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추방 - by 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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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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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1
2004.08.26 11:11
글을 읽기 전에...
- 원문은 http://www.wchat.on.ca/humanist/creation.htm에서 가져왔습니다.
- 본문에 나온 ‘창조주의’라는 단어는 creationism을 번역한 것입니다. 창조주의는 특정 종교의 교리에 입각한 믿음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사상을 말하는 ‘-ism’이라는 접미사가 원문에 쓰였고, 그 의미에 충실하여 ‘주의’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 본문에 나오는 ‘야훼’는 원문의 God을 해석한 것으로 ‘하나님’으로 번역하려 했으나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지주인 하나님(=하느님, 한얼님 등)의 이름을 도용한 것을 그냥 쓰는 것은 바르지 않은 것이므로 원래 유대 부족의 신인 야훼(Jahweh)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 본문은 번역에 있어서 의역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국어 문장구조와 우리 정서에 맞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으나 원문의 내용에는 충실을 기했습니다.
목차
-도입
-창조 ‘과학’이란 무엇인가?
-창조주의 : 종교인가 과학인가?
-진화 : ‘단지’ 이론일 뿐인가?
-교실 속의 창조주의
-제 2의 스콥스 사건
-캐나다에서는...
-교육의 자유
-결론
-참고도서
-참고문헌
-역자후기
왜 창조 ‘과학’은 교실에서 추방되어야 하는가
리차드 영 지음
도입
어떤 한 사람이 정색을 하고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 보자. 창세기에 기록되었듯이, 지구는 초자연적인 권능의 손에 의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오전 9시부터 문자 그대로 6일에 걸쳐 창조되었다고. 그리고 기원전 22세기에 노아라는 사람이 대홍수를 예견하고 고퍼나무로 큰 방주를 만들었으며, 그와 그 가족들은 세균이나 선인장, 캥거루, 푸른고래, 펭귄, 북극곰, 공룡과 에이즈 바이러스 등까지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수백만 종의 동식물들의 대표들을 모아서 그 방주 속에 넣었다. 그 방주는 40일동안의 폭우, 1년동안의 표류생활을 거쳐 중동의 한 산 정상에 다다랐으며, 각 동식물들은 잘은 모르지만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 각각이 거주하는 대륙들로 옮겨졌다고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52억의 세계 인구는 4000년 전에 그 방주에서 나왔던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이 사람이 이야기를 계속할수록 당신은 수수께끼에 빠져드는 듯 하다. 결국 그는 이러한 인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창조 ‘과학’이라고 부르면서 이러한 ‘설명’들이 전 세계의 과학 수업에 전해지는 것을 야훼가 바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상은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테네시주의 데이톤에서 열렸던 악명높은 스콥스 씨의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 ; 1925년, 테네시주 데이톤에서 열렸던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재판. 고등학교 일반과학 교사였던 존 스콥스(John Scopes, 당시나이 24)씨가 불법으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 하여 일어났던 소송사건입니다. 결국 이 재판은 정계의 유명인사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세번이나 올랐던, 당시 반(反)진화론 운동을 주도하던 윌리엄 J. 브라이언이 저녁식사 후 잠시 수면을 취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흐지부지 끝나게 됩니다. 이 소송사건으로 인해 반(反)진화론자들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으며, 결국 진화론 교육 금지 법안을 상정중이던 15개 주 중에서 단 두개 주(미시시피 주, 아칸서스 주)에서만 그 법안을 통과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Scopes ‘Monkey Trial’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http://www.law.umkc.edu/faculty/projects/ftrials/scopes/scopes.htm에서 보실 수 있으며, 곧 소개드릴 예정입니다.-역자)’이 있은지 70년이 흐른 현재에도, 위의 저러한 ‘상상’ 시나리오는 오늘날 미국과 (현재는) 좀 덜하기는 하지만 캐나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독자들에게 창조와 진화 사이의 쟁점을 소개하고, 그것이 온타리오와 해외 등지에서 교육과 관계된 일들을 알리고자 한다.
