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이 보여주는 진화의 역사
서울대 최재천 교수님의 글입니다.
사람과 오징어는 진화적으로 별로 가까운 관계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비슷한 눈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포유류에 속하는 척추동물이고 오징어는 연체동물문 Phylum Mollusca에 속하는 무척추동물이지만 진화의 역사를 통해 대단히 비슷한 시각기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오징어의 눈은 시신경의 연결 면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오징어의 시신경들은 망막의 뒷면에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데 비해 우리 인간의 시신경과 그에 관련된 혈관들은 다발로 묶인 후 눈의 내부로 들어가 망막의 앞면에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묘한 설계가 가져오는 기능적인 불합리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인간은 누구나 시각적 맹점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시신경 다발이 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눈 높이에 들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지우개 끝에 초점을 맞춘 다음 눈의 방향을 고정시킨 채 연필을 서서히 오른쪽으로 움직여 보라.
연필이 시선 방향으로부터 약 20도 정도 움직인 시점에서 지우개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왼쪽 눈도 마찬가지로 중앙선에서 약 20도 왼쪽 지점에 맹점을 가지고 있다. 망막 위에 분포하는 혈관들도 그들의 그림자 때문에 여러 작은 맹점들을 만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눈은 매순간 조금씩 다른 각도를 보려고 끊임없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이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두뇌에 전달되어 끊임없이 분석 종합되는 덕분에 우리는 우리 시야에 있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물론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떨리고 있는 것이지만 잘못된 설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진 못하고 그저 보완책을 강구한 것이다.
이 같은 이른바 역망막 현상은 단순한 시각 감손은 물론 각종의 심각한 임상적 문제들을 일으킨다. 대수롭지 않은 출혈도 망막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 수 있어 심각한 시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들이 망막으로부터 쉽게 분리되어 눈 안으로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단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그 진행속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시각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여러 설계 상의 문제점을 고려해볼 때 오징어의 눈은 인간의 눈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왜 인간의 눈은 이렇게도 불합리하게 만들어졌는가?
창조론에 의하면 신이 일부러 눈을 엉터리로 설계한 것이고 진화론에 의하면 Historical Constraint에 의해 부드럽게 설명이 된다. 결정적으로 뒤집힌 망막의 설계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척추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척추동물의 눈은 작은 조상동물들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었던 빛에 민감한 세포들로부터 발달되었다. 이 세포들에 자연스레 혈관과 신경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는 다분히 합리적이었던 설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억 년이 흐른 오늘에도 빛은 어쩔 수 없이 혈관과 신경들을 지나쳐야만 시각세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간결하고 억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눈은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된 그 어느 사진기와 비교해도 월등한 기능을 갖춘 기계임에 틀림이 없다.
사진기는 찍으려는 대상이 바뀔 때마다 번번이 새롭게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일단 한 곳에 초점을 맞추면 그 밖의 물체들은 모두 흐리멍텅하게 보인다. 기독교인들은 우리 눈을 오로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걸작품이라 믿는다.
생물학자들도 또 나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역사 속에 의해 다듬어진 우리 눈의 기가 막힌 성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이 근시로 고통을 겪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눈은 불완전한 걸작품이다. 신에게 다시 만들어달라고 할까? 진화론은 일종의 군비 경쟁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른 동물로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치타를 꼽지만 그들이 주로 잡아 먹는 영양들의 속력도 사실 만만치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치타는 영양을 더 잘 잡을 수 있도록 진화해왔고 영양은 나름대로 치타로부터 더 잘 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마치 구 소련과 미국이 오랜 냉전시대를 걸쳐 벌였던 군비 경쟁과도 같이 자연계에는 치타와 영양간의 관계 즉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외에도 식물과 그들을 먹고사는 초식동물, 숙주와 기생충간의 관계 등 여러 모습의 진화적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진화란 미래지향적인 진보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만 하면 선택받는다는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친구와 함께 곰을 피해 달아나던 한 철학자의 이야기가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소용없는 일일세. 우린 결코 저 곰보다 빨리 달릴 수 없네”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는 “난 저 곰보다 빨리 달릴 필요는 없네. 그저 자네보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진화의 특성 때문에 임시방편적이고 불합리한 생물체의 설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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