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년전에 어디선가 캡춰해놨던 글. - 생물학자의 진화론 -

초보안티들에게 엄청난 날개를 달아 줄 창조과학회 허접사기자료에 대한 반박게시판입니다

7 년전에 어디선가 캡춰해놨던 글. - 생물학자의 진화론 -

김헿 0 2,152 2003.05.01 08:03
가입기념(?) 으로 올려봅니다.저도참 오랜시간을 낭비해온듯하군요. 아마도 죽을때가되서야 이 신앙이 내게 독이였는지 약이였는지 알게 될것같습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들 중 상당수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아일랜드인들은 그의 이름으로 서로를 날려버린다.
아랍인들은 그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날려버린다. 이맘들(Imams)과 아야톨라들(ayatollahs)은 그의 이름으로 여성들을 억압한다.
독신주의 교황들과 사제들은 그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성생활을 엉망으로 망쳐 놓는다. 유대의 shohets는 그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동물들의 목을 잘라댄다. 과거 역사 속에서 종교가 이룬 업적들-유혈이 낭자한 십자군 전쟁, 고문을 통한 종교 재판, 대량 학살을 행한 스페인 정복자들, 문화를 파괴한 전도 활동 들, 가능한 마지막 순간까지 각각의 새로운 과학적 진리에 행했던 법적 강제력을 빌은 저항들-은 그보다도 훨씬 더 인상적이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에 대한 답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유형의 신들이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반면, 그들이 존재하지 않고 존재했던 적도 없었다고 믿어야 할 근거는 상당히 훌륭하다. 그 모든 것은 엄청난 시간의 낭비였고, 엄청난 생명의 낭비였다. 이토록이나 비극적인 일만 아니었다면, 전 우주적인 농담거리가 될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하느님을 믿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설계에 근거한 주장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 세상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보고 있다-제비 날개의 공기역학적인 날렵한 움직임을, 꽃과 그 꽃들을 수분시켜 주는 나비들의 아름다움을, 현미경을 통해서는 연못물 한방울 한방울마다 충만한 생명을, 망원경을 통해선 거대한 삼나무의 위용을 본다. 우리는 그렇게 바라보는 일을 하는 우리 스스로의 눈이 지닌 전기적 복잡성과 광학적 완벽성을 깊이 새기게 된다. 만일 상상력이 있다면, 이러한 것들로부터 경외와 경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인간 기술자들에 의해 주의 깊게 계획되어져 설계된 것들과 명백한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주장은 18세기 성직자 William Paley의 시계공 비유에서 가장 유명하게 되었다. 설령 시계가 뭔지 모를지라도, 그 톱니와 테엽 장치들이 지닌, 설계된 것이 명백한 특징들과 그것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데 모아졌다는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있었어야만 한다. 언젠가, 어느 곳엔가, 제조자 혹은 제조자들이 존재했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그것을 만들었고, 실제로 우리는 그것이 그 목적에 부합됨을 안다. 그는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 쓰임새를 설계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시계에 대해 사실이라면, 눈과 귀, 신장, 팔꿈치, 뇌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겠는가? 이렇게 아름답고, 복잡하며, 섬세하고, 목적을 가지고 구성된 것이 명백한 구조는 설계자가, 다시 말해 시계공-하느님-이 존재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Paley의 주장을 그렇게 계속되며, 이것은 생각을 깊이 하고 섬세한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아 어린 시절 언젠가에 스스로도 발견하게 되었을 주장이다.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이것은 완벽하게 확실한, 자명한 진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상 가장 놀라운 지적 혁명들 중 하나의 결과로서, 우리는 이제 그것이 틀렸음을, 혹은 최소한 과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살아 있는 세상의 질서와 겉보기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면들이 전적으로 다른 과정, 즉 그 어떠한 설계자도 필요로 하지 않고 작동하며, 기본적으로 물리학의 매우 단순한 법칙들의 결과인 과정에 의해 출현하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Charles Darwin과, 그와 독립적으로 Alfred Russel Wallace가 발견한 바와 같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이다.