창조 ‘과학’이란 무엇인가?
유명한 자가당착적 단어(‘애늙은이’처럼 상반되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역자)인 창조 ‘과학’은 근본주의(Fundamentalism, 20세기 초기의 미국 신교 운동이며 성경의 기사를 모두 옳다고 함-역자)의 한 부분이다. 이 근본주의는 독선적, 근시안적 고집과 불독 같은 끈질김으로 성경 무오류 교리(즉 사실주의)(성경의 내용은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문자적으로 사실이며 절대로 오점이 있을 수 없다는 견해-역자)와 결부되어 성경의 관점이 모든 학교 과목에서, 특히 과학에서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창조주의자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베짱이는 다리가 4개고, 지구는 편평하게 생겼고, 우주 비행 같은 소리는 다 거짓말이며, 태양이 가만히 있는 지구 주변을 돌고, 토끼가 반추동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성경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고, 그 성경이라는 것은 “모 아니면 도” 식의 책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의자들은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그러한 것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어느 중요한 성경구절을 은유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자신들의 근본주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구절의 은유적 해석은 대부분 기독교인에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창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문자적이지 않은 해석은 신앙의 소멸 그 자체가 된다. 창조주의자들은 ‘진화론적 사고’의 팽배가 신앙의 약화의 원인이 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성교육, 술, 자살, 여성해방운동, 테러, 동성애, 인플레이션, 사회주의, 인종차별주의, 음란서적 등” [1]의 세상의 모든 죄악에 대해 창조주의자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죠지아 주의 창조주의 로비스트인 브라셀 딘 판사는 다양한 범주의 범죄들을 진화론과 밀접하게 연관시켰다. (그러면서 창조주의에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았다.)
…다윈의 원숭이 설화는 낙태와 자유방임주의, 난교(亂交), 타락, 임신, 피임, 포르노, 환경오염, 중독, 모든 종류의 범죄증가 등의 원인이다. [2]
이상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들의 많은 부분이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처음으로 진화론을 편 책-역자)을 쓰기 전부터도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딘 판사는 다윈 책의 신간견본(발매 전에 비평가 등에게 보내는 글-역자)이 어떻게든 사탄에 의해 19세기 이전의 죄인들에게 전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창조주의자들의 교육기관은 미국, 캐나다, 호주를 포함한 몇몇 국가에 세워져 있다. 몇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헨리 M. 모리스가 1970년 설립)
2. Christian Heritage College (샌디에고 근교 엘카존의 산기슭에 1970년 설립)
3. The Creation-Science Research Center (샌디에고에 넬 세그레이브가 1970년 설립)
4. The Creation Research Society (앤아버에 10명의 창조 과학자들이 1963년 설립)
5. The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Canada (브리티쉬 콜롬비아주 밴쿠버에 1967년 설립)
6. The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Alberta (등록된 자선단체로서 첫번째 목적은 “학교 교육과정에 과학적 창조주의가 포함되도록 추진하는 것”이다.)
7. The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Ontario (온타리오주 스카보러)
이 교육기관 중 많은 곳에서는 창조주의자들의 출판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형편없는 과학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나 고등학교, 대학 등지에서 “창조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발표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창조주의자들의 연구기관들에서 실행해온 연구 중 가장 논리적이었던 것은, 터키의 아라랏 산에 탐험대를 파견하여 노아의 방주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고퍼 나무로 만들어진 ‘동물원 배’의 흔적은 없다 [4, pp97-101, 187-195].
창조주의 : 종교인가 과학인가?
