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허구

기독교의 허구

가로수 0 22,070 2007.08.08 09:32
 기독교의 허구
                                                
 오늘날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2천년 동안 서구 문명의 토대를 이루어 온 기독교가 처음부터 그 뿌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역사에 비해 극히 최근의 일이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신봉자 수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허구는
첫째 구약성서의 교리에 짜맞추어 예수를 신격화하다 보니 예수라는 인물이 너무나 왜곡되어 실제 예수의 모습이 사라져버린 사실이며
 
둘째는 신앙론 구원론 천국론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가 너무나 왜곡되어  비과학적인 것은 물론이고 비성경적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예수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고 또 기독교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종교적 교리를 성경적인 근거와
과학적 토대,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A.인간 예수의 참모습
 1.조작된 신약 성서
 2.예수의 출생
 3.성령 잉태설의 허구
 4.불제자였던 예수
 5.예수의 결혼
 6.예수의 아내
 7.예수의 후손
 8.십자가의 사기
 
 조작된 신약성서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4복 음서들은 서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크게 불일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예수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장면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반적인 전승에 관한 한 예수의 혈통과 출생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볼 때 그러한 전승이 의존하고 있는 복음서들은 그 문제에 관하여 훨씬 더 모호하다.
오로지 두 복음서 들만이,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만이 예수의 혈통과 출생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복음서들은 서로 크게 상충되고 있다.예를 들면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왕은 아니지만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된 귀족이었다.
 
반대로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문은 다윗의 집안으로부터 이어져 온 가문이긴 했지만 약간 지위가 낮은 가문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목수’의 전설이 생긴 것은 누가복음의 설명에 근거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개의 족보는 너무나 불일치하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두 명의 다른 사
람을 지칭한 것처럼 보이기끼지 한다.
 
  또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그가 출생했을 때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는 박사들의 방문을 받았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구조사를 위하여 나사렛에서 예수가 구유의 비천한 몸으로 출생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대단히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 쭉 베들레헴에서 살아왔었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의 가옥에서 태어났다.
마태복음의 설명에서 보면 헤롯의 유아 박해 때문에 예수의 가족은 이집트로 도망치게 되었으며 그들이 나사렛에 정
착한 것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였다.

 복음서들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들 사이의 모순들은 분명해진다.실제로 복음서들은 십자가 사건의 날짜에 대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전날에 발생하였다.
마가복음,누가복음,그리고 마태복음에 다르면 그 사건은 유월절 다음날 발생하였다.
 
각 복음서는 예수의 인격과 성품에 대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예를들면 누가복음에서는 온유한 양같은 구세주로 묘사되어 있으며,마태복음에서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온 강력하고 장엄한 주권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도 불일치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이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이다.
누가복음에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저들의 하는 것을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단지 <다 이루었다>라고만 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들로 보아 그 복음서들은 하나의 대단히 의심서러운 전거(典據)로서 인정될 수 있을 뿐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없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나타내는 신성불가침의 것은 될 수 없다.
설사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대단히 개방적으로 검열되고 편집되고 개정되고 주석되고 재기록되어 왔다.
 
성서는 단지 하나의 발췌록일 뿐이며 많은 점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독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모두 적용된다.

 사실 성서는 실제로 수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과 기록들을 수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실’되었기 때문에 빠진 책들에 관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책들이 고의로 제외되었다.
 
AD.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주교는 신약성서에 수록될 수 있는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은 393년에 힙포교회 회의에 의해 재가되었으며 4년 후에는 카르타고교회 회의에 의해 다시 재가되었다.
이 교회 회의들에서는 신약성서를 발췌하여 구성하자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어떤 책들은 수집되어 오늘날의 신약성서에 수록되었으며 다른 것들은 단호하게 무시되었다.
어떻게 성직자들의 회의가 어떤 책은 성서에 속하고 다른 책들은 속하지 않는가를 무모하게 결정할 수 있었는가?
특히 제외된 책들 중 몇권이 역사적 정확성에 대하여 완전히 확고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가?

 더 나아가 오늘날 존재하는 성서는 단순히 다소 독단적인 발췌과정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과감하게 편집되고 검열되고 개정되기도 하였다.예를 들면 1958년에 콜롬비아 대학교의 몰톤 스미스(Morton Smith) 교수는 예루살렘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마가복음의 없어진 단편을 담고있는 한 편지를 발견했다.
 
