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다시 본다 (뉴스엔조이)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기독교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다시 본다 (뉴스엔조이)

오디세이 0 3,133 2002.08.08 17:22
[기사] 기독교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다시 본다      
  
  
뉴스엔조이에 오랜만에...맘에 드는(^^) 기사가 실렸군요...
독자의견쓰기가 텅비어 있어.... 문득 웃음이 나네요...

기독교가 오늘날 이렇게 비대하게 거대해 질 수 있었던 큰 이유이겠지요... 소위 주류층...곧... 당대의 정권과 권력층에 빌붙어... 아양을 떨며,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 먹으며... 확장일로를 걸어 왔지요....

왜 기독교만 갖고 그러느냐?? 다른 종교는 마냥 깨끗하기만 했냐?? 라는 반문이 이어질 수 있겠지요....

다른 종교는 자신들이 해방이후...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들이야말로 이땅의 민주화 정착을 위해 힘을 썼다고 왜곡하지는 않지요.... 이러한 모든 내용을 감추고, 그야말로 까마귀가 백로인척 하지는 않지요...

집단 전체가 공식적으로...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역겨운 짓을 하지는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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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다시 본다> - 뉴스엔조이
일제부터 5.6공까지 불의한 정권에 기댄 자화상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목사는 16명. 3.1운동 당시 희생자 30%가 기독교인들이었다. 3.1운동은 기독교가 당당히 민족종교 반열에 올라선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준 3.1운동 이후 우리 기독교는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때로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성직자의 가면 뒤에서, 혹은 왜곡된 '정교 분리'라는 보호막 속에서 체제에 안주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해 신사참배를 지지하고 강제 징용에 적극 협조했던 정춘수(감리교) 박희도(감리교) 목사를 비롯해 교회사에 한국교회를 빛낸 인물로 기록된 많은 이들이 신앙적 변절 및 동포를 태평양 전쟁터로 내 몰았던 친일 인사들이다.


▲기념 교회가 설만큼 극도의 추앙을 받고 있는 양 목사는 대표적인 친일인사.


감리교를 빛낸 인물로 회자되는 양주삼 목사(1897-?).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솟은 웅장한 석조건물과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교회(나원용 목사)는 다름아닌 '양주삼 목사 기념교회'로 명명되고 있다.

그러나 기념 교회가 설만큼 극도의 추앙을 받고 있는 양 목사는 실제 대표적인 친일 기독교 인사다. 양 목사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찬성한 것은 물론 1938년 12월 국내 기독교를 대표해 일본의 이세신궁 가시하라신궁 등에 참배했으며, 일본의 태평양전쟁 찬양과 학도병 모집에 적극 나섰던 부끄러운 전력도 갖고 있다.

1943년 11월 8일 매일신보는 양 목사가 "드디어 반도 청년학도 제군에게도 무인으로서 출전할 기회가 주어졌음을 한없이 기뻐한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양 목사는 1941년 12월 20일 반도호텔에서 박희도 목사의 사회로 열린 '미,영 타도' 좌담회에서 참가해 일제 태평양 전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양 목사는 물론 일제말 감리교단의 정필순 정춘수 양주삼, 복음교단의 최태용 성결교 이명직, 장로교단의 한경직 홍택기 등 각 교단의 요직에 있었던 인물들 모두 우리 민족과 교회 앞에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당사자들이다.

특히 당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일제 신사참배 정책에 순종하기 위해 일본 신 '미스 기바라'의 이름으로 한강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주의 종으로 헌신을 맹세한 성직자로써는 생각할 수 없는 신앙적 회절이었다.  

또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교단 차원의 각종 행사는 1937년 이후 숱하게 이뤄졌다. 장로회는 1937~39년 동안 전승축하회 5백 94회,무운장구기도회 9천53회,국방헌금 1백58만여원,시국강연 1천3백여회 등을 개최해 일본을 도왔다.감리회도 교회 종 헌납과 황도문화관(皇道文化館) 개소 등으로 일제를 지원했다.

