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4차 종교회의
.
일반
0
2,717
2002.07.29 12:04
칼케돈에서의 제4차 종교회의. 정식으로는 비잔틴 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소집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흑막은 역시 테오도시우스2세가 죽은 뒤, 마르키아누스를 남편으로 삼은 처녀(?) 부르케리아였다. 주교 축들보다도 자신의 목적을 잘 분별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신학자 에드알트 슈바르츠는 부르케리아가 각 교회의 의사에 반하여 압력적으로 종교회의를 소집, 자신 스스로 주도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 칼케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교황 레오1세는 <도그마 편지>에서 예수의 이중성(二重性)에 대한 신조를 도입시켰다.
이 회의에서 예수라고 하는 인격 안에 신과 인간의 성격이 불가분적으로 합치되어 있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칼케돈 신조>라는 이름으로 이 이중성은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케돈에서는 교리 통일의 호지(護持)가 교황의 개입에 의해 가능할 수 있게 확정되었다.
이에 로마 교황의 탄생이 있게 된 것이다. 그 뒤에 전개될 기초가 여기에서 문서상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바티칸은 빈말로라도 부르케리아가 음모를 꾸며 칼케돈의 종교회의를 열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