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공갈成書(1) 다윗궁은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5평짜리 단칸돌집

반아편 9 4,175 2004.06.26 21:46

 주간지<DER SPIEGEL> 20002년 52호의 표지기사 <Der leere Thron>번역물.
처음의 <허구왕좌>를 내용상 <공갈성서>로 바꾸었습니다.

*** 용어 선택 : 야훼 = 야훼.   主  +  신 (유태) = 狐神(호신).       신 (일반) = 신
                  Bibel(구약의미 경우) + 구약  = 成書 혹은 호서(狐書).   
             이스라엘 후손 = 호손.  신의 백성 = 호족
            
 
사무엘서에 의하면 다윗은 목동으로  출발한다. 그는 „금발“이고  „형상이  아름다웠고“  
하프를 „예쁘게“ 켰다 한다.  어린 영웅으로 돌팔매로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죽이고  
기원전 997년경 그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공략했다 한다.

구약은 몇 페이지에 걸쳐 다윗을 호신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택된 자라 찬양한다. 그가 나라의
주인으로서 죽을 때 까지  그의 영토는 유프라테스 에서 지중해까지 이르렀다고 쓰여 있다. 제국의
건국자인 다윗은 40년을 왕위에 있었다 한다.

그런데 그 찬란하던 나라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예루살렘 성의 동쪽을 따라 걷자면 조용한 비탈에
유적발굴 지역을 만난다. 여기가 „다윗의 市“ 라는 곳이다. 입구엔 군인이MG발사준비한 채로 서있다.
그들은 초라한 폐허를 지키고 있다.

다윗시(궁)의 크기는 16평방미터이고 부엌도 없고 창문도 없다. 음식은 바깥에서 만들었다.  그옆에
편편한 돌이 있는데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이게 „다윗궁의 변소“이다. Hanswulf Bloedhorn( 성지 고고학 개신교 연구회) 

다윗의 번영과 찬란함?  열왕기전서10장에 도읍에는 „은이 돌과 같이 많았다“고 했다. 터무니도 없는
소리다. 발굴팀들의 삽아래 청동기의 예루살렘은 하나의 마을로 쭈그러 들었다. 마을은 2천명정도
거주의 지역이였다. 베를린의 이집트 전문학자 Rolf Krauss는 „지방둥우리“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이 한둘이 아니다. 현대적인 성서연구자들은 오래전 부터 구약의 허구를 찾아 낸다. 들어나는
것은 전설의 짜집기이다.

 모든 방면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꽃가루 분석가들은 군사통제구역인 유대아와 사마리아까지 훑었다.
동양학학자들은 설형문자판들을 해독해 내고 있다. 
나일강의 오랜 문서에서 히브리인의 근거도 발견되었다.

무엇보다도 바이블의 역사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엔 지금 텔아비브대학의 발굴팀장인 Israel Finkelstein이 일격을 가했다.
그의 저서 „Keine Posaune vor Jericho = 여리고(전쟁) 나팔은 없었다“ 는 바이블의 핵심문장
(주: 소위 모세오경)들은 거짓임을  확인한다.

ㅡ 유태인의 출애굽은 있지도 않았다.
ㅡ 가나안은 여호수아에 쓰여진 것과 달리 무력정복이 아니다.
ㅡ 초기의 다윗과 솔로몬 왕국은 허구이다. 이 두 이스라엘왕들은 아무 의미없는
      변두리 계곡이나 지배했었다 (Finkelsrein)

 이제 成書나 호신의 말은 동화나 기념비적인 거짓이라 할만하다. 사학자들이 역사적인 예측했던 
곳에서 이제 정치적 선전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터지는 댐앞에 서있다“고 Augsburg의 成書언어를 가르치는  Dirk Kinet는 시인한다.

 
유일신의 전개과정도 成書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신은 영원한 존재라고  成書에선 주장한다.
 „태어난 적도 없고 영원히 죽지도 않을 한 존재“라고 했다.

시조 아브라함 ( 소위 기원전 1800년경)도 이 전능자에게 예물을 바쳤다.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 신을 본 후 „ 신은 오직 하나이다“ 라고 모세는 선언한다.

