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신론적 "전체"에 관한 담론

범신론적 "전체"에 관한 담론

사람 0 2,780 2014.07.03 17:14
범신론적 "전체"에 관한 담론
 
 현상계의 변화무쌍한 존재들을 독립된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고 상호 연관성과 동질성에 주목하여 그 전체를 하나인
것으로 상정하면 그것은 곧 "범신론적인 전체"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것을 범신론적이라 하는 것은 그 성격이 서양철학의 분류상 범신론적 입장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범신론이라 생각하든 아니든 서양철학의 분류에 따르면 그 성격이 그렇게 분류가 되는 것이다.
 동양철학의 입장에서는 동양적인 "전체"의 성격이 서양의 범신론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도 서양식으로 분류하지 않으므로
 범신론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서양식으로 분류를 하면, 동양적인 "전체"도 범신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주 많이 있다.

 이 "전체"에 해당하는 것의 예를 드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자.
 개별적 존재들이 원소로 구성되어있다는 관점에서, 일체가 전기에너지에 의한 것임을 근거로 일체 존재를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일체 존재 안에 내재한 전체로서의 전기에너지를 유추하면, 이 "전체로서의 전기에너지"는 범신론적인
'범신'에 해당하는 성격을 갖게 된다.
 
 이 경우, 개별적 존재들은 전체인 전기 에너지의 일부이며, 이 전체인 전기에너지가 아니고는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
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전체인 전기에너지가 사라지면, 일체의 개별적 존재가 동시에 모두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마
는 것이다. 일체의 원소가 사라지면 뇌의 작용인 정신 역시 사라진다.
 
 이 전체인 전기에너지는 일체 존재를 그 안에 포함한 전체이므로 이 전기에너지 밖에는 그 어떤 것도 따로 존재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입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런 식의 전기에너지는 오직 하나뿐인 절대적 성격을 갖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장하는 사람 스스로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성격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런 것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개념상 "절대"의 의미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것에 대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으로서 "절대"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범신론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 전체인 전기에너지는  "일체에 내재한, 이 세계 자체인 신"에 해당하는 것이다.
  "신"은 "절대적 존재에 대한 서양철학식 명칭이다. 기독교적인 인격신을 염두에 두고는 전혀 이빨이 안 들어가는 소리
인데, 스피노자의 "자연"이 곧 그의 범신론에서 "세계에 내재한, 세계 자체인 신"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 일이다.
 
 이런 성격의 전기에너지는, 현실적인 존재들로부터 유추한 전체이므로, 일체가 전기에너지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이 전기에너지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이해하면, "일체를 포함한 전체인 전기에너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자명한(스스로 분명한) 것임을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그 일부의 어디를 가리켜도 같은 종이(paper)인 것이 있으면 이를 근거로 그 전체인 한 장의 종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자명한 것이다.
 이것은, "전체"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지, 정말로 이 세계라는 것의 "전체"가 전기에너지라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아닌가
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  이런 예를 들면 또, 다른 종이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따위의 시비를 거는 난독증 환자가 나서기  마련이라서
  사족을 단다.
   지금 이 종이는 일체의 모든 존재를 포함한 전체에 해당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이 종이에 포함
  되지 않은 다른 존재가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일부분들이 같은 종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전체인 한장의 종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일부인 종이는 있지만 그 전체는 종이가 아닐 수 있다든가, 일부인 종이는 있더라도 전체인 종이는 없
 을 수도 있다든가, 전체인 종이가 한장이 아니라 여러 장일 수도 있다든가...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할 일이 없으면 얼마든지 해도 좋은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일부분인 전기에너지가 있으면 그 전체인 전기에너지가 있고, 일부분인 자연이 있으면 그 전체인 자연은 당연히 있다.
 이 "전체"는 모래알갱이를 모은 경우와 같은 집합개념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래알갱이들은 집합개념인 "전체"가 없어도 존재하지만, 전기에너지로 존재하는 원소들은 전체인 전기에너지 없이
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인 전기 에너지는 개별적인 존재들에 내재하는 것으로서 개체들은 전체인
전기에너지의 일부분들인 것이다.
 이런 성격의 개별적인 존재 들이 있다면 그 전체인 전기에너지는 당연히 있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현상으로부터 유추한 전체"라는 것이다.
 전체를 "전체" 그 자체로, 그것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낼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럴 수가 있다면, 이 전체에 대해 이렇게 서로 다른 이론들이 생기는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서로 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근거를 가지고 서로 다른 것을 "전체"라고 자기 나름으로 유추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런 주장을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을 전체라고 유추하는 것이
타당한가 어떤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것이 타당한 설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내 사상의 중심으로 삼을 지의 여부는 또 별개의 문제인 것
이다.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와 같은 절대적인 "신"에 대한 관념이 없으므로 그 "전체"가 갖는 성격이 범신론의 "범신"과 다른
줄 알면 잘못 아는 것이다. 그 성격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노자'의 "도"를 놓고 보면, 일체는 "도"에 의한 것이며, "도"를 벗어난 것이 없고, 일체의 현상은 "도"의 작용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 "도"밖에 이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가의 음양오행설의 무극도 마찬가지이다. 유일무이의 절대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이 스스로 절대적인 것이라 한 바는 없지만, 그 성격은 개념상의 "절대"의 의미에 해당하는 것
이라는 말이다.
 서두에 지적한 대로 이런 것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개념상 "절대"의 의미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으로서 "절대"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이라면 불변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있다.
 현상계가 끊임 없이 변하는데, 이 변하는 개체들은 계속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전체"인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체인 전기에너지가 스스로 변해서 전기에너지가 아닌 다른 것이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전의 전기에너지를 가리켜 "절대"라 한 것이 잘못이다.
 
