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
*** 용어선택 : 야훼 = 야훼. 신( 유태) = 호신. 신(일반) = 신. Bibel (구약 ) = 成書 혹은 호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개독의 용어를 답습할수 없음이니 양해바람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세오경이라 하는 Pentateuch, 유대인이 토라(법)라 특별히 섬기는
이 작품은 청동기 시대의 작품이 아니다.
역사를 잘아는 „위조가“(= Krauss의 말) 들이 가공물들을 삽입했다.
여호수아서는 실제사를 통째 뒤엎는다.
이 여호수아란 살인마는 진노의 주의 채찍을 받으며 신속공격으로 요르단 일대의
원주민을 몰살해 다신숭배를 제거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고고학관청의 지휘하에 드러나는 새로운 발굴들이
이 사기극의 전모( das ganze Ausmass des Schwindels)를 보여준다.
„가나안의 정착은 사실은 평화롭게 그리고 천천히 진행됐다“(Finkelstein)
맞는 사실은 기원전 1200년경에 셈족이 서요르단 산간의 사막에 이주해 정착했다.
그들은 나무침대에 자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들 움막은 4~5명정도 수용.
ㅡ 갈릴리 북부에서 이주자들은 포도와 올리브를 재배했다.
ㅡ 남쪽으로 예루살렘과 헤브론 사이에는 매말라 가시덤굴이 자라고 물이 귀했다.
기원전 1000년경 가나안에는 전부 5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
남쪽은 특히나 살 환경이 아니었고 그래도 매우 드물게 살았다.
이웃과도 항상 충돌했다. 에돔인과 모압인이 옆에 살았다. 기름진 지중해변으로는
크레타에서 온듯한 Philister(블레셋?)들이 큰 도시들를 이루고 살았고 그들의 북쪽에는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페니키아란 해상무역을 하던 족이 살았다.
절대권을 갖은 주인은 이집트의 파라오였다. 파라오는 팔레스티나에서 광산을 만들어
구리를 캐어 냈다. 기원전 1250년경 람제스는 연쇄 방어성과 물길을 곳곳에 설치했고
애굽군대의 신속한 출동을 위해 태양신로(太陽神路)를 만들었다.
모세같은 „천막지기“가 당시 중무장한 애굽대군을 상대로 반역을 꾀했다는건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기원전 1207년 파라오 Merenptah의 기록에 이스라엘 이름이 언급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내용은 애굽군의 우악스런 정벌기사이다. „너의 씨, 이스라엘, 진멸하다“
파라오는 백성에게서 땀을 짜 내었다. 노역을 피하려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다.
산속에 도피자와 발랑자들이 살았다.
많은 학자들이 히브리라는 용어를 hapiru ( = 떠돌이)에서 왔다고 본다.
호서는 하필 가난하고 삭막한 가나안에 휘황찬란한 왕조를 지어냈다.
수염기른 양가죽을 걸친 양치기 다윗의 슈퍼제국이 여기서 펼처 진다.
다윗의 후계 솔로몬때는 과장은 터무니가 없다.
ㅡ 그가 700명의 궁녀와 300명의 후궁을 두었다 한다.
ㅡ 그의 궁은 거대하고 우아하며 양탄자가 깔려 있다고 한다.
ㅡ 보물창고는 넘친다. 호서엔 솔로몬이 „지상의 모든 왕들보다 더 부했다“한다.
ㅡ 제사정치에 있어서도 대단하다. 호교교조 모세는 천막에서 호신을 섬겼었다.
솔로몬은 돌로 호신의 집을 지었다. „신전을 완전히 금으로 입혔다“ 한다.
안에는 레바논의 상나무를 썼다 한다. „가장 성스런 곳에 언약궤를 두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솔로몬의 신전을 증거하려는 모든 고고학적 시도는 실패했다.
„우리는 신전의 기초도 찾지 못했다“ (Bloedhorn)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호서는 터무니 없는 소설이다.
ㅡ 움막은 궁궐로 과장치장했다.
ㅡ 가나안의 정복은 넌센스이다.
ㅡ 모세가 살았는지도 의문스럽다.
ㅡ 솔로몬의 기사는 역사상 근거없는 „이상시대“(= Idealzeit)이다.
스위스 구약학자 Othmar Keel.
명수>가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저는 그걸 유태바이러스라고 합니다만.
집단세뇌, 집단최면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범죄집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