설계자가 존재해야만 할 것처럼 보이는 모든 물체들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답은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만일 바닷가에서 투박한 랜즈 모양의 투명한 조약돌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광학자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고는 결론내리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들만으로도 그러한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그냥 “일어났을” 확률이 그다지 낮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구형이고 색채 수치가 주의 깊게 맞춰져 있으며, 눈부심 방지 처리가 되어 있고, 가장 자리에 “Carl Zeiss”라고 새겨져 있는 정교한 복합 렌즈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냥 우연히 생겨날 수 없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런 복합 렌즈의 원자들을 전부 모아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보통의 물리학 법칙들의 제멋대로의 영향력 하에서 무작위로 모았더라면, 단순한 우연에 의해, 그 원자들이 Zeiss 복합 렌즈 형태로, 심지어는 가장 자리 주변에 Carl Zeiss라는 이름이 새겨지는 방식으로 모이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떨어진 원자들이 똑같은 확률로 이룰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너무나 엄청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우연 가설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은 설명으로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한데, 이것은 순환논리가 아니다. 순환논리처럼 보일 수는 있는데, 왜냐하면, 그 어떠한 원자들의 배열도, 나중에 본다면, 매우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공이 골프 코스에 있는 특정한 잔디 잎 위에 떨어졌을 때,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은 바보짓일 것이다. “떨어졌을 수 있었던 수십억 개의 잔디 잎들 중에서, 저 공은 정확하게 저것 위에 떨어졌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기적적인 일인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의 오류는, 그 공은 어딘가에는 떨어져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 사건의 불가능성에 놀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사전에 이야기했을 때뿐이다. 예를 들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티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아무렇게나 공을 때렸는데, 그게 홀인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될 것인데, 공의 목적지가 사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망원경의 원자들을 배열할 수 있는 수조 개의 서로 다른 방식들 중에서, 아주 소수의 배열들만이 어떤 식으로든 유용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아주 극소수만이 그 위에 Carl Zeiss라고, 혹은, 사실상 그 어떠한 인간의 언어들 중 인식할 수 있는 단어라도 써 있게 될 것이다. 같은 논리가 시계의 부품들에도 적용된다. 그것들이 조립될 수 있는 수십억 가지의 그 모든 방식들 중에서, 오로지 소수만이 시간을 가리키는 등, 뭐든 유용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다 확실하게, 생명체의 부품들에도 적용된다. 신체의 부분들이 한데 모여질 수 있는 수백억조의 방식들 중에서, 극소수의 것들만이 살아서, 먹이를 찾아 먹고, 생식을 할 것이다. 산다는 것에 많은 다른 방식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생존해 있는 서로 다른 종들의 수를 생각할 때 최소한 천만 가지의 서로 다른 방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산다는 것에 얼마나 다른 방식들이 존재하건 간에, 죽어 있는 방법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단순한 우연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기에는 수십억 배는 복잡하다--통계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려도 안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그 답은, 우연이 이야기에 끼어들기는 하지만, 유일무이하게 우연만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작은 단계들, 이전 단계로부터의 산물임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마한 단계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작은 우연한 단계들은 유전 물질들에서의 유전자 돌연변이, 무작윈적인 변화들--진짜 실수들--에 의해 일어난다.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신체 구조에 변화들을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들 중 대부분은 해롭고,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그것들 중 소수는 약간의 향상으로 나타나 생존과 번식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자연 선택 과정을 통해, 이로운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방식의 무선적인 변화들은 결국 종 전체로 퍼져 정상적인 것이 된다. 무대는 이제 진화 과정상 다음번에 뒤이어 오는 작은 변화로 넘어간다. 해서, 예를 들어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계속해서 천 번쯤 있으면, 각 변화가 다음번 것의 기초를 제공하게 되는 축적 과정을 통해, 단 한 번의 우연에 의해 나오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최종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로부터, 말하자면 맨살로부터, 단 한 번의 운 좋은 발전에 의해 눈이 출현하게 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조제법이 많은 수의 돌연변이들의 형태로 쓰여 있는 것이라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만일 이러한 돌연변이들이 전부 다 동시에 일어났다면, 완전한 눈은, 실제로, 무로부터 생겨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개입되어야 하는 운의 양이 너무나 막대하다. “올바른” 조제법에는 막대한 수의 유전자들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변화들이 담겨져 있다. 올바른 조제법은 그것과 똑같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수조 개의 조합들 중에서 어느 하나의 특정한 변화 조합이다. 그처럼 기적적인 우연은 분명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눈이 현대의 눈과 거의 같지만 완전히는 같지 않은 그 무엇, 아주 약간만 덜 정교한 눈으로부터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은 완벽하게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같은 식으로, 이 아주 약간 덜 정교한 눈은 그보다도 아주 약간 덜 정교한 눈에서 나오고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각 진화 단계와 그 앞의 것 사이에서 충분히 작은 변화들이 충분히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맨 살로부터 하나의 완전하고 복잡한, 정확히 작동하는 눈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간 단계들은 얼마나 많이 있었던 것으로 허용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긴 시간을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무로부터 작은 단계들을 거쳐 눈이 진화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까?

