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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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 (2)

오디세이 0 1,958 2002.08.05 18:32
III. 생명 발생의 단계들





앞에서 살펴본 정도면 실제 생물학 연구를 살펴볼 수 있는 기본적인 장비는 갖춘 셈이다. 이 장비들을 가지고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지역으로 탐험을 떠나보자. 생물학의 많은 분야 중에서 이 영역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이 주제를 다룬 교양 과학 서적이 출판되어 있다 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영역이 생명의 신비에 다가가려는 생물학자들의 노력과 그것이 가지고 있 는 문제점이 모두 노출되어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을 살펴보는 것이 '과학'적인 활 동에 가려 있는 현대 생물학과 진화론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더 적당할 듯도 싶지만 마땅히 살펴 볼 만한 우리 글로 씌어진 책이 없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론을 ?생물체는 매우 단순한 원시 생물로부터 연속적인 유전의 과정을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받아 들인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원시 생물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문 으로부터 이 분야의 연구가 시작 되었다. 오늘날 이 분야의 연구는 지구물리학적 단계, 화학적 단계, 생물학적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지구 물리학적 단계와 화학적 단계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책이 밀러와 오르겔의 {생명의 기원}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지구의 초기 역사, 특히 지구의 원초적 대기의 성질에 대한 연구에 할애되어 있다. 천문학과 지질학의 증거와 이론들을 빌면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2-45억 년 전의 지표면은 유동적이었고 5-10억 년 동안 지각이 형성되면서 식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론적 연구 결과 생명 탄생 이전의 대기의 상태도 추정할 수 있 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결과를 보충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의 온도는 약 500 - 1000˚C가량이었을 것이고 압력은 수증기 분압이 500기압 정도,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분압이 40기압 정도, 수소 분압이 10기압 정도로 짐작된다. 그리고 지각은 환원성이었고 대기는 약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학적 단계에 대한 연구는 원시 지구와 같은 조건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화학적 소재들이 어떻게 합성되는가를 연구한다. 이 단계에 대한 연구에 밀러와 오르겔이 큰 기여를 했다. 이들이 초기 대기와 비슷한 모델 시스템에서 아미노산의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pp.125-174). 그리고 최 근에는 중합 시약을 사용해서 거대 분자의 합성에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 었음에도 아직까지 핵산의 성분인 뉴클레오티드의 합성에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생물학적 단계는 화학적 단계에서 생성된 소재들이 결합하여 생물학적 조직들을 만드는 단계 이다. 이러한 생물 조직의 탄생은 30-35억 년 전 정도에 있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40억 년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바로 이 단계, 무생물로부터 생물로의 진화의 단계를 설 명하는 이론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 화학적 진화(chemical evolution) 이론이다. 화학적 진화 이론의 요점은 현재 생명체들이 보여주는 생화학적 통일성에 근거하여 생명체의 분 자들이 원시 대기의 조건에서 쉽게 만들어져 무수한 시간과 해양의 풍부한 자원 때문에 생식과 진화가 가능한 태초의 개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생물학자들의 연구가 집중되어 있다.

다이슨은 {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의 4장과 5장에서 초기 지구에 아미노산이 물에 상당히 농축된 형태로 존재하다가 자체 촉매적 성격을 지닌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가 생겨났고 이 들 내부에 우연히 단백질의 효과적인 형성을 매개할 뿐만 아니라 자체 복사의 가능성을 지닌 핵 산 분자가 생겨나 완성된 형태의 생명체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이 가설은 처음에 오파린(A. Oparin)이 제안하고 다이슨(F. Dyson)이 정교화 시킨 것으로 노이만(J. Neumann)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념, 마굴리스(L. Margulis)의 세포 진화에서의 공생 개념, 기무라(M. Kimura)의 중 성 진화 개념 등을 차용한 것이다. 다이슨은 코아세르베이트가 맨 처음에 만들어졌고 그 내부가 뉴클레오티드가 합성되기에 적당한 환경이었다고 설명함으로써 화학적 단계에 대한 연구에서 뉴 클레오티드의 합성을 관찰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코아세르베이트 수준에 서의 진화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진화에 필수적인 다윈적 선택을 위해서는 어버이의 정보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만 하는데 코아세르베이트에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전 기구가 없다. 다이슨은 생명의 처음과 끝을 통괄하는 역사의 과정에서 임의적 통계의 변동 이 종의 진화를 유발하는데 다윈의 자연 선택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유전 기구가 없어도 성장 분화 복제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큰 것 같지는 않다.