30년 전에, 창조 과학자들은 그들 자신을 창조 선교사라 부르며 자랑스럽게 ‘창조주의자들의 복음’을 설교하고 다녔다. 그 이후로 창조주의자들은 점점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서 접근 방법을 달리하여 ‘선교사’라는 단어를 ‘과학자’라는 단어로 바꿔치기 했다. 그러나 장미가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달콤한 향기까지 다를 수는 없는 법(왜 이렇게 좋은 비유가 쓰였는지는 납득이 가지 않지만-역자). 창조주의의 악취나는 잡초들은 그대로 무성하게 남아있다. 이름을 이렇게 체계적 바꿔치기한 것은 성경 근본주의 원칙에다가 달콤한 사탕발림을 해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창조주의자들의 생각을 과학 수업에 넣는 것을 결정하는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학교측이나 정부의 관리들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창조 ‘과학’의 과학적인 면에서 장점은 무엇인가? 창조주의가 과학수업에 어울리는가 아닌가를 정하기 전에, 우선 이 질문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창조 ‘과학’은 진화론의 설명이나 예견 능력에 대해 어떠한 것도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진화론 (혹은 다른 어떤 과학분야라도)이 현재까지 풀어내지 못하는 질문들에 대해 어떠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창조론자들이 과학이라고 제시하는 것들은 사실상 손금보기나 점성학, 중세의 연금술 같은 가짜 과학일 뿐이다. 진화에 대한 과학적 대안으로서의 창조주의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그러므로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창조주의의 설명에 대한 우리의 명백한 결론은,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5]
더군다나 창조주의는 종교로서의 일도 잘 수행해 나가지 못한다.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은 근본주의적인 창조론은 잘해봐야 일을 복잡하게 할 뿐이고, 최악의 경우 기독교 세계에 나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위험 가능성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야훼의 진리를 수호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마치 틀린 것처럼 보일거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젊은 지구역사와 대홍수 지질학 등을 주장하는 근대적 창조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의가 신이 우리에게 베푼 것과 다르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더 큰 피해가 오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창조주의를 버려야 한다. 교육기관에서 그들의 관점이 받아들여지고 확립되기를 바라면서 창조주의자들은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으나, 그것은 조물주에게 해만 끼칠 뿐이다. 우리가 창조주의 같은 과학을 학교에서 교육할 것을 계속 고집하는데, 비(非)기독교 교육 지도자한테 기독교에 대한 존경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는가! 창조주의를 대중에게 계속 강요하다 보면, 이미 많은 사상가들이 이야기해 온 것처럼 적어도 현대 기독교 정신이 비이성적이고 애매한 사상이라는 생각에 더 신뢰를 갖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6, p. 163]
어쩌면 세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칠 수 있는 유일신적 진화론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4월 16일, 진화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므로 믿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진화론을 이용하여 인간의 몸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는데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7]
아마도 창조 ‘과학’의 진정한 본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근대 창조주의의 할아버지격인 헨리 M. 모리스의 말에서 주워들은 것일 것이다. 그는 1978년, “소위 지질학적 시대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세계의 기원에 대한 진화이론과 같은 의미이다. 후자의 경우는 사탄이 야훼에게 대적하기 위해 꾸며낸 음모이다.” 라고 말했다. 진정한 과학자들은 어둠의 왕(사탄-역자)과 공모한채 비방과 부정을 한다는 이유를 들어가면서 다른 과학자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진화 : ‘단지’ 이론일 뿐인가?
이 글은 독자를 창조/진화의 지엽적 논쟁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창조주의자들이 공략하는 방법에 대한 간단한 평을 들으면, 독자들은 창조 ‘과학’의 기초개념이 갖고있는 본질에 대해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의자들은 일반 대중들이 과학과 관련된 것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저명한 과학자이자 과학 픽션 작가였던 고(故) 이삭 아시모프는 이렇게 한탄했다.
...미국인들이 다른 부분에서는 교육을 매우 잘 받고 있으나, 그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캐나다인들도] 과학을 모르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말들이 잘 먹혀든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의 군사, 멍청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 불량 지식 판매상, 허울좋은 지식의 공급자 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무지 때문에 마실 수 있는 음료수와 오수를 구분 못하기 때문이다. [8, p. 210]
창조과학의 슬로건은 바로 : 대중의 무지는 창조론자에게는 축복이다.