우리는 화석으로부터 생명이 삼십억 년 이상 지구상에서 진화되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시간을 파악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고도 다행스럽게, 우리 자신의 기대 수명을 제법 긴 시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심지어는 한 세기조차도 살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예수가 살았던 때 이래로 2000년이 흘렀는데, 이는 역사와 신화 사이의 구분조차도 흐릿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나긴 시간이다. 그러한 기간이 수백만 개나 이어져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전체 역사를 하나의 긴 두루마리에 적고 싶다고 생각해 보자. 서력기원 역사 전체를 1 미터 두루마리에 구겨 넣는다면, 기원 후 이전, 진화의 시작까지의 기간이 적힌 두루마리는 얼마나 길겠는가? 기원후 이전이 적힌 두루마리는 밀라노에서 모스크바까지 닿을 것이라는 것이 그 답이다. 그 동안 이루어질 수 있는 진화적 변화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이 담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모든 가축화된 품종의 개들-페키니즈, 푸들, 스파니엘, 세이트 버나드, 치와와-은 수백 년 혹은 기껏해야 수천 년으로 생각될 수 있는 기간 내에서 늑대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밀라노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서 2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늑대로부터 페키니즈로 가는데 포함되어져 있는 변화들의 양을 생각해 보라. 이제 그 변화의 양을 백만 배 쯤 곱해 보라.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눈이 아닌 것으로부터 작은 변화들에 의해 눈이 진화되었을 것임을 쉽게 믿을 수 있게 된다.

진화의 도상, 말하자면 맨 살에서 현대의 눈으로 이르는 과정에 있었던 모든 중간단계들 하나하나가 자연 선택의 혜택을 입었으리라는 사실, 다시 말해 연속선상에서 그 앞에 있던 단계들보다 향상되었거나 최소한 살아남기라도 했으리라는 사실을 충족함을 보일 차례이다. 이론적으로 생각할 때, 거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중간단계들 중 많은 수가 죽었을 것이라 하더라도 그 중간단계들이 하나의 눈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리라고 하는 것은 전혀 훌륭한 증명이 아니다. 눈의 부분들은 모두가 한데 모여져 있어야만하지, 그렇지 않다면 전혀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주장이 되곤 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반쪽 눈은 눈이 전혀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반쪽 날개로는 날 수 없고, 반쪽 귀로는 들을 수도 없다. 따라서 하나의 현대적인 눈, 날개, 귀에 이르게 되는 단계-단계를 이루는 일련의 중간단계들이 존재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주장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어서 그런 것을 믿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궁금할 뿐이다. 반쪽 눈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님이 명백하다. 수정체가 외과적으로 제거된 백내장 환자들은 안경 없이는 그렇게 잘 보지 못하지만, 아예 눈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낫다. 수정체가 없으면 자세한 상에 초점을 맞출 수는 없지만, 장애물에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있고 포식자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반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다는 주장의 경우, 서로 다른 많은 유형의 포유류들과 도마뱀들, 개구리들, 뱀들, 그리고 오징어들을 포함하여, 매우 성공적으로 활강하는 동물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로 사실이 아님이 증명된다. 나무 위에서 거주하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은 관절들 사이에 펼쳐지는 살이 있는데, 이것들은 사실상 날개 조각과도 같다. 만일 나무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살을 펼치거나 몸을 펄럭여서 표면적을 넓히는 일을 함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펄럭임이 작건 크건, 언제나 임계 높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높이의 나무에서 떨어지게 되면, 아주 약간 더 큰 표면적에 의해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손들이 그 추가적인 표면적을 갖도록 진화하게 되면, 설령 조금 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생명을 건질 가능성이 약간 더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알아차리기 힘든 단계들을 거쳐, 수백 세대가 이르면, 완전한 날개에 도달하는 것이다.

