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성과 절대적 존재
철학적으로는, 합리적 이성과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
안티들이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기독교는 잠시 제쳐두고 한 번 생각해보자.)
합리주의 이성주의의 시조격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모두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형이상학의 시조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신의 존재증명을 시도하기도 했다.
데까르트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에 대한 관념을 인간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나는 본유관념이라 했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이며, 라이프니쯔는 신의 예정조화설이다.
칸트는 자연적인 행복과 도덕적인 선이 일치되는 최상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피히테는 대상이 있어서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 관념으로 감각내용을 정리하여 대상을 구성해낸다는
칸트의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비아(非我-=자연세계)를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절대적 자아를 제시했다.
쉘링은 피히테의 비아와 자아의 대립을 포괄하는 객관적 절대자를 주장했다.
헤겔은 쉘링의 절대자를, 자기 자신과 반대되는 세계를 내어놓고 그것과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자각해가는 절대정신이라 하였다.
우리가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로 분류하는 위의 철학자들 모두가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이나 절대자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 기독교의 종교적인 신과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중 일부는 분명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쨌거나 이성과 합리를 강조하는 그들의 입장이 "절대자"를 인정하는
것과는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신이나 절대자가 그들의 철학체계의 전제나 중심이 되어있다.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믿는 근거가 무엇인가?
어째서 이성의 합리적 사고에 의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믿는가?
합리주의 이성주의의 시조인 소크라테스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주장한 바는 이성에 의해 의심스러운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후에 근대 합리론의 시조인 데까르트의 진리관이 되었다.)
이성에 의해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진리라는 것은, 이성은 그 안에 이미 진리 여부를 가리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성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플라톤의 상기설(想起說)은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은 이미 알았다가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던 것으로서 진리를 이미 아는데, 육체 안에 들어오면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대상세계의 작용 원리(자연법칙)와 인간의 사고원리(사고법칙=수학, 논리)가 같기때문에 자연법칙은 논리법칙(수학)으로
기술된다.
어떻게 이 둘의 원리가 이렇게 같을 수가 있는가?
이 둘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바탕으로서의 "이성적인 정신=절대자"를 전제하지 않고도 이것이 가능한가?
<자연의 법칙과 사고의 법칙이 이성적인 것으로서 같은 속성의 것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의 근원인 그 바탕이 "이성적인 절대적 정신"이 아닐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 여기서 "이성적인 정신"을 "절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우주의 모든 존재 안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하여 그 일체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