과학에 대한 무식 중에서 여기저기서 마구 사용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론(theory)’이라는 단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창조주의자들은 그들의 공공 발표나 문헌에서 진화를 ‘단지’ 이론이라는 식으로 가치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일상 생활에서 ‘이론’이라는 말은 ‘추측’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창조주의자들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추측’에도 진화론과 ‘같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페어플레이와 민주주의 정신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요구다. 바로 이 ‘같은 시간’이 그들이 오늘날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진화에 관한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같은 시간’이라는 이 사업거래는 정치적 편의주의에 입각한 방편, 일종의 거래라는 것이다.
창조주의자들은 이 ‘이론’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들은 음악 이론이 단지 이론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감히 음악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진화처럼 ‘이론’일 뿐이다. (그것이 ‘법칙’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뉴턴 생존당시에 ‘법칙’이라는 말이 더 유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창조주의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그들의 성경 무오류 교리를 위협하는, 그러한 분야의 과학만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이론’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 이론은 현상을 설명하거나 또는 서술할 수 있는 생각의 집합이다. 금세기의 가장 저명한 과학철학자 볼 수 있는 칼 포퍼는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척도를 마련했다 : 이론은 그릇된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예지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 이론은 이 기준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킨다. 반면 창조주의자들의 ‘이론’은 어떤것에도 맞지 않는다. 창조주의 이론은 그 전제 속에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즉, 우리의 기원은 창세기에 기록되 그대로이며, 따라서 과학적 검증은 그것에 따라 변형내지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 ‘과학’은 창조주의자들이 아무리 이의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과학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과학 수업에서 그것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제부터 다룰 내용처럼 그것은 여전히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 용케도 학교에 침투하고 있다.
교실 속의 창조주의
창조 연구 센터의 창시자인 헨리 M. 모리스는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교육은 진화론이 아닌 창조주의를 기반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교과서는 다시 쓰여야 하며 교사들도 재교육받아야 한다.”[9]는 발언도 했다. 모리스의 오른팔격인 듀안 T. 기쉬는 창조주의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빨리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그 안내서가 교육 자료로 쓰여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의 믿음과 의식을 파괴하는 세속적 인본주의에서 기인한 암적 존재 같은 진화론”을 중화시키는데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와 경제력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0]. 창조주의자들이 지난 몇십년에 걸쳐 많은 곳에서 심각하게 잠식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것은 비웃고 지나칠만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창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창조주의 교육에 진화론과 같은 시간을 할당하도록 법을 제정한 주는 최소한 다음과 같다 : 알라바마, 아칸서스,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죠지아, 일리노이스, 아이오와, 캔사스, 루이지아나, 미시간, 미네소타, 미저리, 뉴욕, 사우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다코타, 텍사스, 테네시, 워싱턴, 웨스트 버지니아, 그리고 위스콘신. 캐나다에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법령 수정조항(교회와 주정부의 분리에 관한)에 해당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창조주의자들의 공격을 더 쉽게 받는다. 실제로 창조주의는 캐나다의 몇몇 학교에서 교육되고 있으며, 그중의 몇은 온타리오에 존재한다[11].
제 2의 스콥스(Scopes II ; 앞에 설명했던 Scopes ‘Monkey Trial’과 비슷한 또하나의 사건-역자)
재판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몇몇 경우, 캐나다 법정에서는 미국의 전례를 따른다[12, p92]. 따라서 특정 문제에 해당하는 미국 법원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창조주의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학교교육에 침투시키기 위해 시도한 사건 중, 근래에 가장 잘 알려진 법정 싸움은 1981년 말 아칸서스에서 시작되었다. 아칸서스 주는 진화와 “과학적 창조주의’에 대해 “균형잡힌 처리(동등한 교육시간, 기타 여건 등을 의미-역자)”를 두도록 학교측에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것은 결국 ‘Scopes II’라고 알려진 소송 사건을 불러일으켰다. 그 법은 1982-83 학년도부터 효력이 시행될 계획이었으며, 인간이나 생명, 에너지, 지구, 우주의 기원 등과 연관되는 어떠한 주제, 교육 매체나 그 프로그램까지도 법의 범주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주지사 프랭크 화이트는 그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했다고 직접 밝혔다. 그렇게 법령 590조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그 분야에서 법령 수정조항에 반대운동을 펼쳐오던 미국시민자유연합(원 명칭은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역자)은 거세게 반발했다. 재미있는 것은 23명의 고소인 중의 대부분은, 법령 590조를 종교의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한 성직자였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윌리엄 R. 오버튼 연방 판사가 주관한 아칸서스 주의 리틀락에서 열린 재판까지 오게 되었다. 미국시민자유연합은, 창조주의는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학생과 교사의 학문의 자유는 물론, 헌법에서도 명시한 교회와 주정부의 분리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법정 싸움에 임했다. 지역의 과학 교사들은 진화와 창조주의를 함께 엮어낼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고 말했으며, 그래도 두 가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당황하게 될것이라 증언했다 [13, pp.71-74].
