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끝없는 정복욕을 불태웠던 제국과 함께 지난 2천년 가까이 인류 역사를 지배한 것은 기독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수는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으며, 성서는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이었다. 이 타협 없는 이분법과 유일신앙의 확장을 위해 기독교는 무려 1억 명에 이르는 원주민 학살에 앞장서고, 십자군전쟁과 마녀사냥 등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1945년 이집트 남부 나그함마디란 마을 뒷산 동굴에서 발견된 초대교회의 고문서들은 인류에게 피가 아닌 평화의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기대로 초미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 문서들이 땅에 묻힌 것은 서기 350~400년쯤이지만, 원본이 쓰여진 것은 성경의 복음서들과 비슷하거나 전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기득권 교회의 박해와 의도적인 무시로 이 고문서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한 소설과 영화 <다빈치코드>의 등장으로 최근 또다시 그 고문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영화 개봉 이후 출간된 관련 서적들만 10여권에 이른다. 나그함마디 문서엔 비밀복음서부터 우주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설명, 신화, 마법, 신비의식 등의 글들이 들어있다.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공개한 <유다복음>도 그 중 하나다.
비밀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와 <빌립 복음서>, <도마 복음서> 등이다. 이 글들을 영지주의 문서라고 한다. 최근 발간된 책 중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와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루비박스 펴냄), <유다의 사라진 금서>(내셔널지오그래픽 펴냄) 등이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책들은 이미 미국에서부터 엄청난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프린스턴대 종교학 교수인 일레인 페이절스가 쓴 <…영지주의>는 전미비평가협회상과 전미도서상을 휩쓸었으며, 노스캐롤라이나대 종교학부 학장인 바트 어만이 쓴 <성경 왜곡의 역사>(청림출판 펴냄)는 종교 서적으로는 드물게 지난 3월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영화 <다빈치코드>가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일반인의 이런 기류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영지란 그리스어로 ‘지식’을 뜻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대중이 아닌 측근에게 전한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나그함마디 문서엔 <다빈치코드>가 묘사한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인가 아닌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분명한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영지를 깨달은 사도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남성우월주의자였던 베드로와 정통파들에 밀려 막달라 마리아와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고 본다.
영지주의는 기독교 안의 논쟁은 증폭시키는 반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피로 불들인 이분법은 해체하고, 동양과 서양의 종교·사상의 간극을 현저히 좁히고 있다.
<다빈치코드>에서 “이건 인류의 믿음이 걸린 전쟁이야”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영지주의자들은 허식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그노시스 즉 직접적인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찾았다. 그래서 내면의 준비과정과 자아성찰, 그리고 변화를 강조한다. 그들은 자신과 인간의 본성 자체가 ‘삼라만상의 근본’이며, 근본적인 실재임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영지주의 교사 헤라클레온은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타인을 통해 구세주를 믿도록 인도된다, 그러나 성숙해진 뒤에는 더 이상 타인의 증언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진리 자체’와 자신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신과 인간 사이에 사제와 교회의 가치는 현저히 줄게 된다. 그것이 가톨릭 등 기존 교회가 영지주의에 대해 더욱 분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가 너무 형식화, 세속화하면서 수도 전통의 회복을 통해 영지를 얻으려는 노력도 계속돼 왔다. 또 성경의 어떤 근거도 없이 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마리아를 창녀로 선언한 것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1969년 이를 공식 철회했다. 또 지난해 선종한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천국은 현재의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고 했다.
가톨릭 도미니크수도회와 동방정교회 사제를 거친 철학박사인 <막달라…>의 저자 장 이브 글루는 영지주의 문서들에 대해 “정통 종교들이 지닌 이분법을 넘어 더 먼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준다”며 “그렇기에 이 복음서가 과연 다가올 3천년을 준비하게 적절한 복음서인지 자문해보게 된다”고 썼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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