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농민반란
러셀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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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1 15:20
1525년, 남부 독일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성과 수도원이 약탈되었다. 농민들은 교회와 귀족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알고 그 일부를 자신들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뮐하우젠에서는 토마스뮌처라는 전도가가 주동한 농민들이 정규군에 포위되어 학살되었다.
이에 농민들은 루터에게 사태의 전말을 알리고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안색이 새파래지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약탈과 살인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농민의 살인과 강탈에 반대하여"라는 논문을 공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독일의 귀족(公)들에게 "때리고 찌르고 죽여라"는 시사를 한다.
논문을 집필한 시점에는 유혈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논문이 공개되자 봉기한 농민들은 독일 전국에서 말살되어 갔다.
농민들은 루터를 배신자로 저주하였다. 루터는 농민운동에는 반대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교회는 생존이 보장된다. 만일 루터가 농민들에게 자기 이름을 빌려주었다면 귀족계급은 프로테스탄트를 말살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귀족들은 루터를 그들의 동맹자로 생각하였다. 1526년, 독일의 의회는 독일의 각 공국이 자율적으로 프로테스탄트나 카톨릭을 선택할 수 있다는 법률을 가결하였다. 이로서 프로테스탄트는 독일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하였으며, 루터 자신도 개인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수녀원에서 나온 수녀와 결혼한 것이다.
여섯명의 자식을 두고 63세에 사망하였다. 교회의 문에 95개조의 탄핵문을 붙이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지 약 30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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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땐 정치창녀, 강해지면 단체로 미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