1982년 1월 5일, 오버튼 연방 판사는, 아칸서스주 법 590조는 헌법에 공시되어 있는 교회와 주정부의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규정했다. 그는, 590조 법은 성경 관점의 창조개념을 공공기관인 학교로 도입하기 위한, 속이 뻔한 시도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창조주의는 과학이 아니며, (피고인들(창조주의 옹호론자-역자)이 주장한대로) 진화 또한 종교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진화가 종교라면, 그것에 대한 바른 대처방법은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중지하는 것이지, 그것에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를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14, p.59].
창조주의자들이 법정싸움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각 지역의 과학교육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사들에게는 은근한 협박의 형태로 압력이 가해지고, 결국 그 교사들은 물의를 일이키는 것을 피하려고 진화론 주변에서만 맴도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창조주의자들의 ‘순회공연’,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시도하는 민중운동에 대한 논리의 일부일 뿐이다.
캐나다에서는…
캐나다의 창조주의 발전의 대부분은 캐나다 창조과학협회(원래 명칭은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Canada-역자)가 이끌었다. 그들이 이룩한 업적중의 하나는 1만 3000여명의 이름으로 쓰여진 탄원서를 당시 온타리오 교육부 장관인 베트 스테프슨 박사에게 보낸 것이다. 거기에는 창조 ‘과학’을 모든 교과서, 학교 교육과정, 그리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박물관 등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캐나다 창조과학회는 7500명의 이름으로 된 또다른 탄원서 하나를 브리티쉬 콜롬비아(British Columbia, 캐나다의 지명-역자) 교육부 장관에게 보내어 과학 교육에서 창조주의에 진화론과 같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한다.
브리티쉬 콜롬비아의 장관은 두 가지 모두를 가르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고, 현재 몇몇 학군에서는 과학과 함께 창조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16, p23]. 그러나 일반적으로 캐나다 주 교육부는 창조주의와 관련하여 특정한 정책을 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창조주의는 교과과정 안에 있지도 않고 동시에 완전히 배제된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교육부의 허가가 필요 없기는 하지만, 창조주의적 믿음을 가진 교사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창조주의를 교육할 수 있다. 한 예로 1982년 Quest 잡지에는, 브리티쉬 콜롬비아 버나디 마을에 있는 버나디 사우스 고등학교 생물, 화학 교사이자 캐나다 창조과학협회 의장인 사람이 수년간 어떠한 항의도 받지 않고 창조주의를 가르친 것이 보도되었다. 또한 온타리오 브램프턴의 노스파크 고등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던, 캐나다 창조과학협회 온타리오 지부의 한 이사도 ‘과학적’ 창조주의를 수년간 가르친 것도 보도되었다 [16, p.23].
온타리오 교육부의 초등/고등교육 과학 교과과정 지침을 보면 (1985년 내용이지만, 더 최근의 지침도 이러한 청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거기서는 이렇게 추천하고 있다.