그 단편은 복음서를 편집할 때 소실되어 없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 단편은 초기 교부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주교의 선동으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다.

 클레멘스는 영지주의 종파,즉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에 대하여 불평한 데오도레투스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은 마가복음의 어떤 구절들을 그들 자신의 원칙,즉 클레멘스와 데오토레투스의 입장과는 다
른 원칙에 따라 해석하였다.
 
결국 데오도레투스는 그들을 공격하였으며 그의 행위를 클레멘스에게 보고하였다.
스미스 교수에 의해 발견된 그 편지에서 보면 클레멘스는 그의 제자 데오도레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의 언어도단적인 가르침들을 침묵시켰다니 잘 하였오.
왜냐하면 이들은 예언서에서 언급된 ‘유성들’로 계명의 좁은 길로부터 육욕적이고 신체적인 끝없는 죄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자들이기 때문이요,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듯이 <사탄의 깊은 것들에 대한>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거짓의 어두운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그들이 자유롭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비굴한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요,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그리고 전적으로 적대시되어야 하오,
왜냐하면 그들이 비록 참된 어떤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동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요,
왜냐하면 참된 것이라고 다 진리가 아니며 단순히 인간적인 견해에 따라 참된 것처럼 보이는 진리도 참된 진리 즉 신앙에 따르는 진로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하나의 기독교 교부의 진술로서는 엉뚱한 것이다.
결국 클레멘스는 <그대의 적대자가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대는 그것을 부인해야 하며 그를 논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진실이긴 하나 그들의 마음에 들지않는 마가복음의 다음 구절을 삭제했다.

 그들이 베다니로 들아올 때 오라비가 죽은 어떤 여인이 거기 있었다.
그녀가 와서 예수 앞에 절하며 그에게 이르길 <다윗의 아들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녀를 꾸짖었다.그러자 화가 난 예수는 그녀와 함께 무덤이 있는 동산으로 떠났다.
곧 커다란 부르짖음이 그 무덤으로부터 들려왔다.
 
예수는 가까이 가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을 굴러내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청년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 그의 손을 내밀어 청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를 바라보자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함께 있도록 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무덤에서 나와 그들은 그 청년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이다.엿새 후 예수는 그 청년에게 해야 할 바를 말했다.
그날 밤 그 청년은 그의 벗은 몸에 베옷을 입고 예수에게 왔다.
그는 그날 밤을 예수와 함께 지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에게 하나님 왕국의 비말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거기서 일어나 예수는 요단 저편으로 되돌아갔다.
Smith,Secret Gospel,pp.16 ff. The youth naked save for a linen cloth appears later in Mark 14:50-2.When Jesus is betrayed in Gethsemane, he is accompanied by 'a certain young man,having a linen cloth cast about his naked body'.(벗은 몸에 베옷을 두른 청년은 삭제하지 않은 즉, 현존하는 마가복음의 14:50-2에 나온다.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옷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옷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하지만 위의 삭제된 구절은 마가복음의 현존하는 어떤 역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단히 낯익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요한이 기록했다고 생각되는 제4복음서에서 기술된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에 인용된 설명에서 보면 몇몇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예수께서 바위를 굴러내기 전에  또는 그에게 나오라고 명령하기 전에 전에 무덤으로부터의 ‘커다란 부르짖음’이 있다.
이것은 무덤에 있던 자가 죽지 않았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건이 기적적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부정하고 있다.
 
둘째,위에서 인용된 구절은 무덤에 있는 사람과 그를 일으킨 사람 사이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입증해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지만 스미스 교수가 주장하고 있듯이 그 사건 전체는 전형적인 신비학파의 비법전수,즉 그 당시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종류의 의식적이고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그 사건과 위에서 인용된 구절은 어떤 현대의 마가복음 역본 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마가복음 역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나사로 또는 나사로라는 인물에 관한 언급들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클레멘스의 조언은 데오도레투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후의 대가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나사로 사건 전체가 마가복음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마가복음이 그렇게 과감하게 삭제되기는 하였지만 그 복음서는 그럴듯한 첨가물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원본에서 보면 마가복음은 십자가 사건,장례,그리고 빈 무덤으로 끝나고 있다.거기에는 아무런 부활 장면도 없으며 제자들과의 재회도 없다.
 