교파뿐 아니라 기독교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지원도 만만치 않았다. 시국강연회 강사로 신흥우 유형기 윤치호 박희도 차재명 등이 참가했다. 또 조선기독교연합회에도 정춘수 김종우 김우현 차재명 이명직 윤치호 양주삼 이동욱 등의 지도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친일잡지에도 논설을 게재했다.백낙준 신흥우 전필순 이용설 정춘수 정인과 양주삼 박희도 박인덕 최태용 등이 “조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본제국을 사랑하는 것이며”라든가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일본국에 바치도록 신에게 명령을 받고 있다”는 등의 글을 써 징병을 독려했다.기독교 여성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YWCA 유각경 총무를 비롯,박마리아 김활란 고황경 모윤숙 등이 징병제를 지지한 여성 인사들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친일 행각은 해방 후 등장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 직전인 1960년 2월 18일 한국기독교 대표들은 반도호텔에 모여 자유당 정권에 대한 절대 지지와 충성을 다짐했다.

기독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장로라는 이유 때문에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대책위원회까지 조직해 그를 도왔다. 1987년 종교 노벨상을 탄 한경직 목사는 신사참배에 이어 3.15 부정 선거까지 지지하는 반역사적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한경직 목사는 이어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때도 그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선봉에 서 있었다.  

한편 3.15 부정 선거의 주역인 이승만 이기붕(부통령) 최인규(내무부장관) 등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또 5공화국 때 안기부장을 지내며 전두환 정권의 폭정에 앞장섰던 장세동은 집사였고, 12·12쿠데타의 주역인 박준병은 권사 신분을 갖고 있었다. 또 박 정권 당시의 차지철 경호실장은 집사였으며, 당시 궁정동 술자리에 같이 있었던 김계원 비서실장은 장로였다. 따라서 기독교는 한국 근세사를 오욕으로 물들인 큰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독교 대표 한경직 목사, 김활란, 정일권 등은 미국을 방문해 박 정권을 인정해줄 것을 사정했다. (자료사진)


5.16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기독교 굴욕의 역사는 끊이지 않는다. 5.16 혁명 35일 만인 1960년 6월 21일 반란정부를 강력히 반대하는 미국정부에게 반란정부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기독교 대표인 한경직 목사와 최두선 김활란 정일권 등이 미국을 방문했다.

또 박 정권의 3선 개헌에도 기독교는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다. 1969년 9월 4일 김윤찬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 242명의 소위 보수권 인사들은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3선 개헌지지' 성명을 발표한 것.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영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며 "우리들 기독교인들은 개헌 문제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을 환영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박 정권의 유신개혁 과정에서 크게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통치권력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권력에 굴종했던 보수 진영은 교권을 소유하고 많은 교인들을 거느린 반면 진보측은 개인적 혹은 극히 일부 교단만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라는 큰 범주에서 볼 경우 일제의 신사참배와 전쟁 협력 및 이승만 정권에서 보여준 오욕과 굴욕적 처신이라는 비난을 벗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3.1 운동으로 민족 종교로 격상한 기독교가 전국민에게 민족적 배신감을 안겨준 사건은 1980년 8월 6일 소위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개최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 였다.

한경직 정진경 김준곤 김창인 조향록 김지길 지원상 강신명 김인득 신현균 이봉성 문만필 김용도 이경재 장성칠 등 23명의 저명한 기독교인들은 5.18 광주 항쟁에서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장본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했다.  
  
조찬예배 기도를 맡은 정진경 목사(성결교 전 총회장,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 위원장이 남북통일, 국가의 번영, 그리고 민주화 실현 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신 군부는 70분간 계속된 기도회를 KBS와 MBC를 통해 생중계한 것도 부족해 정오와 저녁 9시 두차례에 걸쳐 녹화중계를 내 보냈다. 하루 3차례 TV를 통해 중계되는 이 기도회는 전국방방곡곡에 전두환 정권의 집권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그리고 23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전 정권의 탄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하하는 나팔수였던 셈이다.  

전 정권의 나팔수였던 23명의 인사들 중 일부는 9년 뒤 진보적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대항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아서 결과적으로 다음 노태우 정권 유지에 기여한다.

이승만 장로에 이어 두 번째 장로 대통령인 김영삼 정권 출범 때도 기독교는 또 한번 추태를 반복한다.  1991년 12월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 한국장로회협의회 평신도단체협의회는 전국적으로 조직된 나라사랑협의회가 주최하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 지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전국에서 1000여명의 교역자들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김창인 목사(충현교회 원로목사)는 "신앙인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기도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일제치하의 친일행각에 이어 해방 후 각 정권 때마다 권력의 핵심 근처를 맴도는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반복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물론 전체 한국교회 차원의 과거청산과 회개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균 (2002-03-18 오후 3: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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