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새님에게 제시한 5개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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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새님에게 제시한 5개 항목

거울처럼 0 1,342 2008.11.18 21:06
1. 기독교의 신이나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경전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경전과 관계없는 것을 기
독교 신이나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정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진리는 하나이고 따라서
유교의 천이나, 불교의 불성이나, 도교의 도나, 기독교의 신이나 다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개인적인 믿
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앙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이 아니라도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신을 부정하면서도 신비의 영역을 인정하는 무신론적
신비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기독교의 신과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는 기독교 경전을 떠나서는
말 할 수 없습니다.
 
2. 위 1항을 전제로 하는 경우, 기독교 경전에 오류가 있다고 “성경의 무오류성”을 포기하는 것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경의 무오류성”을 포기하는 것은 경전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진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어느 것이 진리
인가를 판별하는 기준도 경전 자체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의 구절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려면,
다른 구절이 필요하고, 기준이 되어야 할 그 구절은 진리임이 보장된 것이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구
절이 필요하고....결국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결국은 경전 전체가 오류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이 진리이고
오류인지 판단할 기준은 경전 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경전 자체가 곧 진리라
고는 할 수 없으며 경전 내용의 진리성은 경전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특정한 해석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기준이 경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전을 근거로 그 어
떤 내용의 신앙형태나 교리를 도출하든 그 어느 하나도 잘못된 것으로 판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이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안상홍’을 재림 예수이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교단에 가서 몇 일을 두고 함께 논의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안
상홍’이 하나님이라는 증거를 경전에서 찾아냅니다. 그게 어디 그런 말이냐고 반박을 하면, 비밀은 2중 3중으로
감추어져 있으므로 이 구절은...이 구절을 보아야 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이 구절은....한 참 뺑뺑이를 돌고
나면 ‘안상홍’이 하나님이 됩니다. 경전을 그렇게 해석하는 한 ‘안상홍’은 하나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잠새님께서 “무오류성이 폐기된 지가 언제인데..”라고 하셨는데, 잠새님의 입장은, 잠새님이 말하는 기독교의
진리는 수많은 해석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는 것은 오직 님의 믿
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믿는 근거는 더 이상 경전 자체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님이 그렇게 해석한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님의 믿음의 근거는 님이 그렇게 해석한 경전일 뿐입니다. 

 이런 결과 때문에 기성 교단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무오류”를 버리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
서 잠새님은 “무오류성”을 포기하지 않은 근본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는 이단입니다.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경전의 뜻이 곧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해석을 인
정하지 않습니다. 선중님 역시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면서도 ‘성경의 무오류성’을 버리지 않는 천주교회의 입장에
서 보자면 이단입니다.
 
3. 사정이 이러하다면, 여기서 우리가 함께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진리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 자체가 진리라고 말합니다. 즉, 그것은 ‘객관적’으로 진리라는 것입니
다.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근거와 추론의 필연적인 원리에 따
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재 우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인 근거와 사고의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서 누
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 보편적 진리로서의 종교적 진리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앞 선 항목의 논의는
종교적 진리가 주관적인 해석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기는 이렇게 해
석한다는 것 뿐입니다. 

 종교적 진리가 주관적인 해석에 의한 것이라는 이 간단한 사실에 동의한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한 것이 됩니다.
종교적 진리를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진리라고 자꾸만 우기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 이 문제와 관련한 일반적인 진리의 본질이나 인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지금 이것을 자세히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후에 꼭 필요하면 그 때 가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두 분 중
누구라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이에 관한 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4. 지금까지의 논의에 동의한다면,
 즉, 기독교 경전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그것은 각자가 해석하는 그대로의 것이다.” 라
는 것에 동의한다면, 문제는 왜 그렇게 해석하느냐 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며, 무엇을 근거로 그 해
석이 진리라고 주장하느냐 입니다.

 여기에 이르면 객관적인 증거는 더 이상 제시할 수 없고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는 이
래서 이것을 진리라고 인정한다.”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것을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 종교적
인 영역에서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진리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결국, 그것을 진리라고 하는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입니다. 기독교 신자
는 기독교의 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어떤 인간인가에 따라 신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가 어떤 인간
인가에 따라 신앙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특정한 해석에 대한 집단적인 추종은 그들의 인격적 구조에 공통점이 있
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프롬’의 사회심리학적 그리스도론‘은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5. 위의 결론에 두 분 모두 동의하신다면, 이제는 다른 주제로 논의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의 문제는 "나는 왜 기독교의 신을 필요로 하는가, 내가 믿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그
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근거로 그런 신이 있다고 믿는가, 기독교는 어떻게 해서 나의
진리가 되었는가, 나는 왜 기독교를 진리라고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 제 경우는 이 내용을 반대로 하면 됩
니다. "나는 왜 기독교의 신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신은 없다고 하는가....)

 이것은 개인적인 신앙고백일 수밖에 없습니다.

* 위의 5개 항에 대해 이의가 있으시면 지적해 주시고, 없으시면 동의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후 에는 저
부터 제 신앙 고백을 하겠습니다.
 
* 그러나, 개인적인 신앙고백으로 들어가기 전에 함께 논의해야 할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위의 5개 항에 대한 의견과 함께, 예수의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두 분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신앙문제를 논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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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거울처럼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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