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자연의 원재료에 대해
<사실 자연이라는 원재료를 부정하고 경전만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순
환오류일 수도 있지만... 이미 기독교의 경전에서는 태초에 천지를 만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
다...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천지(자연)를 지칭해 원재료가 될 수 없다는 말 자체가 기독교에서 지니고 있는
제 1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 순환논리 맞습니다.
기독교의 창조신에 대한 선행하는 관념 없이 자연을 보면 거기서 자동적으로 기독교의 창조신을 보게 되지는 않
습니다. 자연이 기독교의 신을 나타내는 원자료일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신을 전제할 경우 뿐입니다.
B. 궁극적 실재의 자기 현현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궁극적 실재의 자기 현현을 기독교에서 계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고...하이데거는 울려움(Anklang)이라
는 표현을 사용했고...도교는 도... 불교는 불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러나 원초적인 궁극
적인 실재의 자기 현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러한 궁극적 실재의 자기 현현은 인간에게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요...
기독교 경전을 근거로 하지 않은 신의 계시는 없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궁극적 실재(신이라는 단어가 아닌 궁극
적인 실재를 사용한 이유는 신의 존재, 혹은 1자, 혹은 근원적인 존재를 개종교의 언어게임 속에 가두지 않기 위
함입니다...)의 자기 현현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에는 궁극적 실재를 전제로 하고, 궁극적 실재의 자기 현현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아주 이상한 얘기가 됩니다.
기독교의 신을 전제로 하면, 그 신을 도교의 경우처럼 도덕성과는 무관한 무심의 도라거나, 인간의 역사에 대해
아무런 의도나 목적을 갖지 않은 불성이라거나, 기타 형이상학적인 궁극적 실재라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것들과 기독교의 신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또, 개인의 실존을 일깨우는 내면의 소리나 혹은 인간이 느끼는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이 인간을 직접 기독교의
신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도록 스스로를 드러내 주는 계시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런 것들이 기독교 신의 계시이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신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님이 어디에 걸려있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1. 기독교의 신을 형이상학의 궁극적 존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2. 그렇게 생각하기에, 형이상학의 궁극적 존재가 보편적이라는 것으로부터 기독교의 신도 기독교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 저 위쪽 “형이상학의 신? 기독교의신?”에서도 지적했지만 기독교의 신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한 인
간이 일방적으로 신을 알 수는 없는 일이고, 신이 인간에게 직접 스스로를 드러내 보인 것은 유대인들의 역사를
통해서이며 이에 대한 기록이 기독교 경전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경전을 떠나서는 기독교의 신을 논할 수 없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