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앗싸~~ 한경직 최고....!!!!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펌] 앗싸~~ 한경직 최고....!!!!

쯧쯧쯧 1 2,655 2004.05.05 12:42
답변이 완료된 질문입니다.(2004-02-11 22:13 작성) 
 13년 강철믿음 jesuscide입니다.

한경직목사님관련해서 그분의 훌륭한 업적및 인간 됨됨이 그리고 내면에 잠잠히
흐르는 진리의 말씀으로 저는 들어 왔습니다.
이번 10만원권 지폐의 모델로 한경직 목사님을 추천하자고 까지 설교시간에
나왔을 정도 입니다.
그분의 알려지지 않은 행적 항간에는 민방위훈련을 2회 불참하신게 그분이 살아오신 일생중 가장큰 오점으로 알려질 정도인데 왜 다르게 보는 사람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re: 왜 한경직 목사님께 자꾸 태클을 거는가? 문제제기 
 greatfamous  (2004-02-12 08:55 작성)
 
 

 
 질문자 평 : 아 속아살아왔다. 개 구라 이단 목사구만. 우리목사님도 진실을 모르셨었군. 
 
 다음은 여러해 전 기독교 연합신문 8월 26일자 실린 내용의 요약입니다.


“성결교 소속 목사로 구성된 ‘한나라 선교회’ 이선교 목사가 선교회를 대표해서 한경직 목사등 당시 개신교 원로급 목사 23명을 ‘불의에 항거해야 할 사명을 지닌 목사들이 오히려 기도회를 통해 전두환 소장을 고무찬양하므로 군부만행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 시켰다’고 ‘반란방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였다”

위 이선교 목사님은 1942년 평양 태생으로 광주(光州)에서 고교 등 학교를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근래에 ‘다시 써야 할 한국교회사’(풀빛목회 발행)란 저서에서 일제 때부터 시작하여 1980 광주학살의 해까지 한국교회사가 얼마나 잘못 기술되었나 모조리 폭로했습니다.

xxxxxxx... 와 xxxxxx... 사이에 있는 내용 다음의 것은 거기에 실린 내용중 한경직 목사에 대한 부분만 간추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고 위 이선교 목사님 조차도 모르고 빠뜨린 게 있습니다.

이 한경직 목사는 1939년에 당시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이 교회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8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총회에서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耶蘇敎長老會聯盟)이란 기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 결성식 순서에서 한경직 목사는 성경봉독을 했는데 문제의 로마서 13장 1-7절을 낭독한 바 있습니다.


이 구절이 바로 유명한 ‘위에 있는 권세에 승복하라’는 구절입니다.

이때 결의문 채택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정신을 세계에 선양함은 황국 부동의 국시(國是)이다. 아등(我等)은 이에 더욱 더 단결을 공고히 하여 국민정신을 총동원하고 내선일체 전능력을 발휘해서 국책 수행에 협력하고 또 복음선전 사업을 통해서 장기 건설의 목적을 관철할 것을 기함.



그래서 교인들의 한(恨)많은 종살이의 생활이 드디어 막을 열게 된 것입니다.




한경직씨는 성경을 읽어놓고도 잘못 해석하신 것 같은데... 세상법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의 법이 먼저입니까?
세상권세 가진 자가 “절하라!”고 했다고 천조대신에 절하면 됩니까?

권선징악을 제대로 하는 권세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러면 위에 있는 권세에 승복하라고 했다고 이북사람들 김정일 명령에 무조건 다 복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데도 복종하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13장 3절 이후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3 :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로마서 13 :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 :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로마서 13 :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 :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위 사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몇 년전 한경직씨가 위 우상에 절한 것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사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주학살후 모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전두환을 축복한 것은 몇 년전 사과를 권유할 때 이 사실에 대하여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인 죄는 공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이게 확실하게 매듭지어질 때까지 감추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형제에게 죄를 지었으면 먼저 그 형제와 화해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받아주신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 1939년에 한경직 목사가 범한 죄에 대하여 출처가 되는 책은 “백은 최재화 목사의 생애”(1892년 출생)란 책의 193페이지입니다.

최재화 목사, 이분은 특이하게 중국에서 산동성에 있는 화북신학교를 졸업한(1926년) 분인데 해방과 6.25 사이의 혼란기에 장로교 총회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최재화 목사는 국내에서도 3.1운동 당시 등 독립운동(혜성단 조직과 활동, 무관학교생도모집)을 하다가 체포 당했는데 중국으로 탈출후에는 일제 때 가장 맹렬히 무장투쟁을 한 의열단의 핵심멤버(조선총독부 습격 사건, 밀양경찰서 습격 사건, 일본 이중교 폭탄 사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로 독립투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김원봉이 공산당 자금을 받겠다고 하자 손을 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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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가 이선교 목사님의 “다시 써야 할 한국교회사” 중에서 간추린 것.


환난의 현장에서 몸소 환난을 당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께 호소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환난을 해결하려는 믿음의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만 살기 위하여 양을 버리고 도망쳐온 한경직 목사외 다수의 목사들이 또 도망쳐 고난에 동참하는 종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1950년 6월 27일 종로1가 기독교서회 2층에서 교역자들 약 40여 명이 모였다.

