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둘다 Nebi Samuel 언덕
귀환자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번식의 여신 아쉐라 숭배를 배척했다.
그들은 벌거벗은 하늘여인 아쉐라여신의 토기조각들을 부수고 숭배를 금지했다.
구약학자 Keel은 이를 „신앙통제“라 표현한다.
호서엔 당시의 날뛰는 종파전쟁을 거의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호서검열자들은 노출부분들을 매우 드물게 간과했다.
시편 63장에 신은 „구름을 타는자“란 표현이 있다. 똑같은 칭호를 날씨의 신 바알에게도 사용되었다.
고고학이 최초로 당시의 실제 정황을 짐작케 해 준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나일강 앗수완 발굴의 결과가 관심거리이다.
이곳 나일강의 섬엔 같은 시대의 이스라엘의 용병무리가 살았었고 예루살렘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서 발굴된 발굴된 원전 460~407년 사이의 신전 우편이 있다.
이 서류엔 객지체류 유태인이 主神 Jahu외에 최소한 3개의 신을 섬겼으며 그중 하나가 사랑의 여신 Anat이다.
최소파 학자들은 이런 발굴엔 놀라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호서는 역사의 의미가 없는 다만 신앙서적이다.
전통파의 학자들도 서서히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학자 Nieh는 그의 무리들도 „호서의 연대를 늦게 책정하는 추세“를 발견했다.
그는 모세오서를 „희랍시대와 페르시아의 안경을 쓰고 보자“고 제안한다.
특히 이상스러운 것은 수수께끼같이 전문학자들 사이에도 알려지지 않은 제사터이다.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Ramot로 가는 443번 도로에 „Nebi Samuel = 선지자 사무엘“ 이란 데가 있다.
녹슨 철조망 너머의 거의 1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제사터이다.
롤러스케이트장 처럼 전체 산봉우리를 힘들여 파 내었다.
바깥부분엔 포도주 짜낸 찌꺼기와 제사용 짐승들의 외양간이 있다.
히브리어로만 되어 있는 중간 보고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백성이 여기에서 비를
축원하는 제사를 하늘에 지냈으며 다른 여러 의미있는 종교의식도 행했다고 한다.
획기적인 발견이다. 예루살렘에서 불과 10km도 안 떨어진 곳에서, 야웨신전에서
거의 바라 볼 수 있는 지점에서 헬레니즘시대에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괴이한 진단 때문에 구약학자 Diebner는 구약학자들에게 „유연성 있는 자료검토“를 권유한다.
그의 슬로건은 „의심을 갖고 호서를 읽으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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