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공갈成書(6) 미니 이스라엘국의 멸망. 유다국 야훼파의 절호 기회

반아편 0 3,584 2004.08.10 23:11

고고학자들은 삽과  미니불도저로 보잘것 없는 히브리 건국마당 바닥을 드러냈다.
사마리아에서는 몇개의 포도주 영수증(토기에 새겨진)이 나왔다.

아라드에서도 토기에 새겨진 퇴색된 서신이 나왔다.
그외에는 양치기들과 올리브 재배자들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 농목생활도 끝났다.
기원전 9, 8세기 티그리스에서 세계의 통치자를 꿈꾸는 거대한 제국이 생겨났다. 
앗시리아가 그것이다.

앗시라아는 상인행렬의 장악를 원했고 당시 상인들은 예멘에서 가자까지 향과 조미료를 거래했다.
소비지(가자)를 장악한 자가 막대한 이익의 몫을 차지 할수 있다.

원전 732년에 왕Tiglatpilester3세가  원정을 시작했다. 그의 군대는 재빨리 지중해까지 진격했고
거대한 지역을 손아래 넣었다.

미니국 이스라엘도 앗리리아의  발굽에 깔렸다. 
미니국 영토는 앗시리아 제국의  <사마리아>로   소속되었다.
가난뱅이 유다국은 처음엔 위협을  적게 받았다.

Giessen대학의 고고학자 Volkmar Fritz가 말하는 정복자들의 전황설명.
그는 갈릴리 호수가 Kinneret에서 발굴중이다.
ㅡ 위의 <500명 주거의 마을>은 „우박같은 쇠화살촉의 공격을 받았다“
ㅡ 다음으로 앗시리군은 부수는 쇠로 집들은 박살냈다.
ㅡ 정복자의 계산엔 포로압송이 있었다. 13500명의 유대가 끌려 갔다.
     Ninive에서 발견돤 조각은 보따리를 짋어진 포로들이 말뚝이 늘어선(주: 사람을 매달아 죽인)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유다도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ㅡ 북쪽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압송을 피하기 위해 대량의 피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 들었다.  2천명 도시가 1만5천명의 크기로  늘어 났다.
ㅡ 이웃 앗시리아는 내키는대로 유다국을 유린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Monotheism 신앙의 탄생“이다. 이는 Finkelstein을 위시한 중도파 견해이다.

ㅡ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대국들 틈에 끼어 심각한 위기에서 유다국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역공을 구상했다.
ㅡ 군사가 없던 유다는 형이상학으로 대응했다. (칼화살에 조댕질로 맞섰다)

ㅡ  요시아왕(원전 639~609)이 유일신기획의 원동력이 된듯하다.
ㅡ  호신은  그를 „외래신앙의 흔적을 멸하고 율법을 세밀히 지켜 호족을
         구원하러 온 자“라 찬양한다.
ㅡ  요시아는 제사장들에게 <종교적 수호신과  땅약속의 건국신화를 만들 것>을 
         호소했다.
ㅡ  우선은 민족의 자아의식을 고조시키고 외세의 증대를 막기 위함이었다.
ㅡ  목적에 신전의 사람들을 내세웠다.
ㅡ   그들은 „민족의 격리“을 추구했다(Finkelstein)

호서를 자세히 읽으면 여러가지 규정과 터부를 접한다.(민족 격리 수단)
ㅡ  돼지고기, 토끼고기, 낙타고기의 금지는 야웨숭배자에겐 금지.
ㅡ  젖과 고기의 접촉 금지.
ㅡ  파사의식때는 부풀지 않은 빵을 먹었다.
ㅡ 사바트(안식일)에 불을 피우는것 금지.
ㅡ 남아는 생후 8일만에 포경을 잘랐다.
ㅡ 타민족과의 결혼 금지도 핵심적이다.(주: 오늘도 유효)

이런 규정으로 유다는 이방세력과 사상으로 부터 종교면에서 구분하려 했다.
이 외에도 요시아는 더 많은 격리책을 요구한 걸로 보인다.

그때까지 야웨는 „천둥귀신(Donnergötze)“이었다.
또 예루살렘 시온산의 지역신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야웨는 우주적 권력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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