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공갈成書(10) 호서의 탄생지는 바빌론. 거대한 바벨탑에 배지꼴린 유태.

반아편 0 3,252 2004.08.11 22:30

야웨는 분명 원전 600년경 까지는 미숙했다.
신명기에서 처럼 형상없고 세속을 벗은 존재가 아니었다.

금으로 뒤집어 씌운 야웨상이 케루빔의 보호를 받으며   최성소 Debir에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라.

야웨는 „명예의 주“로도 숭배되었다고 호서는 쓰고 있다.
원전 587년에 유일신제작의 틀이 완성되었다.
사실 이후로 야웨는 초월적인 존재로 가꾸어져 갔다.

이 해에 이스라엘의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오는 사건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민족 파멸위기에 봉착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북동쪽에서 거대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가왔다.
멀리서도 창의 부디치는 소리와 전차의 바퀴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이 이집트 원정을 위해 지나가는  중이었다.
침략자는 18개월동안 예루살렘성을 에워쌌다.

그의 군대의 화살은 하늘이 어둡게 쏘아 댔으며 성문을 부수려는 통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진동했다.

길고긴 긴 싸움 끝에 시온산의  백성들은 항복했다. 당시에 보편적으로 그랬듯이 승전자는 잔혹했다.

예루살렘의 왕 세데기아는 두눈을 뽑혔고 작은 형제국 유다도 속국이 되었다.
적은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도 만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야웨신전도 불질렀다.

승자는 1만5천명의 상류층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압송했다. 바빌론에서  그들은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거기가 91,5m 높이의 천문대 바벨탑이 서 있는  Etemenanki이다.

제일 빠르면 이때 객지에서 히브리인은 „약속된 땅“의 망향 동기를 가졌고  „약속된 땅“이  사실은 없기에
이를 계속 논리로 발전시켰다. 위의 설에  점점더 많은 학자들이 견해를 같이 한다.

페르시아의  객지에서 신에 대한 상상도 새로운 충동과 영향을  받았다.

ㅡ  따라서 유태는 복수심에서  공포의 느브갓네살과 그의 초대형 탑(바벨탑= 후에
    풍화작용으로 파손)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멸시 조작했다.
ㅡ 원전 539에 페르시아는 큰 부분의 고대세계를 점령했다.

ㅡ 종교지도자 짜라투스트라는 천사도 있고 선과 악의 교리에 바탕을 둔 교훈을 설파하고 있었다.
ㅡ 페르시아의 주신 Ahuramazda도 형상이 없는 존재이다. 이들은 제단도 쌓지 않는다. „제단이나
    형상을 만들면 그들은 어리석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 신을  희랍인들 처럼 사람비슷한 형상으로는 
    보지 않는것 같다“ 고 고대사가  Hertodot는 썼다.

ㅡ 확실한 것은 페르시아인들은 야웨의 숭배를 가능한 장려했고 원전 538년엔
    포로들을 석방했고 유태들은 팔레스티나로 돌아왔다.
ㅡ 당시 3만여명이 삭막한 유다로 왔고 상당수의 제사장들이 있었다.

ㅡ 그들은 곧장 시온산의 타버린 신전을 재건했다.
ㅡ 예루살렘의 새 지도자는  페르시아 왕 Artaxerxes의 관리로 있던 느헤미아였다.
    에스라가 그를 보좌해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았다.

ㅡ 에스라는 호서에서 스스로를 „천신의 법을 위해 온 사자“라 칭했다.
ㅡ 페르시아의 속지이던 Jehud(반경이 30km)지방의 지도자가 된 이들 강경  
    개혁자들은 초강경의 개혁을 서둘렀다.(최소파의 견해)
ㅡ 중세의 수도원의 위조무리가 원서들의 연도와 날짜를 위조하듯 이들도
    히브리 서류들을 샅샅이 훑고 바꾸어 쓰고 게다가 전체 왕국을 창작했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8-13 05:43:21 반기련 해외지회(으)로 부터 복사됨] [이 게시물은 꽹과리님에 의해 2004-09-04 13:53:53 (구)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8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교회의 구약성경이해에 미친 영향 댓글+1 文學批評 2005.03.17 3663
107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국인식 文學批評 2004.08.28 3077
106 일제말기 기독교의 친일행위 文學批評 2004.08.28 3404
105 [펌] 인디언, 그 피맺힌 역사 댓글+4 ※※※ 2004.10.22 6180
104 축적의 신과 그 선교사들 댓글+1 조한주 2004.08.20 3727
103 공갈成書(12- 끝) 마카베도 기원전 2세기에 모세오서 수정 반아편 2004.08.11 3719
102 공갈成書(11) 아쉐라여신 제거가 최우선. 헬라시대에도 유태인 기우제. 반아편 2004.08.11 3287
열람중 공갈成書(10) 호서의 탄생지는 바빌론. 거대한 바벨탑에 배지꼴린 유태. 반아편 2004.08.11 3253
100 공갈成書(9)번역자들 여신을 삭제 위조. 아쉐라 야훼의 부인의 호서 근거 반아편 2004.08.11 3280
99 공갈成書(8) 야훼는 바알신의 변형. 아쉐라는 야훼부인의 고고학적 증거 반아편 2004.08.11 3685
98 공갈成書(7) 신명기는 요시아 문화혁명의 산물. 토라는 신명기파 이데올로기. 댓글+1 반아편 2004.08.11 3449
97 공갈成書(6) 미니 이스라엘국의 멸망. 유다국 야훼파의 절호 기회 반아편 2004.08.10 3478
96 공갈成書(5) 열왕기서의 왕명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도자들을 도용 반아편 2004.08.10 3193
95 공갈成書(4) 솔로몬의 구라궁녀+ 구라신전 + 구라궁궐 댓글+3 반아편 2004.08.10 4204
94 공갈成書(3) 아불함때 낙타는 집짐승이 아니었다. 이때 동전도 없었다. 댓글+3 반아편 2004.08.10 3453
93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 악랄했던 고문 및 처형 방법들 댓글+9 ※※※ 2004.08.04 7830
92 허구왕좌 (2) 야훼의 보좌는 없었다. 토라는 기원후 50년경 까지 손질됐다. 반아편 2004.07.08 2952
91 팦색자 (7~2) 근친윤간 알렉산더교황의 걸작대화 댓글+3 반아편 2004.07.04 5211
90 공갈成書(1) 다윗궁은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5평짜리 단칸돌집 댓글+9 반아편 2004.06.26 4033
89 팦색자(7-1) 진짜 犬皇 + 근친윤간 + 색광 절정 Alexander VI… 반아편 2004.06.19 4873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29 명
  • 오늘 방문자 401 명
  • 어제 방문자 477 명
  • 최대 방문자 927 명
  • 전체 방문자 65,163 명
  • 전체 게시물 15,166 개
  • 전체 댓글수 38,666 개
  • 전체 회원수 1,469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