만약 특정 분야에서 연구 중인 자료가 학생이나 학부모가 느끼기에 그들의 종교적 믿음과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그 학생은 교과과정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해 거부할 수 있고, 교육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갖는 대안이 그 학생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과연 창조 ‘과학’이 “교육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갖는 대안” 축에나 낄 수 있는가! 과학적인 시점에서 본다면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정치적 관점으로 본다면 그럴 수 있다. 즉 대답이 소극적인 ‘OK’처럼 되는 것이다. 진화는 “이 땅의 생명 기원에 대한 단지 하나의 견해”를 제공하는 존재로 보아야 하며, “종교나 철학, 천문학 같은 다른 분야의 학문이 우주와 그 안에 사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개인의 가설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정확하게 천문학이 어떻게 진화론과 대립된다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교육지침 어느 곳에도 창조주의는 분명하게 언급된 바는 없으나, 조심스럽게 그것을 다루는 것이 교육부의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13, pp.65-66].
온타리오 교육법 298조 28(2)항에서 이 문제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 조항에서는 학교 부서가 종교와 관련된 교과과정을 첨가하기로 결정하면, 그 교육 프로그램은 반드시 (a) 캐나다 인권-자유 헌장에 보증되어 있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며, (b)특정 종교나 종교적 신앙에 대해 우선권을 주거나 그것의 사상을 가르치지 않은 상태로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종교들과 그 종교적 믿음에 대한 학습도 제공해야 한다. 창조 ‘과학’은 이 두 조건 모두에 위배될 수 있다.
교육의 자유
창조론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과학 교사가 과학 수업때 창조 ‘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 교사의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언쟁을 벌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 프라우드풋과 허칭스는 그들의 저서 <교사들이 주의할 것>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사들은 그들 개개인의 신념이나 다른 것을 배척하는 의견을 조장해서는 안되며, 그들의 생각이 공적으로 승인된 교육과정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만약 교육 부서에서 진화 이론을 과학 교과과정에서 가르치도록 규정했다면, 교사는 진화론이 교사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교육을 거절할 수 없다. 교사가 규정된 교과과정 대신에 “창조 과학”을 가르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자유는 고용주의 공적 지시와 교과과정에 제한된다. [17, pp.354-355]
맨 마지막 문장은 교육의 자유가 아무나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그것은 교사들이 그들 개개인의 생각을 그들의 학생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은 동등한 권리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결론
여기서 언급한 내용중의 하나는 본래의 학생 교육 그 자체이다. 창조 ‘과학’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의미있는 과학적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며, 따라서 레프러콘(황금 숨긴 곳을 가르쳐 준다는 작은 노인 모습의 요정-역자)이나 유니콘의 이론과 하등 다른 것이 없는, 과학 수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론이다. 물론 나는 창조주의가 비교 종교학이나 비판 철학, 이상 심리학 등의 다른 분야에서는 교육될 수도 있고 그래야 한다고 인정하지만 말이다. 한 교육자가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가 비행기 조종사 훈련에서 공중부양(기(氣)수련 등을 통한 공중부양을 말함-역자)을 가르쳐야 합니까? 왜 우리가 ‘황새 이론(황새가 어린아이를 물어준다는 설화. 여기서 황새라 함은 실존하는 황새가 아닌 상상속의 새. 즉 성(性)을 통한 생명의 탄생이라는 ‘과학’과 위상을 같이 하려는 하나의 이론(?)임. 황새이론과 관련되 내용은 http://www.antichristkorea.wo.to 의 토론방 3번에 946번 글을 참고하세요-역자)’을 성교육 시간에 가르쳐야 합니까?” 라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창조 ‘과학’은 기독교와 과학에 대한 인식에 해를 끼칠 것이다. 찰스 다윈은 그렇게 할 수 없었지만, 창조 ‘과학’은 우리 모두를 원숭이같이 어리석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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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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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key, Richard "The Origin of Humankind" Basic Books (1994)
역자 후기
책을 한 권 번역한 것도 아니고 작은 글 한편 번역하고 ‘역자후기’라는 글을 쓰자니 좀 웃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 번역가도 아닌데 이정도 하는것도 힘들었지...’라고 스스로 만족해 봅니다. --; 글 읽으신김에 제 이야기도 조금 들어주시면 감사하지요... ^^
우선...작업을 다 마치고 나니까 두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는 원 저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더 많은 좋은 내용을 놓쳤다는 생각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런 글을 써야만 하는 처지 때문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도 자신의 교리로 과학교육을 물들이려 하는지...
