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의는 종교의 본질이 주제였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결국은 ‘맹신’이라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즉, 종교적 진리는 그것이 진
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리일 필요가 있어서 ‘무조건’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는 것이었
습니다.
님은 이성을 강조하시면서, 제가 원 글에서 근거로 제시했던 여러 예와 관련해서는 일체 언
급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성에 의한 확인”이란 신앙 이전과 이후의 일입니다. 어느 한 종교가
‘나의 진리’가 되는 것은 이성을 넘어선 비약을 통해서입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이고, 이 ‘무조
건’적이라는 것이 곧 ‘맹신’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잠새님은 제가 이성을 배제했다고 어이가 없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 님의 말씀에 놀라고 있습
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성격이 무조건적인 믿음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신 것은 저로서는 놀
라운 일입니다.
이성에 의해서는 신앙에 도달하지 못하며, 이성적인 논의를 통해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
습니다. 아닙니까? 신앙은 비약입니다. 신앙은 논리나 이성이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곳에
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지 않고서는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잠새님은 지금, 우리가 하는 토론이 이성적인 활동이라고 하시는데, 일부분만 맞습니다. 이
토론의 초기에 “서로의 신앙 고백”이 필요할 거라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만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은 “지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데, 저 역시 그렇
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의 가르침이 과연 우리가 소망하는 그런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줄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성만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를 가진 두 인간이 참담한 인간의 세계를 옆에
두고 인간을 구원할 진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 두 사람의 신앙이
맞부딛치게 될 것입니다. 논리와 이성만이라면 우리의 논의는 걷돌고 끝날 것입니다.
잠새님은 이성적인 대화로 신앙을 갖게 되거나 잃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님이 지적하신 맹신의 병폐가 어떤 것인지 잘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행해왔던 일들 아닙니까? <왜냐하면 맹신은 필연적으로 배타를 낳을 수 밖에 없고... 배타는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폭력과 전쟁... 그리고 아픔을 낳기 때문입니
다...>라는 님의 말씀에 ‘맹신’을 ‘기독교’로 바꾸어 넣어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훌륭한
문장이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기독교의 배타적인 행태는 극히 일부의 일입니까?
앞 선 논의에서 이미 공감한 바이지만 기독교의 핵심인 신의 존재에 대해서 조차 이성적으
로는 결국 모른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존재 여부조차 확인 할 수
없는 대상을 중심으로 한 사상누각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정과 의
지는 그것이 없으면 안 될 것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성을 너머 이렇게 외칩니다.
< 신은 존재한다. 왜? 신이 없다면 이 간절한 소망을 버려야 하니까. >
신앙인이 신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소망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신앙이란, 무조건적인 신앙 이후의 일입니다. 믿음의 합리적이고 정합적 구조를
세우고 검토하는 일은 무조건적인 믿음 다음의 일입니다.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핵심은
‘무조건’ 믿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맹신’이 어감이나 의미상 못마땅하지만 사실이 그렇습
니다.
그렇지 않고, 신앙이 이성에 의한 것이라면, 세상에 종교는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 이성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에도 궁극적 존재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는 것
은 종교만이 아니라 철학도 결국은 이성으로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그렇다고 믿는 것이 ‘맹신’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종교도 철학도 결국은
‘맹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삶의 대부분은 ‘맹신’에 따르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들더라도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에 있어서 믿음에 대한 부분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종교에 있어서 본질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만 가지고 종교를 유지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였습니다...
결국 저와 님의 생각은 약간의 관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종교의 본질이다... 이것이 대전제라면...
저는 여기에 부수적이지만 그럼에도 폐기할 수 없는 요소로서의 이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까지 용납 못하겠다고 하신다면...
이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님과 저의 시각의 차이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수순일 듯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존힉의 종교철학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쉽게 짧으면서도... 종교에 대한 철학적 명제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니까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1장이 신앙과 이성의 관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