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로 보는 종교사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사로 보는 종교사

화니 1 6,610 2004.04.28 10:43
이란인들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는 인도까지 그 교세를 넓혀갔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은 불(火)이다.

당시 사람들은 불은 나쁜것을 정화하고 깨끗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불은 거룩한 힘을 지녔으며, 그러한 불의 신성함은 여러종교와 왕들이 사용한 화폐, 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다.
현재까지도 인도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결혼을 할때 모닥불 주변을 도는 의식을 행한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의식이며, 그들도 그렇게 알고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성한 불의 힘은 불교의 벽화나 동상을 보면 부처의 어깨위나 그 주변에 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크리스트교의 성경에도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야훼가 불타는 나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묘사되어 있음으로 타 종교에 끼친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쿠샨왕조때 사용된 금화를 보면 쿠샨왕 자신의 어깨위에 신성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형상을 새겨 넣음으로써 위대한 왕으로써의 신성한 힘을 표현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서방종교의 전형적 모습인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神)을 통하여 천국(혹은 지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종교다.

B.C 2세기 인도의 쿠샨왕조당시 유적을 보면 시신의 입안에 동전을 넣고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죽은자가 사후세계에서의 풍요로운 영생을 기원하는 산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로아스터 이후, 인도에서는 석가모니의 출현으로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었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라, 보시와 공덕으로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되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보시란 널리 베푼다는 뜻의 말로서,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보시는 크게 세가지로,

재물로써 베푸는 재시(財施)
석가의 가르침, 즉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 주는 무외시(無畏施)로 구분된다.

공덕이란 결과보다 그것을 쌓고 닦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연기(緣起)와 윤회를 근본으로 하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행위의 하나이다.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아 다른 사람들이 쉽게 건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越川功德),
가난한 사람에게 옷과 음식을 주는 구난공덕(救難功德)·걸립공덕(乞粒功德),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는 활인공덕(活人功德) 등 매우 많으며, 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가 모두 공덕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대교와 크리스트교가 절대자를 숭배함의 댓가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비하여, 불교는 인간 스스로 보시와 공덕을 통한 깨달음으로 가능하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한 것이다.

불교가 그리스로 전파되었으나 그리스인들의 눈에는 불교는 숭배의 대상도 없으며 고행만 해야하는 이상한 종교이며 힘든 종교였다. 또한 동북아시아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부처의 형상을 보고싶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싶다..라는 종교적 염원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열반이후 석가의 상을 만드는 것이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그렇게 500년이 지나고 석가모니의 열반후 인더스강 중류에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변의 지역인 간다라에서 석가모니의 석상이 처음으로 탄생하였으며, A.D 2년 인도의 위대한 왕 카니시카왕의 굽타왕조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이때 중국과 한반도, 일본열도에 간다라 조각상과 불교가 함께 전파되었다.

카니시카왕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한 왕이었다.

왕은 여러지역을 정복하면서도 그 지역의 종교를 존중하였다.
그러한 정책으로 서쪽으로 유럽과 교역을 넓히고 동쪽으로 중국과 교역을 하는등 실크로드의 중간지역을 점령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불교는 그러한 왕의 호위를 받으며 성장해나갔다.

서방의 유대교와 크리스트교는 타 종교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 신에 대한 극진한 신뢰와 믿음, 율법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 모르며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보았다고 기술된 불타는 나무와 기타 성서에서 불로써 설명되는 그들의 신의 성스러움과 거룩함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인지를 모르며, 그것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은 聖火임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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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_= 2004.04.28 17:44
사방으로 꽉꽉 막혀서 인정해야할 것을 인정 못하는 유치하고 편협스럽고 아둔한 인간들... 개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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