그렇지만 몇몇 현대의 성서들은 보다 인습적인 마가복음 종결,즉 부활을 포함하고 있는 종결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확장된 종결이 2세기에 기원되어 원문서에 부가된 후대의 첨가물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마가복음은 이와 같이 인간의 손으로 다듬어지고 편집되고 검열되고 수정된 두 종류의 문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만이 유독 변경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이 그렇게 쉽게 수정된 것이 분명하다면 다른 복음서들도 마가복음과 유사하게 취급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면 이러한 성경의 조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로마에서 핍박을 받던 기독교는 A.D.313년 콘스탄틴에 의해 국교로 승인된 후 기독교는 로마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개조되었다.
 
로마에서는 그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이저는 이미 공식적으로 신으로 취임했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예수도 신격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바울에 의해 그는 신격화되었다.
 로마에서는 신이 될려면 신의 자격요건인 동정녀 잉태,부활 등이 필요했다.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널리 숭배받던 오시리스,탐무즈,아도니스.아티스 같은 신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부활한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예수도 동정녀 몸에서 태어났고 또 부활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성서학자들은 마가,마태복음의 부활 장면은 원본에는 없었는데 후에 첨가된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A.D.331년,당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명령으로 그 이전에 소실된(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눈에 띄는 모든 기독교 서적을 파괴하여 로마에 있는 기독교 문서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삭제,개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 개의 초기 신약성서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서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예수가 그 후 지금까지 알려져 온 대로의 독특한 지위를 기지게 된 것도 이 때이다.

 초대 기독교가 로마로 건너와서 변한 것은 또 있다.
로마에 건너오기 전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거룩한 날로 지켰었다.
그러나 A.D.321년에 콘스탄틴은 칙령을 선포하여 일요일에 쉬도록 명령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는 유대교적 기원에서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4세기끼지는 예수의 출생일이 1월 6일에 지켜져 왔었다.
그러나 로마의 전통적인 종파인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 와 <미트라>에서는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12월 25일을 태양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었다.
 
이 축제일과 맞추기 위해서 예수의 출생일을 12월 25일로 바꾸었다.
콘스탄틴은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질려면 먼저 종교가 통일되어야 된다고 보고 모든 종교를 하나로 싸잡아 기독교에 혼합시켰다.

 A.D.325년에 콘스탄틴은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공의회에서는 부활절의 날짜가 확정되었고 주교들의 권위를 명백히 규정했다.
예수가 인간적인 성향을 지닌 예언자가 아니라 신이었다는 것을 투표로 결정한 것도 이 회의에서이다.
 
신으로서의 예수는 그 당시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과 쉽게 조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틴은 정통주의적 가르침에 도전하는 모든 저서들 즉 ‘이단적’인 기독교인들의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관해 언급하는 이교적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 궁에 취임시켰다.
이렇게 하여 권위를 부여받은 로마 주교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않는 여러 복음서들을 삭제하고 개정하고 첨가하여 오늘날의 성경을 만들었다.
 
  예수의 출생

 유태인의 정통 신앙에 따르면 언젠가는 다윗의 자손에게서 한 사람이 일어나 다윗의 왕조를 회복하고 다윗과 솔로몬 왕조의 영화와 권세를 회복하리라는 왕조 부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조를 약속하였고,이 언약에 따라 다윗은 여호와의 성소를 예루살렘으로 정한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으며,이 신앙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왕이 탄생하여 다시 다윗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신앙으로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출생이 언급되어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유대인의 이 신앙과 예수의 탄생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라는 인물이 유대인이 고대하고 있는 다윗의 후손이며,여호와가 다윗과 맺은 언약이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함을 증명시키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거기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누가 2:1-7)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니.....(마태 2:1)
 그럼에도 예수가 실제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확실치가 않다.예수가 장성하여 공적 생활을 하던 시절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 불렀고 예수 자신도 나사렛을 자기의 고향이라 했다.
 