이와 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RNA분자가 먼저 형성되고 단백질 제작을 매개하 는 핵산 중합체가 점진적으로 출현했으며 다시 단백질들이 필요한 효소의 기능을 하면서 핵산 분자 주위에 세포막을 형성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 가설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번째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핵산같이 복잡한 분자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가설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유전자가 진화의 초기에 존재하려면 복제의 오류가 다음 세대에 축적되어가는 ?오류의 연쇄 작용(error catastrophe)?이 생긴다는 것이다. 통 계적으로 N개의 독립적인 단위가 존재할 때 1/N이하의 착오 발생률을 보이는데 이 이론의 주창 자인 아이겐(M. Eigen)의 계산으로도 비생명적 조건에서 RNA의 복제에서 착오 발생률은 1/100 정도였다(p. 107). 이 수치는 자연 상태에서 정보가 여러 세대에 걸쳐 온전히 전달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RNA의 세계?는 RNA분자의 반응성이 커서 초기 지구 같은 상황 에서 그냥 존재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고 가수 분해로부터 보호되는 특별한 환경이 준비되 어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화학적 진화 이론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넘어가보고자 제안된 것이 {생명의 기 원에 관한 일곱 가지 단서}에 담겨있는 유전자 점령(genetic turnover) 이론이다. 케언스-스미스 는 현재까지 지배적인 화학적 진화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우선 그는 화학 적 진화 이론이 생명의 출발을 현재 생명체의 구성 분자들의 생성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상 상 가능한 가장 간단한 형태의 생명체나 생체분자라고 하더라도 원시 지구가 무리없이 생산해냈 을 것으로 보이는 분자들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각 부분들이 모두 전제가 되어 이루어 지는 전체라고 보았을 때 생명체 내의 다양한 기능들의 상호 의존 관계는 단계적 진화의 산물이라기 보다 원시 구조(Low-tech)로 부터 고등 구조(High-tech)로 건너뛰면 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착상에서 출발하여 케언스-스미스는 스스로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 것 중에 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결정(crystal)이 최초의 유전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구에는 태 양 에너지를 공급받는 물의 거대한 순환계에 의해 점토 광물들이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다. 점 토 광물은 입자의 직경이 1/1000 mm정도이고 물 속에 잘 용해되지 않으면서 물 속에 떠다니는 입자들인데 자연적으로 뭉쳐 결정을 이룬다. 결정이 정보를 담은 유전자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한 방향으로만 자라나야 하고 그 방향으로만 부러져야 하는데 점토 결정은 이 조건을 만족한다. 이 결정들로부터 자연적으로는 발생할 수 없었던 생명체인 2차적 생명체들이 생겨난다. 이 과정 은 광물 생명체들이 유기 분자들을 획득하면서 시작한다. 실제로 철염 등은 자외선 아래서 일산 화탄소를 포름산으로 고정하고 이산화티탄은 질소를 고정한다. 광물이 일단 고정된 유기 분자들 에 촉매로 작용해서 더 큰 유기 분자가 합성되고 이 분자들이 점토의 합성을 돕는 환경을 만들 어주면서 생명체의 구성 성분이 된다. 만들어진 유기 분자들 중에서 몇몇이 복제 능력을 획득했 고 이들에 의해 현재 생명체에서 보이는 핵심적 통제 기구들이 완성되어 유기 분자들로 만들어 진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등 구조를 가진 생명체가 원시 구조를 가진 것보다 효율이 높아서 지구를 점령했다는 것이 이 이론의 결론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연구 들이 표면유기화학 분야에서 최근 몇 년 간 계속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도 아이겐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시작에 정보를 두고 있으므로 검증을 위해서는 오류의 연쇄 작용을 피할 기작을 고안해야만 한다.




IV. 해결해야 할 문제들





마치 멘델의 유전학이 진화론에 변이와 유전의 기작을 제공했듯이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학 자들은 진화론의 첫머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화론에 입각해서 가설을 세 우고 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화학의 방법들을 도입해서 수많은 가능성들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것 이다.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이 글에서 검토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생물학의 다른 영역들에서 도 같은 유형의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물학,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근대 '과 학'이 역학 이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17세기부터 화학이나 생물학도 그 모델을 좇아서 '과학' 의 지위를 획득하기를 갈망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초에 프랑스 과학을 지배했던 라플라 스(P. S. Laplace)의 프로그램이다. 뉴튼 역학을 해석학의 방법을 사용해서 수학적으로 완결지은 라플라스는 천체 역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똑같은 형태의 체계화를 추진했다. 열 빛 전기 자기 등의 다양한 현상을 물질 입자와 그들 사이의 힘을 사용하면 수학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라플라스 혼자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것이었고 많은 수의 과학자들 이 여기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쿨롱(C. Coulomb)이 이 프로그램에 따라 전기 력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이 때문 에 많은 부분의 발전이 지체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생물학 이론이 라플라스의 프로그램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한동안 세탁기 광고 덕분에 사람들 입에 널리 오르내렸던 카오스 이론은 이상화된 조건에 대 한 수학적 기술에 근거한 근대 '과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렇듯 물리학 내부에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궁리하고 있는 마당에 많은 생물학자들이 아직도 근대 '과학'의 이상에 남들보 다도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생태론적 사고가 요구된다고 하면서 계량 생태학(exact ecology)을 추구하다니! 생물학 이론은 닫힌 체계에 대한 완결된 이론이 아니라 열 린 체계에 대한 귀납적 이론이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의 '과학' 활동은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이 점을 깨닫고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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