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RE THE CREATION "SCIENTISTS"?
by Lenny Flank, 1995
창조과학자들은 누구인가?
번역 : 불가사리, 1999
아래 싸이트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원본은 생략했습니다.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Hangar/2437/whoare.htm--------------------------------------------------------------------------------
창조과학자들은 누구인가?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원조 창조과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혹 로마 카톨릭 종파에 속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근본주의 개신교 종파에 속해 있다. 창조과학자들 모두의 공통점은, 천지창조의 묘사나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의 홍수 등과 같이 성경의 원본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문자 그대로 정확하다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다.
모든 정치운동이나 종교운동과 마찬가지로, 창조론에도 여러 유파가 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1984년 당시 미국 내에는 전국규모의 창조론자 단체가 22개 이상 있었고, 주 규모나 지방규모의 단체는 최소한 54개가 있었다.)
여러 창조론 중의 "날-시대"유파는 창세기에 언급된 "날"은 하루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을 상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날-시대" 유파는 '여호와의 증인'일 것이다. 또 다른 유파는 "간격"이론가들인데, 창세기 1장1절과 1장2절 사이에 성경에는 직접 언급되지 않은 오랜 시간 간격이 있었고 6일간의 창조는 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매스컴을 전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복음설교자들 중에 "간격"이론가들이 많이 있다. 끝으로, 창조는 성경에서 묘사한 것과 똑같이 일어났으며 우주와 모든 생명은 수천년전의 6일 동안 창조됐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창조주의자들이 있다. "날-시대"유파와 "간격"유파는 진화의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지구가 아주 오래됐다는 지질학적 증거는 받아들이는데, 통상 이들을 뭉뚱그려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라고 부른다. 반면에 우주전체의 나이는 6,000년에서 10,000년 정도라고 주장하는 완고한 창조론자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로 분류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로 불리는 유파도 있는데, 이들은 진화가 신이 생명을 창조한 방법일 뿐이며 과학과 성경의 모순은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주요 기독교 종파들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창조론자"이지만,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에게는 악마의 일을 하고 있는 "적"으로 간주된다. 진화론이 기독교 교리와 모순된다는 믿음이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을 규합하게 하는 단 하나의 요인이므로,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을 "반진화론자"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창조과학운동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좌지우지하며 모든 주요 창조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관점은 다양한 반진화론, 또는 그들이 원하고 있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평한 처우" 정책이다. 예를 들면, 아칸소 주의 "공평한 처우" 조례는 "창조과학"을 젊은 지구 창조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창조과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와 추론을 포함한다 (1) 무에서부터 우주, 에너지, 그리고 생명의 순간적 창조 (2) 하나의 유기체에서 모든 생명체의 종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돌연변위와 자연선택은 불충분 (3) 원래 창조되었던 식물종과 동물종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변화가 가능 (4) 사람과 원숭이는 별도의 계통 (5) 전지구적 홍수 발생을 포함한 격변에 의한 지구 지질학의 설명 (6)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에 지구와 생명체 출현 (아칸소 주의회 조례 490, 1981)후에 "과학적 창조론"으로 불리게 되는 젊은 지구론의 기원은 제7일재림론 근본주의자인 죠지 맥레디 프라이스까지 거슬러 올가갈 수 있는데, 그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프라이스는 1923년에 출판한 "새로운 지질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같이 주장했다. (1)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지질학적 특징은 과학자들이 기술한 느린 지질학적 과정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문이다. (2)지층이란 노아의 홍수에 의한 심해퇴적물일 뿐이며 다양한 종류의 모든 화석은 노아의 홍수로 익사한 유기체의 시체일 뿐이다. (3) 전통적인 지질학은 악마의 일을 행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의해 의심할 줄 모르는 대중들에게 퍼뜨려지고 있는 사기다. 그에 표현에 따르면 전통적인 지질학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악마가 사용하는 속임수 중의 몇 가지"에 속한다. 프라이스의 의견은 "홍수지질학"으로 알려져 있다.
지질학자들이 프라이스를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취급해버리고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된 그의 "새로운 지질학"을 조롱하는 동안, 그 책은 신앙싶 깊은 근본주의자들을 감동과 흥분에 휩싸이게 했으며, 근본주의자들은 프라이스의 책을 "성경이 문자 그대로 옳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번째 책"으로 인용했다. 심지어 스콥스 재판에서는 지질학자가 아닌 프라이스가 과학전문가로 인용되기까지 했다.
