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6.. 예측적 등가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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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6.. 예측적 등가성 문제

발견 0 1,916 2002.09.14 14:29
페일리는 왜 신의 존재가 생명체들의 속성에 대해서 그렇게도 그럴법한 설명을 준다고 생각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는 유기체들이 그들이 영위하는 삶에 완벽하게 적응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신이 완벽한 호의와 지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과 생명체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서로 기가막히게 들어맞는다. 이 중의 하나를 그대로 둔 채 다른 것을 바꾸면 설계 가설과 그 관찰들 사이의 조화는 무너진다. 현대 생물학이 페일리가 자기의 관찰 자료로 삼았던 것을 수정하였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만일 종들이 불완전하게 적응되어 있다면-만일 많은 형질들이 임시변통이고 심지어 쓸모없을 수도 있다면, 그렇다면 페일리가 생각했던 바 설계자로서의 신의 요청은 훨씬 덜 그럴법해진다.

이 절에서 나는 페일리의 설계 가설과 관찰 자료에 대한 그의 견해에 수정을 가하는 두번째 방법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존재자일까에 대한 우리의 그림을 수정한다고 해보자. 이런 수정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그것을 전부 검토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중 두 가지 수정 방법은 창조론과 진화 사이의 논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이 어떤 논리를 가졌는지 이해하려면 고찰해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페일리의 신관을 수정하는 첫째 방법은 종의 기원의 문제에서 신을 제외시키는 것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으되 뒤로 물러나 앉아서 물리 법칙들이 스스로 일을 해나가도록 놔두었다고 믿는다고 하자. 이런 종류의 신관(이신론deism)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과 상충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신관이 그럴법한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존재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물어야 한다. 이 물음을 탐색하는 것은 설계 가설 얘기에서 벗어나서 더 일반적인 철학적 쟁점에로 들어가는 셈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지적할 점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이 그럴법한가를 평가하는 장면에서 이런 종류의 신관은 경합하는 가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화론이 특수 상대성 이론과 경합하지 않듯이 이런 신관과 경합하지 않는다. 이 이론들은 전혀 다른 현상들에 관한 것이다.

페일리의 신관을 바꾸는 방법으로서 내가 고찰하고 싶은 또 하나의 방법은 앞 절에서 기술한 개연성 원칙의 밑둥을 잘라내는 것처럼 보인다. 신이 종들을 각각 별도로 창조하였으나 종들이 자연 선택에 의해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오도하는 방식으로 창조하였다는 가설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사기꾼" 신 가설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두 가설들은 우리가 생물계에서 관찰하는 것들에 대하여 똑같은 예측을 준다. 이 가설들은 예측적으로 등가(predictively equivalent)이기 때문에 어떤 개연성 논증을 펼쳐도 관찰들이 둘 중의 어느 한 가설을 더 선호한다고 보여줄 수 없다. 신 개념을 페일리가 생각한 호의적인 설계자에서 방금 기술한 사기꾼으로 바꾸면 설계 논증은 반증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이것으로 설계 논증은 무사히 살아남으며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은 우리가 아는 것들에 의해서 강력하게 지지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를 도식적으로 정리해서 그 논리를 드러내보자. 우리는 하나의 관찰에 비추어 두 가설의 개연성을 고찰하였다.

O:      유기체들은 그들의 환경에 불완전하게 적응되어 있다.
Dp:    종들은 전지전능하고 호의적인 신에 의해서 각각 별도로 창조되었다.
Ev:    종들은 자연 선택 과정에 의해서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하였다.

이 관찰은 페일리의 설계 가설(Dp)보다 진화 가설(Ev)을 선호한다. 즉 P(O/Ev) >> P(O/Dp)이다. 그러나 이제 설계 가설의 새 버전을 보자.

Dt:    종들은 신에 의해서 각각 별도로 창조되었는데, 신은 그것들이 마치 자연 선택 과정에 의해서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 사기꾼 가설은 와일드 카드다. Dt와 Ev는 예측적으로 등가이다. 즉 자연 선택 가설이 유기체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예측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기꾼 신 가설도 같은 것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이 가설들은 같은 개연성을 갖는다. 즉, P(O/Ev) = P(O/Dt)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진화 가설이 진리라는 우리의 확신을 약화시켜야 하는가?

2.2절에서 개연성 원칙을 설명할 때 나는 개연성이 높은 가설이라도 아주 그럴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었다. 예를 들어서, 다락방에서 그렘린들이 보울링을 하고 있다는 가설은 우리가 듣는 소리에 비추어 볼 때 개연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소리가 그렘린 가설이 아마도 옳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사전에 그렘린의 존재가 매우 그럴법하지 않다고 간주할만한 이유들을 갖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다락방의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저 위에 그렘린들이 보울링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도록 해주지 않으며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사기꾼 가설 Dt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반대 논증을 펼 수 없을까? 이 가설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과 개연성이 같지만 우리가 이것을 그럴법하지 않을 걸로 물리쳐야 할 다른 이유가 없을까? Dt는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하여 좀 이상스런 생각을 담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사기꾼일 거라는 생각이 아주 그럴법하지 않다고 논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신은 정의에 의해서 완벽하게 호의적이고 전지 전능하다고 주장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제안은 별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신이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보통의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이 사기꾼이 아니라고 생각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나는 신 개념의 정의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종교들이 신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하며 신이 반드시 그중 하나의 종교적 전통에서 말하는대로여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편파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 사기꾼이라는 생각에서 어떤 모순도 볼 수 없다.

