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이진경, <자본을 넘어선 자본>, 그린비, 2004, pp. 315~318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3-01 08:07:03 (구)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모든 인간의 생을 규정짓고 있을까?
왜 미국놈들 똥구녁을 핥으며 지고의 안락을 구가하는 한국개독이 우리나라의 지배 엘리트로서
겨레의 얼을 찟어발기고 있을까?
개잡귀 야훼의 저주는 질기기도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