예수가 태어난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예수는 알 수가 없었고 또 알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단지 예수는 그가 자란 갈릴리의 나사렛을 자신의 고향이며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믿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든 유대 땅이 아닌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태어났든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국의 왕이 되지는 않았으며,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이후에도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존재하였고,예수가 사라진 후 100년 후에는 전세계로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불우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왕조를 재건하기를 기대했던 정치적 왕의 이미지의 예수는 오히려 이스라엘 국가와는 상관없이 로마에서 종교화되어 전세계로 파급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어쨌든 성서의 기록자들이 예수를 유대인이 고대하던 메시아로 부각시키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예수의 출생이 기록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어 그 진실성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마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 출생과 때를 맞추어 동방에서 세 박사가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 세 사람의 동방 박사는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 왕의 별을 보고 그를 찾아왔노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헤롯왕과 온 이스라엘이 소란스러워진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모친을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급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마태 2:13-15) 
 
 이 기사에 따르면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대살생을 몰고 왔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애급으로 피난가서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서 살았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피를 부르는 대학살과는 달리 누가복음 속에 기록된 예수의 출생은 축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2장 8절 이하의 기사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하던 날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목자들 곁에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세주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다.

 출생 후 8일이 되자 관례에 따라 할례를 하였고 이름을 예수라 하였으며 유대의 모세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더라.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눅 2:21-22)
 
 예루살렘에 올라간 아기 예수에게는 놀랍게도 축복이 잇따르게 되었다.
그 첫번째 축복은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내린 것으로,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는 이스라엘이 속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이스라엘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그가 성잔에서 아기 예수를 보자 예수를 안아들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9-32)

 하면서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축복하였다.
또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늙은 여선지자가 있었다.
이 여인은 출가한 후 7년 만에 과부가 되었고 과부가 된지 84년이 된 여인이었는데,성전에서 살면서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예수를 만나자,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8-39)

 이처럼 온 예루살렘이 예수의 출현을 알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 번제를 마치고는,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39)

 마태복음의 예수는 헤롯왕의 죽임을 피하기 위하여 애급으로 먼 여행을 떠난데 비하여 누가복음의 예수는 출생 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33일 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율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으며 유명한 선지자들의 축복을 받았다.
 
어느 예수가 진짜인가.
애급으로 도망간 예수와 예루살렘에서 축복받은 예수는 도대체 동명이인인가 아니면 같은 예수인가?

 이렇게 두 복음서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두 복음서 중 적어도 하나의 기사가 거짓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는 명백히 거짓이고 둘 다 거짓일 수도 있다.
또 두 복음서가 부분적으로만 참일 가능성도 있다.
예수 자신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의붓아버지 요셉이나 어머니 마리아의 입에서 나온 것일까.아니면 그를 경배한 동방박사나 양을 치던 목자들의입에서 흘러나왔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예수가 떠난 지 100년 후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각기 자기 나름의 상상에 의해 기록한 것일까.
이 모든 가능성에 어느 누구도 분명한 해답을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쓰여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예수 출생에 관한  두 복음서 기자들에게 서로 모순되게 계시할 만큼 머리가 나쁘다고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성령 잉태설의 허구
 마태복음의 본문에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수태 사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태 1:18-25)

 이 기록에 따르면 예수의 어머니는 마리아라는 여인이며,이 여인이 예수를 잉태할 때에는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을 하였으나 아직은 처녀였다.
이 처녀 마리아가 성령이라는 영적 작용에 의해 예수를 잉태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 풍속에 따르면 남녀가 정혼을 하고도 1년은 한 집에 살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살다가 1년 후에야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하고난 후 관례에 따른 별거 기간 동안에 정혼자인 처녀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마리아가 임신을 한 사실은 마리아가 살고 있던 동네에 소문이 났을 것이며 이 소문은 자연히 요셉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요셉은 이 부정한 아내를 데려오기를 당연히 꺼렸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시 유대의 율법에 따라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이 받는 형벌 즉,돌을 맞아 죽을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이 때에 요셉이 꿈을 꾸니,꿈 속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마리아가 부정한 아내가 아니라고 일러주며,나아가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한다.
 