가설 Dt에 대하여 제기될 수 있는 두번째 비판은 그것이 검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Dt에서 문제는 그것이 어떤 증거에 비추어 그럴법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럴법한지 아닌지 결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제안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좀 더 자세히 연구하기로 하겠다. 지금의 요점은 진화 가설과 사기꾼 가설 강에 모종의 대칭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기꾼 가설이 검증 불가능하다면 혹시 같은 말을 진화 가설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어쨌든 이 두 가설은 같은 예측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개연성 원칙이 상대적 원칙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어떤 가설을 검증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한두 개의 경합하는 가설들과 대비시켜서 검사한다. 그 관찰들은 Dp보다는 Ev를 선호하지만, Dt보다 Ev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개연성에 관한한 진화 가설은 사기꾼 가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개연성은 진화 가설과 사기꾼 가설을 변별해주지 못하지만 나는 이것이 진화론이 진리임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v와 Dt의 예측적 등가성은 Ev에서 어떤 특별한 오류도 적시해주지 않는다. 세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완벽하게 그럴법한 믿음 하나를 골라보라. 그러면 그 그럴법한 믿음과 예측적으로 등가인 하나의 사기꾼 대안을 꾸며내는 일이 언제나 가능하다.

예컨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내 앞에 인쇄된 종이가 한 장 있다'는 믿음을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믿음에 대해서 내가 가진 증거는 내가 지금 경험하는 바 시각적, 촉각적 감각들로부터 나온다. 이 증거는 예컨대 내 앞에 야구 방망이가 있다는 가설에 반대하여 내 앞에 인쇄된 종이 한 장이 있다는 가설을 강하게 선호한다. 즉

O:      나의 현재의 감각 경험들
Page:  내 앞에 인쇄된 종이 한 장이 있다
BB:    내 앞에 야구 방망이가 있다.

라고 표기할 때 P(O/Page) >> P(O/BB)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내가 지금 갖는 경험들은 나에게 Page가 진리라고 믿을 강력한 이유를 주지만 BB가 진리라고 믿을 이유는 거의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개연성 원칙은 왜 이렇게 되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여기서 와일드 카드를 하나 도입해보자. (이것은 데까르트의 "성찰(Meditations)"에 나오는 전능한 악마 얘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Trick:  내 앞에는 인쇄된 종이가 없다. 그러나 사기꾼 신이 나로하여금 내 앞에 인쇄된 종이 한 장이 있다면 내가 가졌을 바로 그런 경험을 갖도록 만들었다.

개연성은 BB보다 Page를 선호하지만 Trick보다 Page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Page와 Trick은 예측적으로 등가이기 때문이다.

Page가 Trick보다 더 개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쩌면 독자 여러분 중에는 이 두 가설이 예측적으로는 등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age가 Trick보다 더 그럴법한 이유를 설명하는 고려사항들을 끌어댈 수 있을 거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또 이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이 태도 중의 어느 편이 옹호할만 한 것인지 따지고 싶지 않다.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내가 현재 갖는 시각 인상들에 대한 세 가지 설명들과 유기체들의 적응적 불완전함에 대한 앞서 논의한 세 가지 설명들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명백하게 참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라도 (예컨대 지금 내 앞에 인쇄된 종이가 있다는 따위의 믿음이라도) 예측적 등가성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Page는 우리가 명백히 옳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도, 그것을 Trick과 어떻게 변별시킬 것인지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이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는 사실은 특별히 이 가설에 무슨 약점이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설계 가설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버전을 고찰하였다. 둘 다 종들은 신에 의해서 별개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페일리의 신은 완벽한 존재이지만, 사기꾼 신은 그의 수법을 감춘다. 물론 유기체들의 설계자인 신이 어떤 존재일까에 대하여 그 두 가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살펴본 것보다 더 많은 버전의 설계 가설들이 있을 것이다.

페일리 버전의 설계 가설은 우리가 자연에서 관찰하는 바에 의하여 훼손된다. 사기꾼 버전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앞에 인쇄된 종이가 있다고 믿으면서 자기가 현재 갖는 시각 경험에 대한 사기꾼 설명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설계 가설의 사기꾼 버전도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논증하였다. 그러나 진화 가설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관찰하는 바를 좀 더 그럴법하게 설명하는 다른 버전이 있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내가 알기에 그런 버전의 설계 가설을 전개했던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아무도 못하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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