눈이나 날개는 단 하나의 단계로 존재하게 되었을 리 없다. 그런 일은 거대한 은행 금고실을 여는 암호 숫자를 우연히 맞추는 것처럼 거의 무한대와도 같은 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물쇠의 번호판을 무선적으로 돌리고 있고, 그럴 때마다 금고 문이 끼익하고 열리게 될 행운의 숫자에 조금씩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면, 곧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한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달성하는 비밀인 것이다. 매우 다른 앞의 것으로부터는 나왔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라도 아주 약간만 다른 앞의 것으로부터는 나왔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 다른 앞의 것들이 충분히 많이 연속해서 있기만 했다면, 다른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 어떠한 것이든 얻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진화는 일찍이 신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일들을 행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가 있을까? 답은 그렇다 이다. 그 증거는 압도적이다. 수백만 개의 화석들이 진화가 일어났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확한 깊이와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단 한 개의 화석도 진화 이론이 예기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런 일은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을 정도로 오래된 암석 속에 들어 있는 포유류 화석은 진화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세계의 대륙과 섬들에 있는 살아 있는 동물들과 식물들의 분포 패턴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느리고 점진적인 수준으로 진화되어져 왔을 때 기대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물과 식물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닮은 정도의 패턴도 어떤 것들은 매우 가까운 친척들이고 다른 것들은 서로에게 보다 먼 친척들일 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전 신호가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있어서 동일하다는 사실도 단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압도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진화의 증거는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창조 이론을 살리는 유일한 방도는 마치 진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막대한 양의 증거를 하느님이 의도적으로 묻어 놓았다고 가정하는 것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화석들, 동물들의 지리학적 분포, 그리고 기타 증거들이 하나의 엄청난 신용 속임수라는 것이다. 그런 속임수가 가능한 하느님을 숭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증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존엄하고, 또한 과학적으로 훨씬 더 합당하기도 하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은 서로 친척이며 삼십억 년보다도 오래 전에 살았던 하나의 먼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렇다면, 설계에 근거한 주장은 하느님을 믿는 근거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다른 주장이 또 있을까? 일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내적 계시로 보이는 일들 때문이다. 그런 계시들이 항상 교훈적인 것은 아니지만, 해당 개개인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다. 정신 병동에 사는 많은 거주자들도 자신들이 나폴레옹, 혹은, 정말로, 하느님 그 자신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내적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확신이 끼치는 힘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믿을 그 어떠한 이유도 갖고 있지 않다. 사실, 그런 믿음들은 서로 모순 되기 때문에, 그것들 전부를 믿을 수도 없다.

이야기해야 할 것이 약간 더 있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만, 무로부터 시작할 수는 없었다. 어떤 종류이건 초보적인 재생산과 유전 혈통이 생기기 전까지는 시작될 수 없었다. 현대의 유전 혈통은 DNA 신호를 기초로 하는데, 그것은 단 한 번의 우연으로 자발적으로 생겨나기에는 그 자체로도 너무 복잡하다. 이는, 지금은 사라진, 그보다 더 오래된 어떤 유전 체계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여서 우연과 화학 법칙들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고 원시적인 형태의 누적적인 자연 선택이 시작될 수 있었던 장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DNA는 이러한 초기의 누적적인 선택에 의해 생겨난 산물이다. 이러한 원래 형태의 자연 선택 전에는 복잡한 화학 혼합물들이 보다 단순한 것들로부터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고, 그 이전 시기에는, 잘 이해되고 있는 물리학 법칙들에 따라 그 화학 요소들이 보다 더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순수한 수소로부터, 우주를 촉발시킨 빅뱅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만들어졌다.

일단 우주가 근본적인 물리학 법칙들과 함께 시작된 다음에는 복잡한 질서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하느님이 필요 없기는 하지만, 모든 것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그렇게 많은 몫의 일을 하느님에게 남겨 주지 않는다. 그저 빅뱅이 시작되게 한 후, 물러 앉아 모든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상이다. 물리화학자 Peter Atkins는, 아름답게 쓰인 자신의 저서 “창조(The Creation)”에서 모든 것을 촉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적은 일만을 하려고 고분 분투하는 게으른 하느님을 고찰하고 있다. Atkins는 우주 역사의 매 단계가, 간단한 물리 법칙에 의해, 그 이전 상태로부터 나오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런 식으로 그는 게으른 창조자가 했어야 할 막대한 양의 작업들은 잘라 내어, 끝에 가서는, 그는 그 어떠한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우주의 초기 국면들의 자세한 내용은 물리학에 속하는데, 나는 생물학자이기 때문에, 복잡한 진화라는 나중 국면들에 보다 더 관심이 있다. 나로서는, 설령 물리학자들이 우주가 시작되기 위해 필요한, 태초에 존재했어야만 하는 최소의 것을 상정한다 하더라도, 그 최소의 것이 확실하게 극단적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정의상, 단순한 전제 위에 세워진 설명들이, 복잡하고 확률적으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시작들을 가정해야만 하는 설명들보다 더 가능성이 있고, 더 만족스러운 법이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보다도 더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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