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팦색자(7-1) 진짜 犬皇 + 근친윤간 + 색광 절정 Alexander VI (1492~1503)
그의 원명은 Rodrigo Borgia(처음엔Langolo 였는데 부친이 성을 바꿈). 스페인 바셀로나 태생.
Rodrigo는 군인이었고 Vanozza란 과부와 그녀의 두딸을 유혹했고 그 중 한 딸과
네명의 아들과( Franz, Caesare, Ludwig, Gottfried) Lukretia란 딸을 낳았다.
삼촌인 Alfons Borgia가 교황 Kalixtus III(1455~1458)가 되자 즉시 삼촌을 따라 로마로 갔다.
삼촌은 승려도 신부도 아닌 Rodrigo를 추기경에 서품했다.
삼촌의 후계 Innozenz VII가 죽자 27명의 추기경중 22명을 뇌물과 거짓약속으로 꼬여
교황이 된뒤에는 추기경들에게 물질에 청렴하기를 경고하고 불편한 순서대로 하나씩 독살시켰다.
자식에 대해선 아주 세심한 배려를 했다.
Cesare는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Gottfried는 프랑스 왕 Karl VIII의 딸과 혼인 시키고.
Lukretia도 네번이나 여기저기 결혼시켰다. 모두 정략결혼이다. 처음에 13살때 결혼시켰다가 다음엔 나폴리왕의
사생아들과 결혼시켰다가 정략상 다른데 시집보내려고 이혼시켰다. 이는 오라비 Caesare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듯.
Franz(장남이며 제일 아낌)는 Gandia 의 공작으로 임명했는데 시기한 동생 Caesare가 암살시켜 티베르강에
시신을 버렸다. 아홉개의 단도가 꽂힌 시체를 강에서 건졌는데 로마인들은
„알렉산더가 베드로의 제일 후계다운 사람이다. 그는 강에서도 아이들을 낚는다“ 고 비웃었다.
애자 Franz를 잃은 교황은 처음엔 노발대발했으나 곧 잊고 살인자 아들 Caesare에게 온갖 부정을 쏟았다.
세상세력진출이 막힘을 풀기 위해 Caesare를 추기경 성직에서 풀었다. 이는 이때까지 없었던 일이라 한다.
프랑스 왕에 의해 Valence의 공작으로 임명된 뒤 곧 Navarra여왕의 딸과 결혼했다.
교황과 아들들은 딸이며 누이동생인 Lukretia와 교대로 동침했다.
막내아들(?)과 누이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Roderich라 이름지었다.
아비이고 할애비인 교황은 손자이며 아들인 Roderich를 Sermonata의 공작에 봉했다.
교황은 어느날 암수 말한쌍을 창앞에 데려와 교미를 시키며 딸 Lukretia와 즐겼다.
그녀는 이복오래비와도 내연 관계에 있었다.
교황의 예전의장 Burkhart의 1501년 기록에 의하면 교황은 모든 식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50명의
cortegianae = 궁중창녀 (혹은 kurtisanen = 남창이라고도 되어 있음) 들을 동원해 교황청내의 Caesare방에서
파티를 열었다. 처음엔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나체로 그러다가 참석한 사람 모두 여자들과 뒤범벅으로
정사하게 했다. (교황, 아들 Caesare, 딸 Lukretia 앞에서)
끝나는 기념으로는 자신과 교접한 여자들을 제일 많이 알아 보는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루크레치아는 교황아비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었고 교황앞 편지일체를 열람했으며 아비의
부재시 급한 편지는 스스로 답했으며 추기경들을 필요에 따라 소집했다.
알렉산더가 제명에 죽지 않았다면 아들 Caesare는 더 큰 부자가 되었을 것.
교황아비와 아들은 부유한 자의 재산을 차지하는 방법으로 부자들을 독살시켰다.
이렇게 독살된 갑부가 10여명이라 한다.
거부이며 추기경인 Corneto의 재산이 탐이난 두부자는 추기경을 식사에 초대했다.
하인은 실수로 „Requiescat in pace“(= 그가 평화속에 쉬다 = 교황스스로 자신의 독약을 일컬음)을
교황에게 주어 교황은 다음날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아들 Cesare도 같이 독을 먹었고 1년을 고생하다 살아났다..
루크레치아는 Ferrara의 Alfonso 공작과 3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1520년 죽었다.
그녀의 비문엔 „여기에 루크레치아라 하는 Thai (여자 색마 ? ), 알렉산더의 부인, 딸이며 며느리가 잠들다“ 고 썼다.
웃기는 일은 그럼에도 루크레치아를 창녀( Hure = 후레)라고 칭할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바티칸의 규정에는 23000 번 이상을 즐겨야 <진짜창녀>로 칭할수 있다고 한다.
[이 게시물은 꽹과리님에 의해 2004-08-29 18:01:36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