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한국기독교 내 여성신학자의 지위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기사] 한국기독교 내 여성신학자의 지위

(ㅡ.ㅡ) 0 2,152 2005.03.23 12:34
한국기독교 내 ‘여성신학자’의 지위 민중의소리 2005.3.23 (수)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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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인구의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나 종교계 내에서 ‘여성신학’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교회 내에서는 남성들에 의한 설교와 성서해석이 일반 신자들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신도의 주를 이루는 여성들은 결정과정과 결정권이 배제되어 왔다.

ⓒ 일다 이런 기독교 사회 내의 문제점에 대해 1993년부터 ‘여성신학’을 가르쳐온 강남순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소수의 남성들이 기득권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교육받아왔다. 한국기독교가 양적으론 성장했지만 비판적 사유가 부재하다”라고 문제 제기했다.

남편이 같은 학교에 재직한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에서 ‘가족상황’에 의한 차별행위라고 인정된 강남순 교수를 만나, 현재 한국 기독교 내에서 ‘여성신학자’가 받고 있는 성차별에 대해 더 깊이 들어봤다.

세상을 볼 수 있는 언어를 찾아 -여성신학을 하게 될 때 어떤 동기와 계기가 있었는지?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기르며 독일로 유학 갔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여자교수에게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독일에서 공부할 때까지도 페미니즘을 비학문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결혼 후 독일에서 공부하는데, 나의 학문적 열정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지는 그때 몰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분석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던 것이다. 결혼 후에 계속되는 배움의 과정에서 남편은 결혼 전과 연속선상에 있는데, 나는 불연속선 속에 있었다. 우울했고, 그 이전에 가졌던 학문적 열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학교에 다니는데 마음 한구석에 늘 회의가 있었다.” 그렇게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또 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수강신청 과목을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철학과 신학, 심리학 카테고리 안에서만 신청하는 강남순씨에게 한 교수가 ‘여성신학 세미나’가 있다고 추천했다. 강 교수는 그 때를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결혼 전후에 겪었던 딜레마가 개인적이 것이 아니었고, 인식을 못했지만 내가 다양한 차별을 받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배고팠던 것처럼 게걸스럽게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쓴 책을 다양하게 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를 강 교수는 “나를 분석하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언어를 찾는 해방감을 얻었던 때”라고 회고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텍스트라고 생각하며” 특히 그동안 비학문적이라고 생각했던 개인의 생애사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학문을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불붙은 학문적 집념으로 그 후 “좋은 이론은 좋은 운동이다”라고 생각하며 이론적 작업에 충실했다.

그런 연구업적을 토대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2년 동안 전임 계약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세계신학교육기관협의회 부회장 및 아시아 신학 기구 두곳에서 회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고국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할 것 같아 찾아온 모교에서 정작 성차별과 인격적 모함을 받아야 했다.

교회와 신학은 '자유'와 '해방'의 지표
넓혀야 ⓒ 일다 1년 반 동안 감신대 내의 성차별에 저항하고 복직투쟁을 해왔다. 물론 이번 진정에서 국가인권위가 재심사 및 구제조치를 권고하는 등의 성과는 있었지만, 그간 1년 이상 겪었을 내면적 고통은 꽤 컸을 것이다.

“처음 학교에서 시위를 할 때 며칠 동안은 곤혹스러웠다. 마치 재임용 탈락이라는 개인적인 문제로 사람들 앞에 나가서 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동안 동료로 재직했던 교수들이‘내가 여기서있음에도 불구하고’나를 보지 않고 옆으로 지나갈 때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제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무수한 소수자가 이렇게 서 있었겠구나. 그리고 그동안 나는 펜으로 싸우겠다고 늘 결심해왔는데, 몸으로 싸우는 것과 펜으로 싸우는 것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교수라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사적 관계 혹은 사적인 어떤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었다고. 학교 내에서 강 교수는 “임용탈락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차별 당했다고 세상에 알림으로써 감신대의 평화를 깬 사람”으로,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인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등의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내면적 갈등은…. 절망감을 많이 느꼈다. 인간은 개인사 속에서 무수한 딜레마를 가지고 끊임없이 씨름한다. 공대위 학생들에게 나는 이런 내면을 다 털어놓았다. 나는 우리 사회 특혜층이라고 하면 할 수 있는 박사고, 교수고, 내 전문성을 인정 받는데도 이런 차별을 받는데 그동안 힘없는 여성들은 얼마나 가슴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살았을까 생각했다. 여성들이 가슴앓이 하면서 속으로 삭였을 눈물과 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느껴지지 않았을 때는 몇 번이고 다 털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연대해 준 여성들과 여학생 제자들이 강 교수에게 힘을 북돋는 메일을 보내고,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것이 강교수로 하여금“몸으로 싸운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고,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돌아보게 했다.

강남순 교수는 “페미니즘을 배운다는 건 마음에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다. 즉 안정적인 삶의 자리에서 근원적인 물음을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나치 전범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본 뒤 쓴 한나 아렌트의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는 말에 철저히 공감하며, “무수히 문제 제기하는 사람으로서 투쟁이 다른 여성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한” 앞으로도 그 자리에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 그간 학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과 신도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미국에서 1848년 전국여권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여성독립선언서에 채택했다. 이때 100명이 함께 했는데, 여성이 68명, 남성 32명이 사인했다. 이 과정에서 탄압이 거세지니까 많은 여성들이 떨어져 나갔다. 이처럼 우리 공대위에서도 처음 참여했던 사람들도 차츰 떨어져 나가고, 주변의 비난과 비판이 있었다. 외부적으로 나는 아주 못된 투사로 묘사되고 있다. 가족 이기주의자이고, 자기 욕심이 많다는 둥 주홍글씨를 달고 있다. 나는 내가 서있는 것이 앞으로 여성들이 종교 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에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적 의미가 있다.

나는 교회와 신학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지표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한다. 나의 줄기찬 관심은 일상과 제도적인 삶에서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다.” “나의 복직은 한국 기독교 개혁과 맞물려” - 국가인권위에서 총장에게 구제조치 이행을 권고했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 것 같은가?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나와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 문제를 언제나 남편이나 동료교수들을 통해 들어야만 했다. 아무도 나와 얘기하지 않았다. 총장이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보직교수들과 의논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려운 지점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예전에 강 교수의 재임용탈락 당시 총장이었던 김득중 전 감신대 총장과 공대위와의 비공개 면담 시 공대위 측은 “(이름 거론하며) 두 교수가 강남순 교수가 들어오면 옷 벗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크리스천 투데이, 2004년 7월 19일) 이런 소문은 당시 대학 내에 파다했고, 이것은 대학 내 남성 교수들이 여성신학자를 “불편해 했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강남순 교수의 복직은 그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개별인 개인의 복직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종교계에서 여성지식인 역할과 역사적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비판적 사유의 부재”로 “여성들을 끊임없이 부차적 존재로만 규정하는 가부장제적인” 기독교 내 개혁과도 맞물려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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