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크리크 학살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샌드크리크 학살

. 0 3,301 2002.07.29 11:47
작성자 : 구경꾼

1864년 콜로라도 주의 동남부 지역의 샌드크리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아라파호 족과 샤이엔 족의 혼합 거주지로 정부에 의해 주어졌던 이곳에는 당시 남자 장정들은 사냥을 떠난 사이에 280여 명의 부녀자 및 어린이들이 남아있었다. 이 때 미국 기병대들이 기습적으로 몰려와서 원주민 전원을 학살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기병대 대장 존 치빙턴 대령은 이전에 광산촌에서 기독교 선교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전직 감리교 목사였다는 사실이다.


치빙턴 대령은 이 사건이 있기 2년전 [글로리에타 협곡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뉴멕시코 지방을 장악하려는 남군의 의지에 쐐기를 박은 북군의 전쟁 영웅으로 콜로라도에서는 '싸우는 목사'로 명성을 날리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을 핍박하고 학살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알을 그대로 두면 이가 되는 법"이라고 하면서 원주민들과의 신사협정을 매정하게 깨뜨려버리고 그들을 몰살시켜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덴버 시로부터 동남쪽 약 1백 마일 지점에 있는 샌드크리크 학살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마을 이름이 치빙턴으로 이름지워져 있는 것은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역사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샌드크리크 학살에서 자행된 만행은 인디언에게는 뼈에 사무치는 한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샤이엔 족과 아라파호 족 인디언은 어릴 때 어머니의 무릎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자녀에게 당시의 만행을 이야기 해주는 어머니는 만행의 주범이 백인 목사였음을 잊지 않고 말해준다는 것이다.



백인병사들이 인디언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절단하는 등 끔찍하기만 했던 만행의 잔혹성은 1996년 2월 하순 덴버공립도서관이 [진짜 서부]라는 이름으로 열었던 전시회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되기도 하였다.


치빙턴 대령은 연방의회와 육군이 샌드크리크 학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여 결국 군복을 벗었으나 덴베에서는 여전히 유지로 행하였으며 1894년 감리교회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조객으로 가득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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