우리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자연법칙이 성립되는 과정을 배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현상을 관찰하고, 그다음 가설을 세우고, 가설에 맞는 실험을 수행하고, 마지막에 가설이 맞다고 증명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중, 실험을 수행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과학적’이게 되고 다시 말하면 이것은 ‘논리적’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실험에는 실험군이 있고 대조군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차를 한 잔 마시고 배가 아팠을 때, 차 속에 배아픈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같은 차를 물에 타 마시는 사람(실험군)이 필요할 것이고, 그냥 물을 마시는 사람(대조군)이 필요할 것입니다. 대조군 없이는 “배아픈 성분이 차 안에 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지요.
간단한 예를 들었으나 위의 예에서 대조군을 세우는 것은 100% ‘논리’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법은 ‘과학’이라는 영역 속에서 불문율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것이 과학의 접근 방법이고, 그러한 사고능력을 배우는 것이 과학 수업입니다.
진화론은 본문에 있는대로 아직 ‘이론’입니다. 그런데 왜 과학에서 가르치고 있을까요...적어도 그것을 믿고 신봉해서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겠지요. 진화는 철저한 ‘논리’의 기반 위에서 접근한 이론입니다. 각종 생물은 거시적으로도 일정한 공통점과 차이가 있었고, 과학이 더더욱 발달하면서 그 공통점은 점점 미시적 세계로 들어가면서 확인되고 있고, 진화의 개념은 바이러스나 단백질의 분자적 수준의 분류에 있어서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주의와는 다른 진화론의 과학적 단면입니다.
창조주의가 과학 수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어봅시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니 믿으라’ 는 것. 그리고 ‘진화론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잘못되었다.’라고 비판하는 것. 그 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요? 어느 과학이나 반대 이론이 있고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과학일 뿐입니다. 진화론이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을 비판하는 것! 그것은 진화론의 일부분이지 그것이 창조’과학’은 아닙니다. 한 가설을 부정하는 음성적 결과(negative results)만으로 어떠한 학설은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창조 ‘과학’이 되려면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주어진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겠지요. 절대로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가설로 세워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창조과학회 대부분의 저술은 ‘진화론 비판’에 초점을 둡니다. 적어도 명문대 교수와 ‘과학자’들이 ‘창조과학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면, 진화론 헐뜯기에 연연하지 마시고 ‘과학회’라는, 그 이름값을 했으면 합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믿는 것은 종교입니다.
당신들의 종교는 당신들의 회당에 두십시오.
학교에 들어오고 싶다면 ‘과학’이라는 양의 탈을 벗고 ‘종교’로 오십시오.
대안을 하나 제시합니다.
창조주의를 학교에 들여오고 싶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세계의 각종 종교를 공부하는 과목을 교육과정에 개설하도록 로비를 하시고,
법안이 통과되면 그러한 교과서를 만들어 각 종교별 교리와 특징, 역사를 교육하십시오.
단! 특정 종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형평성을 잃지 마시길...
그러다 보면 책 한귀퉁이에 야훼에 의한 인간창조 이야기,
기독교의 창조설화가 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교육의 평등이고 종교의 자유입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과학이라 하는 것은 결코 과학이 아님을 잊지 마시길...
끝으로 한국창조과학회지 119호에 실린 ‘창조과학 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글의 결론 부분을 소개드립니다. 창조과학의 궁극적 목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4. 결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창조론을 교육해야 할 필요성은 유일신 신앙을 바탕으로 구속사적 관점을 명백히 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알게 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바른 관계 정립을 위해서이다...
2001. 4월 15일
예수의 부활절로 둔갑해버린 미트라의 부활절에
고레스 (king_cyr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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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도저넘들은 창조과학을 지지해야됩니다.
그래야 계속오류속에 남아있지요.
그렇지않으면 또 어떻게 변신을할지......
이거 하나면 족한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