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은 님의 답변이고 - 이후는 저의 반론입니다.
1. 예수의 선포에 대해
a) < 약간의 개념 차이인 듯 합니다. 예수의 선포 내용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실천할 것을 강조하
는 선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선포는 정말 협의의 선포 개념입니다. (중략) 이때에 예수가 실제로 실천에
대한 것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실제 삶에 대한 강조점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실제 예수는 많은 비유를 통해 약자를 향한 인간의 당연한 자세에 대한 강조들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
다. 물론 Q문서를 찾아보면 이것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으나. (중략) 결국 예수의 선포(협의)의 내용
속에 약자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선포(광의)는 동일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예수의 선포는 님도 인정하시다시피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신이 약속한
천국은 이 세계가 신의 진노로 심판을 받고 멸망한 이후에나 도래할 것입니다. "예수의 선포 내용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선포는 없습니다."
예수 가르침의 종말론적인 성격에 동의하신다면, 약자에 대한 나아가 원수에 대한 사랑의 실천 역시 종말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셔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은 이제 곧
이 세계가 종말을 고할 터이니 그들을 대적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곧 어둠 속에서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인도주의적 가르침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이 신의 심판에 의한 종말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다면 예수의 뜻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가 죽은 후에 보인 행태를 보면 예수가 무엇을
가르친 것인지가 분명해 집니다. 이제 곧 종말이 올 것이니,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b) <분명히 저는 christian이란 christ를 따르는 자들. 혹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설명을 했습니다. 그렇
다면 이때 christ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필요할 것이며 이렇게 해석된 예수의 모습이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때 제가 말씀드린 모습과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동시에 이것은 사랑의 실천과도
맞다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예수가 말한 천국이 사랑과 정의가 실현된 세계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러저러
한 확되된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c) <예수님의 파괴를 말씀하셨다고 하셨죠? 종말을 말씀하셨다고 하셨죠?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 - 파
괴 - 재창조라는 구조는 힌두교의 브라마 - 시바 - 비슈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세계의 많
은 신화 속에서는 종종 등장하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결국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이땅에 임하게 될)의 경우. 파
괴 이후의 재창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할 것이
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 이상적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라 새롭게 세워지는 세계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라
는 것입니다.”라는 님의 말씀에 대해 앞 부분에 동의를 해 드리더라도 뒷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님도 말씀
하셨듯이 예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는 한 "예수의 선포 내용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선포는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인적인 준비를 말했을 뿐입니다. “회개하라!”
2.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실천에 대해
< 이때 제가 말한 노력이라는 것은 성화 혹은 신화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화의 개념은
성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사실 성화는 개인적인 측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성화라는
측면에까지 나아갑니다. 감리교에서는 칭의가 구원의 문턱이었다면 성화는 구원을 위한 방에 들어왔다고 말합니
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완전)을 말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단어가 영화라는 단어입니다. 결국 사회 역시. 인간의
구원의 순차적인 이해와 같이 성화의 완전의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화된 인간들이 사는 사회. 이
것이 결국 성화된 사회가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이때 성화가 과연 인간의 노력의 결과물이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안됩니다. 단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통해 일
어난 것이 성화라는 것입니다.>
- 님이 무얼 믿고 있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위에 말씀하신 것이 기독교 경전을 근거로 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는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우리의 논점은 천국이 어떻게 해서 도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천국의 도래를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것이 성화든 신화든 영화든, 천국
은 인간의 노력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천국은 이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실현된 세상을 누가 바라지 않겠습니까?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습
니까?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노력을 하라고 하지 않았
습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제 곧 그런 나라가 임할 것이니 원수를 대적하지 말고,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홰개
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는 한, 우리가 할 일은 회개 하고 악인을 위해 기도하는 일 뿐입
니다.
* 제가 님에게 드렸던 애초의 질문은, 천국의 도래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님의 주장은 예수의 가르침을 근
거로 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은 예수의 가르침을 아무리 확대해도 없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가 무얼 하느냐와는 상관없이 이제 곧 천국이 도래할 것이니 회개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가르침의 종말론적인 성격과 예수로부터 민중종교니 인도주의 종교니 하는 따위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함
학부 2학년 때 종교심리학 하면서 읽기는 했었는데... ㅎㅎ
개혁이 가능할지의 부분은 제가 그 책을 다시 읽고 논하는 것이 수순일꺼 같습니다...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는 님의 글과 큰 차이는 없지만...
저는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냉소적인 시각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을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럼에도 종교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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