1935년에 프라이스는 최초의 전국적 규모 창조론자 단체인 '종교와 과학협회(이하 RSA)'를 결성하는데 기여를 했다. RSA의 목적은 과학적 자료로 성경의 내용을 지지하려는데 있었다. 결성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RSA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받아들이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양분됐다. 근본주의 기독교 계열의 몇몇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루터교 신학자 테오도르 그래브너는 RSA 설립자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홍수지질학의 증거는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주장했다. "지층, 침식, 그리고 화석에 대한 홍수이론을 읽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산들을 보면 홍수이론을 전혀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내부 분열로 인해 1937년까지 RSA는 완전히 붕괴됐다.
RSA가 해체된 직후,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 지지자끼리 모여 홍수 지질학 협회(이하 DGS)를 결성했다. 프라이스는 이 협회의 공동설립자 중의 하나였으며 가장 뛰어난 회원이었다. RSA의 설립자 중 하나였던 제7일 재림론 전도사인 하롤드 클라크도 DGS의 공동설립자였으며, RSA 설립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의 재림론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온 헨리 모리스라는 대학원생도 DGS에 합류했는데, 그의 이름은 훗날 창조론의 역사에서 아주 빈번히 거론된다.
내부 갈등에 의해서 해체된 RSA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DGS는 홍수지질학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사전조치에도 불구하고 태양계의 나이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다시 내분이 일어났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오래된 태양계와 성경의 창세기사이에는 모순이 없다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이단으로 여겨졌다. DGS는 1948년에 와해됐다.
이 와중에 새로운 창조론자의 모임이 결성됐는데 그냥 무시되기 일수였던 DGS보다 영향력이 커졌다. 이 모임은 과학이 성경을 입증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1941년에 미국 과학 연합(ASA)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됐다. 과학보다는 신학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RSA나 DGS와는 달리, ASA는 정식 학위 소유자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ASA의 회원이 되려면 아래의 회원서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나는 원래 주어진 성경 전체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신의 말씀이며 믿음과 행위에 대한 무오류의 유일한 지침이라는 것을 믿는다. 신은 성경의 저자이며 우리 주위의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분이므로 과학적 사실과 성경의 기록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상상할 수 없다." 이미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과학자들에게만 회원자격을 주는 이런 전략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반복된다. 성경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과학지식을 사용하는 ASA는 최초의 "창조과학" 단체가 됐다.
ASA가 결성될 당시에는 홍수지질학협회(DGS)와 관련이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GS측이 "반진화론 정기간행물"을 공동으로 출판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제7일재림론에 치우친 DGS측을 곱지 않게 보던 ASA의 수뇌부는 그런 제안을 묵살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홍수지질학이 다시 한번 논란의 대상이 됐을 때 과학적 권위에 의존하려는 ASA의 입장 때문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화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로렌스 컬프 박사는 홍수지질학이 명백히 틀렸을 뿐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창조론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을 뿐임을 지적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비과학적인 홍수지질학은 학식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곧이어 컬프의 의견을 지지하는 생물학자 프랑크 카셀은 1951년 ASA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진화란 후손으로 계속 이어지는 동물과 식물의 점진적 또는 급진적 변화이다...이러한 변화는 입증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는 사실이다." 카셀은 ASA가 과학적 권위를 유지하려면 진화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하며 유신론적 진화론을 ASA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ASA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과학교육"이라는 책을 출판하긴 했지만, 현재의 ASA는 창조과학의 질문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으며 회원들의 대부분은 유신론적 진화론자이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컬프와 카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창조과학을 방어했다. 1953년에 열린 ASA의 연례회동에서 헨리 모리스는 "최근의 창조와 전우주적 홍수에 대한 성경적 증거" 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충실한 성경 문자주의자이자 젊은 지구 창조론자인 모리스는 홍수가 지구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수력공학을 전공으로, 지질학을 부전공으로 택할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하던 1946년에 그는 홍수지질학을 옹호하는 "당신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모리스는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DGS에 가입했었다.
모리스는 1953년에 열린 ASA의 연례회동에서 홍수지질학과 젊은 지구 창조론에 흥미를 갖고 있던 신학자 존 위트콤 2세를 처음 만났다. 1957년에 완성된 "창세기 홍수"라는 제목의 신학박사 논문에서 위트콤은 노아의 홍수가 미치는 지질학적 영향과 역사성을 자세하게 변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학위논문을 책으로 발간하려던 위트컴은 그 책에서 홍수지질학을 다룬 부분을 지질학자가 쓴다면 더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 생각했다. 위트컴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지질학자를 몇 명 접촉했으나 전부 거절당했다. 그는 결국 수력공학자인 모리스에게 접근했고, 모리스는 망설이던 끝에 그 책의 공동저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창세기 홍수"라는 제목의 책은 여러 명의 신앙심 깊은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61년 2월에 출판됐다. 후에 기독교 재건운동을 펼친 루아스 러쉬두니도 그 지원자의 한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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