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학당 비판

사람 0 1,062 2014.07.07 07:45
통종교 - 홍익학당 비판
 
 "양심이 답이다!"를 외치는 "홍익학당"이라는 곳이 있다.
 윤**이라는 사람이 주인장인 네이버 카페이다. ( http://cafe.naver.com/bohd.cafe )
 
 카페에 들어가면 제일 위의 로고 타이틀에 "내 안의 양심을 밝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라고 되어있다.
 양심에 따르는 생활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좋은 취지로 바람직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믿어마지 않는다.
 
 그러나, 그냥 양심에 따라 착한 일 하고 살자고 하면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거기에 장황한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그게 모순투성이이니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를 지적해주고 싶어도, 반대하는 글은 지우겠다고 공지사항에 공표를 했으니, 바른 소리에는 귀를 
닫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니 여기에나마 몇 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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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성품을 사덕(인의예지)을 갖춘 것으로 보아 태어날 때부터 있는 양심(좋은마음)인 사단지심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실천하자는 것이 홍익학당의 근본 취지이다. - 이것은 유교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를 스스로 점검하는 사단노트를 작성하며 덕을 행하여 좋은 세상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 사단노트를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하여 돌리기까지 하니 참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있는 것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양심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참 나"인 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 나"의 자리는, 일체를 "모른다."하고 놓아버린 자리. 나와 남의 구별도 없고, 나라는 생각도 없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존재감만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참 나"의 자리가 곧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인 공적영지(空寂靈智)의 자리라 한다.
 더구나 이 "참 나"의 자리에서 사단지심이 그대로 흘러나오고, 육바라밀(보시, 인욕, 정진, 지계,선정, 지혜)이 
그대로 흘러나오고, 성령의 열매가 그대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통종교 운운한다.
 이러니 참으로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1. 3교의 인간관
 
 그들의 기본입장은 유교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유교만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유교와는 인간관 자체가 다른 불교와 기독교까지 끌어들여서 통종교 운운 하니 앞뒤가 안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유교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하늘이 명(命)한 성품으로서의 인의예지 사덕을 갖추고 태어난다.
 하늘이 원형이정의 사덕을 갖추었으므로 인간도 사덕이 그 근본 성품이다. 그 증거가 사단지심이다.
 
- 불교
  태어난 생명체는 인간은 물론, 그것이 무엇이든 무명에 의해 태어나는 것으로서 탐진치 삼독심이 그 본래
 속성이다.
 
- 기독교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원죄의 결과인 성적욕구에 의한 것으로서 태어나면부터 악을 행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 어려서부터 그 행하는 바가 악하더라!
 
* 태어날 때부터 갖춘 양심이라는 것은 유교에 한정 될 뿐, 불교와 기독교에는 해당이 안 되는 것이다.
기본 인간관 자체가 다른 종교를 끌어들여 비벼놓으니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2. 홍익학당의 "참 나"와 대승불교
 
 "참 나"는 윤**씨 자신이 공적영지의 자리라 한다.

 윤**씨는 불교의 소승과 대승을 말 할 때는, 공적영지를 소승의 경지로 말한다.
 대승이 등장한 이유를 말할 때는, 소승의 자리에서는 대승의 자비심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불교는 소승의 입장에서 대승을 석가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만 할 일이 아니라 대승의 취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왜 대승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니 벌써 "참 나"자리인 공적영지의 마음자리에서 육바라밀이 저절로 흘러나온다는 말과는 모순 이다.
 소승의 공적영지인 마음자리에서 대승의 육바라밀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애초에 대승운동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체를 "모른다"하고 내려놓은 소승의 공적영지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저절로 흘러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가 "열반"자리인 것이다.
 
