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전쟁의 성화(聖化)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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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8 22:51
[인용] 전쟁의 성화(聖化)
살아있는 이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또는,완고한 노인네라고도 불리우는 노암 촘스키 교수의 저작 "불량국가"에서 발췌합니다...
여러 저작이 있겠지만,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와 <불량국가>를 적극 추천합니다.
소위, 강대국이라는 국가들 (특히 미국)이 외치는 그들을 위한, 그러나 교묘히 포장된 "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라는 구호의 허상과, 그들이 벌인 살인축제가 아주 낱낱이 까발겨집니다...
이 분의 책을 읽으면서 물론 엄청난 분노가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그 반대급부로 미묘한 절망감도 느껴지더군요.... 어찌해 볼 수 없다는 절망감, 인간 가치의 허약함에 대한 절망감....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이겠지요. 정의, 용기, 사랑, 봉사, 헌신.... 이런 말들은....
여하튼 기독교에 약간 관련된 내용이 있어 일부 소개합니다.
"광신적 종교의 이중성 혹은 두 얼굴"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광신적 종교는 기독교를 가르킵니다. 다시말해, 그들 집단과 외부 집단에 대한 선택적인 가치관의 적용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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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성화> (p 257~)
800년전 한 스페인의 성지순례자는 메카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편히 지내고 있는데, 전사들은 전쟁에 골몰하고 있다. 전사들은 폭력과 살인이라는 오래된 의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그 때부터 내려오는 교회 기록들을 보면 교회 자체와 일반적인 비전투원들을 위해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45년의 한 칙령에는
"신부, 수도사, 수녀, 여성, 순례자, 상인, 농부, 교회의 방문객, 교회와 주변의 대지, 공동묘지, 수도원, 신부소유의 토지, 양지기와 그의 양떼, 농가 가축, 들판의 마차, 올리브 나무 등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면 안된다."
고 씌어 있다.
니르본 종교회의의 이러한 이러한 칙령은 교회의 지배 영역 밖에서 과연 얼마나 잘 지켜졌던 것일까. 우리는 이를 "프랑크족의 침공"에 관한 아랍권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서방에서는 이를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른다. 1099년 예루살렘이 정복당한 후 바그다드로 도망친 피난민들은 50년 후 침략자들이 그들이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도시와 읍내를 약탈하고 파괴했으며 농민들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살육했다고 보고했다. 현대의 연대기 편찬자들의 기록을 인용하면,
" 금발의 중무장한 전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들어와 손에는 칼을 들고 남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을 살육했으며 가옥을 약탈하고 사원을 파괴했다. 그들은 성벽 안에 있는 한 사람의 회교도도 살려 두지 않았다."
고 했다. 며칠후 살인이 중지되었을 때, 파괴된 가옥의 문간이나 사원에는 피의 웅덩이 속에 수천명이 적어 넘어져 있었다.
(...)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은 자신들의 말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의 무덤에 세워진 교회에 와서 "피묻은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서유럽의 역사가들은 당시에 교회의 전사들이 어떻게 “이교도들을 끓는 냄비 속에 던져 넣고 닭처럼 잡아 쇠꼬챙이에 꿰어 구워먹었는지”를 묘사했다. 한 프랑크의 연대기사가는 그들이 너무 심했다고 느꼈는지 “우리 군대는 죽은 투르크인과 사라센인들을 먹는 것을 서슴지 않고 개도 잡아먹었다.”고 적었다.
영국의 사자와 리처드도 훗날 이와 비슷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는 부담이 되는 포로들, 즉 나포한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 여자와 아이들을 한꺼번에 포승줄에 묶어 십자군에게 넘겨 주었다. 그러면 십자군 병사들은 “이들의 비명이 잠잠해질때까지 칼, 창, 돌멩이로 이들을 무참하게 내려쳤다.” 고 한 아랍의 역사가는 적고 있다. 만행과 파괴는 1204년 콘스탄티노플의 정복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
그리스도교는 이를 모두, ‘전쟁의 성화(聖化)로 보아 왔다.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이교도 전사들을 종교적으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기사도 시대의 만행과 야만성에 정신적 측면을 추가하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현대의 한 영국 역사가는 이렇게 썼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기사는 그 본성 가운데 정신적 면이 열정적으로 구하였던 것, 다시 말하면 완전한 구원과 죄사함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발목까지 차오르는 피 속을 지나갈 때까지 하루 종일 사람들을 도륙하고 저녁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고백했다시피) 실제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교회의 제단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그는 하느님의 포도주로 붉게 물든 것이 아니었던가?”
(….)
아마도 극단적인 야만 행위들 – 적어도 야만적 행위로 기록된 것들 – 은 오랜 옛날의 역사 기록인 성경에도 나온다. 내 생각으로는 어떤 문헌에도 하느님이 자신이 선택한 신민들에게 내린 계율만큼 그렇게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며 광신적으로 학살을 찬미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신의 계율은 선지자 사무엘에 의해 사울 왕에게 전해졌다. 사울왕은 판관들 중 가장 현명한 판관이었다. 사무엘은 계율을 사울에게 전하면서 아말렉족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과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당나귀까지 죽이고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말 것을 명했다. 그 이유는 수백년 전 아말렉족이 성스러운 땅을 정복하려는 히브리인들을 방해 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한 사람 즉 아말렉족의 왕과 몇 마리 소를 살려 주었다. 그러나 사무엘이 이 사실을 알고는 대노하여 길갈의 신전에서 이 포로로 잡힌 죄수를 처형하였다. 이렇게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러한 교훈들은 프랑크의 전사들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그들의 기록으로는 판단하자면 그렇다. 이 교훈들은 또 미국을 정복했던 독실한 영국인들의 가슴 속에도 깊이 새겨졌다. 영국인들은 스스로를 마치 약속된 땅(가나안)을 차지한 이스라엘 민족의 후예로 생각했는지 “불행한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나라를 통째로 빼앗으면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인디언들을 몰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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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너무나 생각해 볼만, 깊이 숙고할 만한 여러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책을 전부 옮길 수는 없기에 일단 기독교의 과거 역사와 관련된 부분만 인용해 보았습니다.
기독교는 (천주교, 개신교를 막론하고) 오늘날 전세계에 널리 퍼졌으며, 현재에도 그들 종교 자체가 내재한 탐욕스러운 확장욕 속에 계속해서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서구의 야만적인 정복욕과 그에 걸맞는 물질문명의 찬란한 발달 속에서 그러한 야만성을 지니지 못했던 아시아 및 남미의 제국가들은 강제적인 침략과 수탈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서구의 침탈의 영향은 아직도 망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서구의 이러한 야만적 침탈의 과정에서 커다란 정신적,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으며, 한 축을 담당하였습니다. 스스로 “사랑의 종교”임을 외치지만, 이 종교의 전파과정을 되짚어 본다면, 이것은 선택적 사랑이며, 이중적 잣대 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를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촘스키 교수는 일련의 저작 속에서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의 과거, 현재의 만행을 까대며 기억에 남는 말을 하였습니다.
“진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 오디세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2-12-18 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