장로교: 한경직, 김종대, 김린서, 강원용

감리교: 김유순, 박만춘

성결교: 김유연


이때 1946년 교회를 버리고 월남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는 “...이북에서 양들을 버리고 월남했으니 이제는 참회하는 의미에서도 우리는 양을 지키고 또한 수도를 지킬 순교적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의 말에 교역자들은 서울사수를 결의하였고 그 후 제일 먼저 도망친 분은 한경직 목사였다.

입으로야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1950년 10월 25일 장로교 한경직 목사, 선교사 아담스 목사, 권세열, 윤하영, 친일파 전필순 목사 등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오후 2시 서문밖교회에서 3,0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위의 교역자와 함께 감격의 예배를 드렸다.
한경직 목사가 사회를 보았고 황은균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1950년 11월 말경 평양시내 교회는 연합으로 부흥회를 열었다.
부흥회에 참석한 약 5,000여 명의 성도들은 첫 시간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세쨋날이 지나고 네쨋날이 돌아왔을 때 강사와 교역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영문을 모르고 아무리 기다려도 강사와 교역자들은 영영 나타나지를 않았다.

알고보니 미 고위 장성으로부터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말을 듣고 강사 이대영 목사와 다른 목사들이 부흥회를 마치지도 않고, 또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만 살기 위해서 양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1961년 반란을 일으킨지 35일만인 6월 21일, 반란정부를 강력히 반대하는 미국정부에게 반란정부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기독교대표 한경직 목사와 최두선, 김활란, 정일권 등이 미국에 도착 애원을 할 정도였다.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보위 종교담당 정진경 목사와 영락교회 한경직, 입법부 조향록 목사, 김지길 목사 등 20명의 기독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호화찬란하게 열렸다.





가장 혐오하는 목사는 가장 싫은 것은 아닌데 싫은 목사는....

한경직 목사이다.

왜냐면 시대가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일제때 선교사들과 섭섭치 않은 관계를 유지 했는지 미국유학의 기회를 잡은 것은 좋다.
그런데 미국구경까지 하고 돌아와 일제말 자기교회에서 전국 목사들이 모인 가운데 일황에 충성을 맹세했고 신사참배를 했다.

해방후 미군정과도 섭섭치 않는 관계를 유지하였고 미국의 원조를 받는 데도 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에 드럽게도 구역질 나게 목사들이 미국에서 도착한 구호물자로 아귀다툼을 벌여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엄청난 규탄을 받은 바도 있다.

얼마전 누군가 올린 교회사에도 알 수 있는 바 6.25 때 서울 사수를 주장하다 도망쳤고(도망 안친놈만 병신 된 거지!) 유엔군이 북진하자 평양에 까지 가서 집회하다가 중공군이 내려오자 시민들에게는 알려주지도 안하고 토낀 분이시다.

자유당 때에는 프린스턴 선배인 이승만 대통령과도 섭섭치 않는 관계를 유지하였고 당시 많은 지도자 목사들도 자유당 정권의 선거에 장로대통령이라고 김영삼대통령에게 그런 것같이 충성을 맹세하였다.
3.15때도 그랬고 지도자 목사들이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4.19가 내일 모래인데 3.15선거가 공명선거였다고 성명을 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5.16이 일어나자 한달도 안되어서인가 김활란 이대 총장, 정일권씨 등과 더불어 미국까지 가서 군사혁명의 정당성을 외치고 다녔고...

박정희 정권과도 섭섭치 않은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박정희씨 의리없이 조찬기도회인지 뭐인지에서 한경직 노인목사님이 박대통령을 ‘모세같은 지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열렬히 기도하는데 박정희씨가, 눈감고 고개 숙인게 아니라,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해인사를 방문한 박정희대통령이 “성철스님은 어데 계시나?” 하고 물으니 “백련암에 계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경내를 둘러본 박대통령이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경건하여야 할 장소에 이래서 되나?”하며 “‘금연’이라고 써붙이도록 해!” 하였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나중에 그말을 전하여 듣고 “나 여기 있는 줄 아나?” 하고 그런 정도면 만나봤어도 괜찮을 건데 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5.18 학살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호텔에서 모인 기도모임에서 “전두환을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정교분리로 민주투쟁 안한 것은 좋은데, 협조하는 것은 정교분리에 위배 되지 않은가?


가슴 아픈 것은 위 두(전자는 여기선 생략됨) 목사보다 더 존경할만한 분들과 더 혐오할만한 지도자들이 있는데 요새 사람들은 무식하여서 말해도 잘 모르니 말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 안타깝다.