 소승의 입장은 더이상 생명체로 존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이상 오온(색수상행식)을 "나"로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오온의 작용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의 입장은 윤**씨 자신이 말하듯 오온을 잘 쓰자는 것이다.
 두 입장이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윤**씨가 가장 많이 한 강의가 화엄경 강의인데, 화엄경에서는 일체 보살이 발심하고 수행하는 모든 과정이
비로자나불의 가피력에 의한 것으로 되어있다. 일체 중생을 모두 구하겠다고 하는 큰 자비심을 일으키는 발심
자체가 부처의 가피력에 의한 것이다.
 
 어째서 가피력이어야 하는가?
 탐진치 삼독이 근본 속성인 중생심이나, 존재 자체를 싫어하여 일체를 "모른다"고 놓아버린 소승의 열반자리
에서는 자비심이 솟아날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경 유마경 이후의 대승경전들은 자비심의 근원으로 초월적인 불심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일체를 "모른다"고 하는 소승의 마음자리에서, 어찌 대승의 육바라밀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가 있는가?
 

3. 홍익학당의 "참 나"와 기독교
 
 윤**씨는 "참 나"자리가 곧 성령 자리로서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온유,
절제) 가 저절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택도 없는 소리이다.
 
 성령이 무엇인가?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물으면서, 성령이 아니고는 주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다고 했다.
 이 때의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다.
 그러나 예수가 죽은 후의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 즉, 예수의 영이다.
 
 인간이 모두 영적 존재라고 한다면, 모두 개별적인 자기의 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냥 일체를 "모른다"고 내려놓는다 해서 그대로 예수의 영이 되거나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 근원인 성령은 인간의 영이 아니다.
 인간을 초월한 신이나 그와 동격인 예수의 영이 그 근원인 것이다.
 
 따라서 일체를 "모른다"고 한 공적영지의 개인적인 영에서 성령의 열매가 그대로 흘러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성령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영이 자기를 초월한 성스러운 영과의 교감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영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저 혼자서 "일체를 모른다"고 하는 인간의 영에서 어찌 성령의 열매가 그대로 흘러나올 수가 있는가?

4. 선행을 할 수 있는 마음 자리
 
 일체를 "모른다"고 하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자리에서는 결코 선행이 나올 수가 없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윤**씨는 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결론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윤리의 황금율이다.
1. (예수)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 이걸 하면 선이다.
2. (공자) 내게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 이걸 어기면 악이다.
 
 위의 둘을 합치면,
 
3. (석가) 모든 중생이 내 한 몸이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일체를 모르는 자리가 아니라, 일체 중생이 있고 그 모두를 내 한
몸으로 여기는 마음 자리여야 하는 것이다.
 
 윤**씨는 "참 나"의 자리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예가 컵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컵은 오온을 말하는 것으로서 오온을 나라고 여기지 말고 오온의 작용을 쉬면 그 자리가 허공과 같은
자리라는 것이다.
 컵을 들고 그 컵을 손으로 덮었다 떼며, 컵 안의 허공과 컵 밖의 허공이 같다는 것이다.
 
 아주 좋은 예인데,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을 놓지고 있다.
 컵 안의 허공은 컵인 오온을 "나"라고 여기지 않는 것 뿐이지 아직 컵안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서, 컵을 초월한
전체인 허공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컵안의 허공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컵이 동시에 "나"라고 하는, 전체 허공의 관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허공인 것이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자리는 과연 소승의 열반 자리로서 허공과 같이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공은 "일체가 하나인 나"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허공과는 천만리 만만리 거리가 먼 것이다.
 
 죄송한 얘기이지만, 일체를 "모른다"고 내려놓은 공적영지인 "참 나" 자리에서는 그 어떤 선행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으니 선행을 할 주체도 대상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있고 그 모두를 "나 하나"로 여기는 불심이라야 선행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5. 마치며
 
 일체를 모른다고 외면한 소승의 열반 자리인 공적영지를 "참 나" 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는 사단지심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앞뒤 안 맞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유교를 근거로 했다 하고, 좋은 일 많이 하기 바란다.
 
 바른 소리에 귀를 막겠다 했으니, 그 태도가 이미 진리를 구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올그름을 가리는 소리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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