 보수성 신학자들만이 너무 쉽게 이스라엘민족을 특수민족이라 인정했었다. 고고학은 이것도 밝혀 냈다.
즉 주신인 호신도 처음엔 작게 시작했다.(신의 발전 전개과정을 의미)
 
야웨는 처음에 다만 날씨의 신이었다고 Augsburg의 전문가 Kinet는 설명한다.
 „그는 결실의 보장이었고 그의  性에  대한 묘사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흙과 쇠로 된 우상들이 호지에서 발견됐다.   생기가 넘치는 젖가슴과 엉덩이의 토기로 된 작은
조각들도 발견되었다. 이는 다신의 자궁에서 유일신이 탄생한 것.
이는 새로 얻어진 인식이다.

ㅡ 예루살렘에서는 신전창음이 번창했다.
ㅡ 신에겐 처음 벌거벗은 동반녀가 있었다.(아쉐라 = asherah)
ㅡ 기원전 100년만 해도 주위의 농민들은 이방신의 예식을 치렀다.

예루살렘북쪽으로 400km 떨어져 있는 Ugarit 에는 „이스라엘종교의 어두운 과거가
표출된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Andre Capuot)  여기서 제문과 금상들이 출토되었다.

한 출토품중 수염달린 작은 남자 조각이 있다.
이것이 현명한 노인이며 하늘의 아비 „엘 = El “이다.  초창기 형태의 신이다.

 신이 한 이방인종교의 우상에서 나왔다는 인식은 독실한 기독에겐 마음아플 일이다.
그러나 이미 기정사실이다. 망원경속으로 들여다 보듯  전문가들은 전능한 신이 출산한
저 구름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연구는 점점 더 환하게 유일신이 생겨나고  키워져가는
작업장의 과정을 더듬어 보고 있다.
 
 학자들은 때로는 감동적인 통찰력으로 아직도 어둡고 신비적인 요새에 박혀 있는 옛날의
신앙작품을 과학의 빛으로 끌어 내어 해부하고 있다.
 