얼마전에도 어느 누가 큰 소리 뻥뻥 치더니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올라가니 갑자기 딴전을 부리더라... 넘어 올려고 그런다. 빤하지 않은가? 어떤 계통 어떤 종류의 직업에서 벌어먹고 있는 인간들인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
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거짓증거,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에스겔 34:1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에스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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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례받고 싶은 목회자-한경직 목사

1998년 01월 14일
주례받고 싶은 목회자는... 기가연 설문조사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기가연, 소장:송길원 목사)는 최근 서울을 비롯 한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결혼을 앞둔 청년 2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내용을 분석,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주례를 받고 싶은 목회자는 누구인가』라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묻는 질문에 한경직 목사(영락교회 원로)가 27명(10.5%)으로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선호했으며, 최일도 목사(다일공동체) 15명,...........







RE:한경직 목사도 아직 회개 안 했나?

 
http://www.youngnak.net/han/kc002.jpg


얼마전 식사초대에 갔다가 한경직 목사 후손 (정확한 촌수는 안 밝히겠다)을 만났다.

소개해 주는 사람이 이 분은 영락교회 한목사님 xx되는 분이라면서 그를 아는 것이 마치 큰 광영인냥 우쭐댔다.

모인 사람 중 기독교인이 반은 되는 지라 자연스레 한목사 덕담이 오갔다.

차마 그 후손 앞에서 한목사의 비열함을 얘기하진 못하고 밥을 먹었는데 체하는 줄 알았다.

조자투의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알아낸 바로는 이 한경직이라는 인간은 참 가관이다.

그가 북한에서 목회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근데 왜 내려왔을까? 난 그게 참 궁금했다.

알고 보니 한목사는 상습적인 책임회피자였다.

북한에 김일성이가 권좌를 잡자 과거 친일행각이 두려워 신도들을 북한에 둔채 자기만 혼자 줄행랑쳤다. 물론 이유가 있었겠지. 핍박을 피한다고.

순교가 기독교 정신이지 핍박 피하는 게 기독교 정신인가?

그뿐만 아니란다, 국군이 6/25 때 평양 수복했을 때, 가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신도들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또, 6/25때, 순교의 자세로 서울을 사수하자며 떠들던 그가, 제일 먼저 신도들을 남겨두고 서울을 떴단다.

거기다가, 친일에다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권력의 시녀로 얼마나 충직히 기도하고 아부했던가?

이런 썩을 놈의 목사의 후손들이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우대 받는가?

그 썩을 놈의 노인네는 아직도 신도들에게 회개하라고 할 양심이 남아 있는가?





** 위 글 쓰신분께 죄송하지만 한경직이란 인간은 ‘사랑’만 강조하지 회개를 외치지는 않습네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은 방패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분리가 불가능합니다.



보너스

비교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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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중 순교한 번 주교 와 도망친 우두머리 목사 비교연구

* 미국인 번 주교님의 순교와 당시에도 한국의 지도급 목사였던 한경직 목사의 도망치는 것을 비교해 보자. 순교할 각오가 안됐으면 애초부터 주의 종으로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 번 " 주교님



* 다음은 월간조선 1999년 3월호 탄생 100주면 장면<민주당 정권 때 총리> 비사 209페이지의 한 대목이다.


(장익 주교-장면 전총리 3남): “한강 인도교를 건너고 있는데 패트릭 번 주교님(당시 주한 교황청 사절)께서 시내쪽으로 들어가시더군요. 저를 알아본 번 주교님이 ‘빨리 피난을 떠나거라. 나는 핍박받는 한국의 신자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하시는 겁니다”

美대사관은 패트릭 번 주교를 피신시키기 위해 수차 설득했으나 번 주교는 한사코 거부했다. 훗날 기록에 의하면 번 주교는 신자들과 함께 명동 주교회관을 지키다가 인민군에게 체포돼 중강진까지 죽음의 행진에 끌려갔다.

번 주교는 죽음의 행진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중강진 하창리의 외국인 수녀와 신부, 미군 등을 가두는 특별수용소에 수용됐다. 그러나 죽음의 행진 과정에서 심신이 크게 쇠약해져 수용된 지 며칠 후인 1950년 11월 25일 殉敎(순교)했다. 패트릭 번 주교의 생애를 기록한 ‘기억의 돋보기’는 그의 순교 장면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타는 듯한 신열에 그의 목은 바짝 말라 있었고, 온몸의 뼈와 근육에 통증이 심한 듯 몸을 비트는 그의 호흡은 힘들어 쉬쉬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신의주에서 험난한 개척생활을 하던 때, 맥아더 장군과의 회의, 이어서 다시 한국, 서울, 침공, 성당 문 앞에 나타난 인민군들...

그는 동료들이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힘들게 파놓은 자그마한 무덤에 묻혔다. 성공회의 쿠퍼 주교는 屍身(시신)을 묻을 장소까지 나르고 묻는 것을 도와주었다. 쿠퍼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 그의 영혼을 쉬게 하소서>

** 패트릭 번 주교는 미국인으로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923-1929, 1931-1937 한국 평양, 신의주 중강진 지방에서 활동. 1947 다시 로마교황청 사절로 한국에 돌아왔다.
 내용출처: http://cafe.daum.net/club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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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롱기루스 2004.05.05 12:54
미쳤구만. 10 만원권에 목사 쌍판을 올려?!?!!? 하여튼 상상을 초월하는 비상식 집단이야.. --;;
저는 기독교 뉴스로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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