이 꿈의 지시에 따라 요셉은 임신한 신부 마리아를 데려와 살게 되니 마리아의 부정은 자연히 감추어지고 어머니와 아들이 무사히 살아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마태복음의 기자가 기록한 이 기사의 출처는 어디였을까?
신약성경 속의 예수의 말이나 해석 가운데에서 그 출처를 발견할 수는 없다.
예수는 자기 주변의 가족 사항에 대해 전혀 언급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때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가 3:33-35)

하면서 만나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예수의 입에서 자기 어머니의 임신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나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예수의 의붓아버지이자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에 관한 기록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 이외에는 신약 성경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학자들은 요셉이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으리라고 보고 있다.
예수 일가는 그의 아버지 요셉이 죽자 그때까지 살고 있던 나사렛을 떠나 가나로 옮겨 살았으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요셉도 이 사실의 출처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마리아의 입에서 나왔을까.
이 또한 아무런 단서가 없다.
그러나 정혼한 처녀였던 마리아가 세상의 기준에서 본다면 부정한 임신인 자신의 예수 잉태를 소리높여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서 기자는 이 사실을 어디에서 찾아내어 복음서에 기록했을까?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난지 90년 내지 100년 후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두 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는 나사렛이나 가나 또는 갈릴리지역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임신과 예수의 출생을 직접 목격하였던 증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100년 뒤까지 마리아의 임신과 예수의 탄생이 그 고장 사람들 사이에 대를 이어 전승되었을까?

 오히려 이 기록은 구약성경의 예언을 토대로 예수를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끼워맞춘 느낌을 준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보라.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 1:22-23)

 마태와 누가복음은 그 전체적인 의도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특히 유대인들에게 설득하고 납득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두 복음서에는 예수의 족보,아니 요셉의 족보를 상세히 적고 있다.
 
마태복음은 요셉에서 아브라함까지,누가복음은 다시 아브라함으로부터 거슬러올라가 천지창조 신화에 나오는 아담까지의 구약성경의 족보를 책머리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복음서 기자의 이러한 의도는 예수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고,또한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되었던,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계약의 성취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며 예수의 종교와 이스라엘의 종교를 접목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 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를 인정받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와 이스라엘을 접목시키려 한 이 기사의 내용이 오히려 예수를 이스라엘로부터 더 멀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마태복음의 이 기사와 누가복음에 있는 같은 마리아 잉태 기사는 다 같이 에수가 요셉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하였으나 아직 동침한 일이 없는데 그런 상태에서 마리아가 잉태한 사내아이가 어떻게 요셉의 자식이
될 수 있는가!
당시 이스라엘의 법은 형식혼이 아니라 실정혼이었으며 혈통적으로 보아도 예수와 요셉은 남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다윗의 혈통을 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또 마태복음의 기록자가 인용한 이사야서의 바로 뒷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처녀가 잉태한 아들이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이사야 8:14-15)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선하다.
그러므로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신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악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신의 아들에게 버릴 악이 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논리와는 명백히 모순된다.
그래서 마리아가 실제로 처녀인 상태에서 예수를 낳았는지의 진위여부는 제쳐두고라도 적어도 이사야서에 언급되어 있는
처녀가 낳은 아들이 예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오류는 이사야서에 언급된 처녀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virgin)로 본 데서 기인한 것이며 영적 의미가 내포된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에서 온 것이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마리아는 남자없이 예수를 잉태했을까?

 예날 사람들은 남자가 없이도 여자가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큰 의심없이 믿었다.
예수의 경우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부터 2천년 또는 그 이전의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특히 자신들이 숭배하는 사람은 그 출생이 당연히 보통 사람과 달라야 하고 또 그것이 정상이라고 믿었다.
 
세계 각국의 조상신 중 어느 누가 정상적인 탄생을 하였던가?
조상 숭배 사상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신앙이었던 당시에는 부족의 최고 선조가 바로 그들의 신이었으니,그 신이 일반 사람과 같은 형태의 출생 내력을 갖는다는 합리성을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부여,고구려,신라 등 우리나라의 건국 시조들도 대부분 정상적인 출생자가 아니었다.