 그러나 전기에너지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그 순간에 일체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현상의 모든 개체가 변하면서도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것은 전기 에너지가 여전히 전기 에너지로 남아있
어서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모든 개체가 여전히 전기에너지에 의한 원소로 이루어진
개체들로서 변화를 계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개체들은 변해서 다른 것이 되어도 전체인 전기에너지는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 전체 자체에 변함이 없다는 것은, 변화라는 것이 개별적 존재에서처럼 변해서 다른 것이 된다는 의미에서의 변화
즉, 동일성을 상실하는 의미에서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손을 들었을 때와 손을 아래로 하여 허리를 굽혔을 때, 그 모습이 다른 것을 근거로 다른 사람이라고 하
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한 사람이 여러 모습을 보인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래서 범신론적 전체는 "활동하는 절대적 전체"인 성격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자연도 활동하는 자연이다. 활동을 해도 그것이 자연 아닌 다른 것이 되지는 않는다.
 '노자'의 "도"나 '유가'의 "무극" 역시 현상을 내어놓고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을 하지만, 그 자신이 변해서 다른 것이
되지는 않는 것들이다.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정말로 절대적이려면 그저 "고정된 실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
유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자유라 하더라도, 현상이 변해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것"인 전기에너지나 스피노자의 자연이나,
노자의 도나 유가의 무극이 변해서 다른 것이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 자체인 것들이다.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얼마든지 자유이다.
 그러나 "범신론적인 전체"는, 스피노자의 자연이든...무엇이든 활동하는 것으로서, "일체에 내재하는 신" 즉, 절대적인
성격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범신론의 입장"이다.
 
 ( 범신론적 전체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경우는, 현상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전체 자체가 발전해
 나아간다는 입장의 경우이다. 화이트 헤드의 만유재신론(포월신론)은 끊임없이  "되어가는" 전체를 말한다.)
 
 이러한 전체를 자기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유추하여 "이것"이라고 상정했을 때는, 그것이 전기에너지든, 자연이나
도, 혹은 무극이나 비로자나불이거나 혹은 뭐라고 하건, 문제는 "그것"이 일체를 포함한 전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유추냐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유추와 해석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을만큼 이 세계를 "합리적이고 풍부하게"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노자의 도라는 것이 황당한 것이다.
 그 자체가 무(無)요 허(虛)라는 도(道)에서 일체의 존재와 현상이 나왔다고 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도의 속성이 무언가 내용이 있어야 현실적인 존재들을 내어놓고 굴릴 것이 아닌가, 정말로 그 속성자체가 글자 그대
로 "무"요 "허"라면 그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다. 불교의 궁극적 자리가 아무것도 없는 "무"이며 "공"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석가의
 제자들은 자연이라거나 인연이라거나 어쨌거나 뭐라도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므로 석가부처는 자연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라는 가르침을 베푼다.
 무명(無明) 이전의 자리는 석가부처라도 말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명 이후에 벌
어지는 일들이다. (대승불교는 석가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어째서, 위에서 예로 든 전기에너지나, 자연이나 등등의 경우들과 다른가?
 노자나 석가는 일체의 개별적인 존재들이 변하는 것으로서 실체가 없으므로 그 속성을 "무(無)"요 "허(虛)"나 "공(空)"으로
 보고 이것을 근거로 현상계 전체를 유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신론적 전체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자유의지, 윤리도덕, 역사관에 관련된 것이다.
 일체의 현상이 "전체"의 작용이라면 인간의 행위 역시 그 작용의 산물일 것이므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리되면 꼭두각시에게 그 움직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므로 윤리도덕을 따지는 근거가
 무엇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나아가 이런 현상을 내어놓고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해 가는 특정한 방향이
있는가 하는 역사관의 문제가 제기된다.
 
 범신론적인 전체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것에 답변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 "전체"라는 것으로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합리적이고 풍부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
이다.
 자유의지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윤리도덕의 근거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변화해 가는 일정한 방향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앞뒤 모순이 없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범신"론"이라 할 이론적 체계를 갖춘 것이 된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자연 그 자체의 속성에 따르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정의된 의미의 자유의지는 없고,
 선악도 본래 없으며(단지 좋고 나쁨이 있을 뿐이다.), 변화가 진행하는 특정한 방향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순환적
 역사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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