독실한 成書 주석가들만이 히브리인에게 역사적 특수성을 부여한다.
„숭고한 이념과 완전한 의식속에서 이세상의 모든 물질을 바쳤고 고난을 견뎌냈고 생명도
바쳤다“고, Simon Dubnow는 그의 열권에  달하는   <유대 민족의 세계사>에  쓰고 있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8-11 23:47:06 반기련 해외지회(으)로 부터 복사됨] [이 게시물은 꽹과리님에 의해 2004-08-30 17:38:37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반아편 2004.08.12 05:04
위에 지도옆의 돌담 같은 사진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지키고 있는 다윗유적입니다.
공식 다윗궁이지요. 그 동네 이잡듯 다 뒤져서 더 다른 건물터가 나올데도 없습니다.
지형상 홍수나 산사태, 습지등 건물을 삼킬정도의 지질이나 자연재해가 있지도 않고
나무로 궁을 지었다면 방화로 인한 인멸도 있겠지만 그동네는 돌건물 위주라 기초도
찾을수 없다면 없었던 거겠지요. 소소한 유물정도는 앞으로도 더 나오겠지요.
ravencrow 2004.08.12 02:11
여하튼간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독사변이 주장했던 것이 오류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부분 하나만 가지고도 만족 해야 겠지요.. 문제는 남은 사변관점 중에서 다른 무엇이 먼저 입증을 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ravencrow 2004.08.12 02:10
참고로 이스라엘 내에도 시오니즘 학자들의 경우는 성서 사학자들과 유사하나 틀린 주장을 합니다. 성서사변과 신비주의 사변의 중간적인 부분이죠... 대거 시오니즘에 해당되는 근거를 차용한게 아가다라서 그렇습니다. 위의 유적의 경우 주전파가 아니라 근동 사변적 해석에 가까운 사람들의 주장에 의한 것으로 마치 우리나라의 민족사변과 주류사변이란 부분에 있어서의 논쟁과 궤를 같이 합니다...^^;;
ravencrow 2004.08.12 02:08
다윗과 솔로몬에 대해선 이 말고도 많은 설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이 유적을 기독교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설을 전면 무시하고 기득권을 이용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기독교계의 주장은 망신만을 거듭할 뿐입니다..ㅋ
ravencrow 2004.08.12 02:07
당연히 다윗과 솔로몬의 유적의 경우는 티가 안 납니다. 게다가 위의 다윗궁의 유적의 경우 부족국가설을 주장하는 사학자들에 의해 신빙성을 무쟈게 지원받고 있습니다. 즉, 추장의 저택 정도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가능한 규모라고 하더군요...-_-'
ravencrow 2004.08.12 02:06
역시 돌탱이들입니다..ㅋ 저러니까 당연히 또라이 소리를 듣는 것이죠....-_-' 참고로 다윗궁이나 기타 등의 경우는 아직도 추적중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권력 불안정설이 있기 때문이죠... 즉 이 왕은 제위 이후부터 끊임없이 도전자들과 타부족의 압박에 시달려서 거처 이동이 잦았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한마디 2004.08.03 22:38
노아의 방주에 온 세계의 동물과 곤충이 종류별로 다 들어가는데, 16평방미터에 거대한 왕국은 못들어가겠습니까? ㅎㅎ...
반아편 2004.07.04 16:05
흥미로운 정도가 아니라 개경이나 유대사가 100% 정치성 허위조작이라는 글입니다.
열번정도 연재될것 같은데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중간에 가다 보면 야웨가 바알신의 변형(일종) 이란 내용과 아쉐라가 바알의 부인이
아니라 야웨의 부인이라는 증거가 제시됩니다.
구약이 2천년이 안된다는 설도 제기 되구요.
위 내용이 조금 정리가 되어서 자료실에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료들이 더 있으면 올려 주세요  매우 흥미롭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8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교회의 구약성경이해에 미친 영향 댓글+1 文學批評 2005.03.17 3818
107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국인식 文學批評 2004.08.28 3199
106 일제말기 기독교의 친일행위 文學批評 2004.08.28 3515
105 [펌] 인디언, 그 피맺힌 역사 댓글+4 ※※※ 2004.10.22 6307
104 축적의 신과 그 선교사들 댓글+1 조한주 2004.08.20 3845
103 공갈成書(12- 끝) 마카베도 기원전 2세기에 모세오서 수정 반아편 2004.08.11 3843
102 공갈成書(11) 아쉐라여신 제거가 최우선. 헬라시대에도 유태인 기우제. 반아편 2004.08.11 3399
101 공갈成書(10) 호서의 탄생지는 바빌론. 거대한 바벨탑에 배지꼴린 유태. 반아편 2004.08.11 3374
100 공갈成書(9)번역자들 여신을 삭제 위조. 아쉐라 야훼의 부인의 호서 근거 반아편 2004.08.11 3398
99 공갈成書(8) 야훼는 바알신의 변형. 아쉐라는 야훼부인의 고고학적 증거 반아편 2004.08.11 3810
98 공갈成書(7) 신명기는 요시아 문화혁명의 산물. 토라는 신명기파 이데올로기. 댓글+1 반아편 2004.08.11 3582
97 공갈成書(6) 미니 이스라엘국의 멸망. 유다국 야훼파의 절호 기회 반아편 2004.08.10 3600
96 공갈成書(5) 열왕기서의 왕명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도자들을 도용 반아편 2004.08.10 3308
95 공갈成書(4) 솔로몬의 구라궁녀+ 구라신전 + 구라궁궐 댓글+3 반아편 2004.08.10 4337
94 공갈成書(3) 아불함때 낙타는 집짐승이 아니었다. 이때 동전도 없었다. 댓글+3 반아편 2004.08.10 3567
93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 악랄했던 고문 및 처형 방법들 댓글+9 ※※※ 2004.08.04 8062
92 허구왕좌 (2) 야훼의 보좌는 없었다. 토라는 기원후 50년경 까지 손질됐다. 반아편 2004.07.08 3072
91 팦색자 (7~2) 근친윤간 알렉산더교황의 걸작대화 댓글+3 반아편 2004.07.04 5372
열람중 공갈成書(1) 다윗궁은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5평짜리 단칸돌집 댓글+9 반아편 2004.06.26 4176
89 팦색자(7-1) 진짜 犬皇 + 근친윤간 + 색광 절정 Alexander VI… 반아편 2004.06.19 5015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7 명
  • 오늘 방문자 178 명
  • 어제 방문자 193 명
  • 최대 방문자 1,317 명
  • 전체 방문자 202,619 명
  • 전체 게시물 15,132 개
  • 전체 댓글수 38,571 개
  • 전체 회원수 1,522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