 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날 신전에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였다.
이때 타고 가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는 서로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니 거기에 어린아이가 하나 있는데 모양이 금빛 개구리와 같았다.
왕은 기뻐하여 말하였다.이것은 필경 하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이로다.그 아이를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 했다.        -  <삼국유사> ‘동부여’조 -

 이로 해서 태기가 있어 알 하나를 낳으니 크기가 닷되들이만 했다.
왕은 그것을 버려서 개와 돼지에게 주게 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다시 길에 내다 버리니 소와 말이 그 알을 피해서 가고 들에 내다 버리니 새와 짐승들이 알을 덮어 주었다.
왕이 이것을 쪼개 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쪼개지지 않아서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어머니는 이 알을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놓아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기이했다....... 그 아이를 주몽이라 이름했다.                       - <삼국유사> ‘고구려’조 -

 이에 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보니 양산 밑 나정이라는 우물 가에 번갯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땅에 닿도록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흰 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곳을 찾아가 조사해 보았다.
거기에는 자줏빛 알 한개가 있었다.
말이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를 얻으니 그는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왔다....... 이 아이를 혁거세왕이라고 이름했다. - <삼국유사> ‘신라’조 -

 이처럼 우리 고대의 국가시조들 대부분이 범상한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이 그 아비가 없는,알에서 태어나거나 궤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전 세계의 국가 시조나 유명한 인물에게도 적용되었다.

 적어도 지금부터 2천년 또는 그 전후의 시대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설들력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 지성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의 신화로 규정하고 있을뿐 그 진실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성령 잉태설이 복음서가 기록되었던 서기 100년 무렵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으며 또 문제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코 앞에 둔 이 시점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있으며,또 믿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미신타파에 앞장 서 온 기독교가 미신 중의 미신을 믿고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여자 혼자서 자식을 낳을 수는 없다.
만일 마리아가 특이하게,인간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자연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지만,자신의 난자만으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무성생식을 했다고 한다면 예수는 결코 남자일 수 없고 여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까지 밝혀진 분자생물학의 걸론이다.
 
그러므로 성령잉태설은 미신 중의 미신이며 예수의 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을뿐 분명히 존재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로마 병정들이 아무 여자나 노략질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리아도 그렇게 당한 여자들 중에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유대의 전승이나 탈무드의 기록에 따라 예수의 아버지는 로마병정 <판데라>일 활률이 높다.
그러한 단서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예수의 아버지가 결코 요셉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세례 요한의 탄생기록을 싣고 있어 이를 통해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단서가 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유대의 아비야 가문에 한 대제사장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사가랴이고 그의 부인은 엘리사벳이라고 하는 아론 계통의 집안 사람이었다.
사가랴가 성전의 성소에 있는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반 백성들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는 성소에 주의 사자라는 자가 나타나<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1-13)> 고 하였다.
그 후 대제사장 사가랴의 부인은 임신을 하게 되어 열 달 후에 세례 요한을 낳았다.

 그런데 엘리사벳이 요한을 임신한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란 자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1)>고 하였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늙은 대제사장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이 임신한다는 사실을 사가랴에게 전한 그 남자,즉 자칭 하나님의 사자이며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한 그 남자가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자칭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학자들은 그가 군인의 복장을 하였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만군의 왕이라고 칭함을 받기에 합당한 군신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 남자는 대제사장 사가랴가 홀로 분향하고 있던 성소 안의 분향대에 나타났다.
성전 안의 성소는 일반 백성에게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렇다면 이 성소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통치권을 가진 로마군인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은 오래 전부터 성서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어 왔던 문제이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사가랴 앞에 나타났고 이어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자칭 천사 가브리엘이라는 남자는 로마의 군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유대 땅에서는 예수가 판데라라는 군인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고 독일에서 판데라라는 묘비도 발견되었다.(숨겨진 성서 제 2권 P.40)

 탈무드에서도 판데라의 아들 예수(Jesus Ben Pandira)의 설교 전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세계의 종교>p.342

 또 외경인 <빌라도 행전>에 보면 예수의 사생아 부분에 대해서 그 당시에 논란이 많았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원로들이 예수에게,
첫째 당신은 간통으로 태어났고,둘째 당신의 출생으로 베들레헴에서 아이들이 살해되었고,셋째 당신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집트로 도망쳤단 말입니다._<숨겨진 성서> p.109-

 안나스와 가야파가 빌라도에게 “이 사람(예수)이 간통으로 태어났다고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고함치는데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위의 책 같은 페이지-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기록하긴 했으나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 모독죄로 로마법정에 고발하여 처형시키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예수가 사생아라고 믿고 있으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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