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죄악이라는 해괴한 교리작성자: 분석가 (2/27/2003-00:56)

가로수 0 2,808 2007.07.30 15:08
의심은 죄악이라는 해괴한 교리작성자: 분석가 (2/27/2003-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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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죄악이라는 해괴한 교리

`믿음`이라는 것은 원래 믿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확실한 정보, 사실을 경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돈을 빌리고 안 갚는 사람은 자연히 믿을 수가 없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종파가 어떻든, 불확실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믿으라고 강요할 뿐더러, 불신을 죄악이라 여기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불확실한 교리를 의심하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주입시킨다. 바이블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구절이 매우 많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야고보서1:6~8)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누가7:23)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3:18)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요한3:36)

이 밖에도 신약에는 맹목적인 믿음이 사후에 보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의미하는 반면 불신자는 죄인이자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구절이 매우 많다. 믿음이 약해지는 것을 죄라고 미리 정해두고 자신과 다른 교리를 악마나 마귀의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모두 기독교의 존속을 위한 방어 기제이다. 어떤 신념을 기반으로 조직된 집단이 있다고 할 때, 그 집단을 존속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은 사람들의 회의심을 꺾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의 상황이나 박정희씨 같은 독재자들의 정권 유지 방법을 생각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은 국민들에게 어릴 때부터 철저한 사상교육을 주입시키고 "왜?"라는 물음이 떠오르지 않도록 반복적인 주문을 세뇌시킨다.

기독교의 수법은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둥, 부활을 했다는 둥 하는 불확실한 것들을 그냥 믿으라고 한다면 회의심을 갖는 사람도 있으니, 믿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협박을 주입하는 전도 방식을 아예 교리로 정해 놓았던 것이다.

교회 당국은 그 존속 근거를 자기네들만의 교리에 두고 있으므로, 그 교리에 반대되는 이론, 증거, 반발 등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은 허구`라는 이론이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것을 믿어 왔던 대다수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그 이론을 제대로 살펴볼 생각조차 안하고, 분노부터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그 이론을 입증한 사람을 악마나 마귀로 매도할 것이다. 갈릴레이나 다윈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에 반대되는 증거를 보았을 때의 태도는 위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 과학자는 그 증거가 유효한 것인가를 따져본 후,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시인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존속 근거를 `믿음`이 아닌 `이성`과 `솔직함`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의 이론은 모든 의심에 대해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과학에서의 솔직한 태도이지, 낡은 고대 신화에 적혀 있는 것들에 대한 맹신이 아니다. 버틀런드 러셀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말하는 지적 성실성(知的 誠實性)이란 말썽이 있는 문제들을 증거에 따라 결정 짓되, 증거가 확실치 않을 때는 결정을 유보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미덕은 비록 독단적인 도그마를 지키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과소평가를 받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장 큰 사회적 중요성을 띤 것으로서 기독교를 비롯한 어떤 조직화된 신앙 집단보다 세상에 더 큰 유익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한다."

"과학자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도 속세의 권력에는 호소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 많은 증거를 기다린다."

"종교적 믿음의 특성은 그 신념에 투철한 것, 다시 말해 반대증거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종교적 신념에 투철한 사람들은 심지어 반대증거로 인해 의심이 생기면 그 증거들을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러셀이 지적했듯이, 기독교는 자기네의 신념에 대한 단호한 확신을 요구한다. 기독교는 그 신념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가는 이론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공격적이되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킨다.

기독교가 교리를 지키는 이러한 방식은 기독교를 2000년 이상 존속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기독교 내부의 분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 배타적인 모습을 띠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 자체는 진실이 아닌 `믿음`을 토대로 성립된 종교인데,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각자 자신이 기존에 믿어 왔던 것들을 의심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자기 의견의 양보나 반성이란 있을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에 의해 사라지거나 분열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의심과 불신은 죄`라는 해괴한 교리가 가져다 주는 해악이다. 그 해악은 기독교 역사 2000여년 동안 계속되어 왔고 현재 진행 중이다.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라 불리는 이유는 `의심과 불신은 죄`라는 교리가 투철하게 지켜졌기 때문이다. 마녀사냥, 십자군 전쟁, 사상의 자유 박탈, 과학의 퇴보 등은 모두 이 교리에 의한 불행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념`을 순수하게 지킨다는 것은 결국 위와 같은 해악을 퍼뜨리는 일이 되는 것이고 `사람의 잘못`이냐 `기독교`의 잘못이냐를 따질 때, 기독교의 잘못 쪽에 무게 중심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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