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어쩌다 ‘수구’됐나

한국기독교 어쩌다 ‘수구’됐나

한국기독교 어쩌다 ‘수구’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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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기총 등이 연 '구국기도회'는 "국보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은 간첩뿐입니다'라고 적힌 무대 위에서 치러졌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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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극우단체, 국보법 사수 대규모 군중집회 “한국교회의 문제를 너무 조심스럽게 다뤘다” [한겨레 사설]기득권 위한 ‘구국기도회’ <조선일보>와 기독교의 위험하고 이상한 밀월/구교형



[분석] 과거 “권력에 복종” 외치다 ‘반정부데모’이끈 미스테리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마수에 적화되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존경하는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4일 서울광장 구국기도회에서 김한식 목사)

최근 한국방송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잇단 구국기도회를 통해 친미 사대주의 등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념의 수구성을 넘어서 이제 상식의 눈높이마저 훌쩍 뛰어넘고 있다. 도대체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원래 수구적이었을까, 아니면 최근 그렇게 달라진 것일까. 한국 기독교 보수교단의 수구적 행태는 많이 드러났지만, 정작 그 원인과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 뿌리론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가지 접근법이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건 뿌리론. 120년 전 이 땅에 이식된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들고온 미국 기독교이며, 미국 개신교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어서 한국 기독교 역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특히 남한의 기독교는 평양 중심의 이른바 ‘서북파’ 기독교인들에 의해 성장했다. 서울의 영락교회나 충현교회 등 굵직굵직한 교회들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기독교의 보수성은 역사적으로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눈에 띄게 강화된다. 서북파 기독교인들은 지주계급과 함께 북한 정권의 탄압과 박해를 받은 탓에,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투철한 친미·반공 의식으로 무장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여기서 미국의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함께 치렀을 뿐 아니라, 전쟁 뒤 교회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당장 먹을 게 없는 남한 민중에게 미국은 온갖 물자를 공급했다. 그리고 그 공급 통로는 다름 아닌 교회였다. 배고픈 이들은 교회에 가서 주린 배를 채웠고, 그들의 머릿속엔 미국이 ‘은혜의 나라’로 각인됐다. 박정신 숭실대 교수(기독교학)는 “한국 기독교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친미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또 ‘예수 잘 믿으면 물질적으로 축복받는다’는 기복주의와 거기에 기반한 물직적 성장주의를 굳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눈길을 끄는 새로운 현상은 이들에게 반공보다 친미가 이념적 기반으로 더욱 강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북한 용천에서 대형 폭발참사가 났을 때 보수적 기독교 교회와 단체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누구보다 발빠른 대북지원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등, 친미적 성향은 변하지 않거나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목사)은 “6·15정상회담 등으로 북에 대한 생소함이 줄어들면서 한국 기독교계가 북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접근을 늘리고 있지만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을 철저히 분리해 이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댓거리하는 것처럼 비치고 젊은이들 사이에 반미 정서가 확산되면서 한국 기독교의 친미적 성향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부역 성장론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기반은 ‘정교분리 원칙’이다. 정치와 종교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70~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들이대며 ‘예수의 이름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이들은 겉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외치면서도 정작 뒤로는 ‘정교야합’을 일삼았다고 개혁적 기독교인들은 지적한다.

선교 120년 만에 눈부시게 교세를 성장한 배경에도 바로 이런 수구성이 자리잡고 있다. 서북파 기독교인들은 같은 기독교인인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등 자유당 정권 독재자들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박정희 이후 계속된 군사독재정권 때는 유명한 ‘대통령 각하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자주 열었다. 독재자들을 축복해 그들에게 종교적 권위와 정통성을 부여해준 것이다. 70년대 일부 기독교인들이 유신헌법 반대 성명을 내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신헌법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가 독재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 건 아니다. 이승만과 이기붕을 위해 기도했을 땐, 군대에 군목을 파견하는 제도를 얻었다.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주도한 김준곤 목사(대학생선교회 총재)는 얼마 뒤 서울시로부터 덕수궁 뒤편의 시유지를 헐값에 불하받아 대학생선교회 건물을 지었다는 의혹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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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장에는 "국가보안법 사수, 한미동맹 강화"라고 적힌 대형 풍선이 두개 행사 줄곧 시청광장 하늘에 떠 있었다. 김순배 기자

물질적 거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개혁적 인터넷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의 김종희 대표는 “한국 기독교는 박정희정권의 성장주의와 맞물려 현세의 구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신도로 빨아들여 급속하게 성장했고, 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 지배문화는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목사의 강력한 교회권력을 유지하는 지배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은 “박정희정권 이후 이른바 ‘TK’ 지역 출신 목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상대적으로 ‘복음률’이 낮은 영남지역 목사들이 교계 안에서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당부한 한 기독교계 대학 교수는 “개신교 목사들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절대권력의 성채를 쌓아올렸다. 대신 그들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들의 사고와 인식 수준은 멀게는 한국전쟁 전후, 가깝게는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머무는 지체증세를 앓게 됐다”며 “어쩌면 그들은 진정으로 ‘한국사회가 빨갱이 지옥으로 변해 기독교를 탄압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 의식에서 행동으로

한국 기독교는 출발부터 보수적이었고, 한국전쟁과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빠르게 수구화됐지만, 이들이 지금처럼 ‘왕성한’ 대외적 정치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초대형 기도회 형식의 정권반대 장외집회는 김대중정부 중반 이후부터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이 교회 안에만 머물 수 없도록 교회 안팎이 변한 탓이다.

자신들의 전통적 우호세력이었던 권위주의 정권이 잇달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이들은 무엇보다 심리적 상실감에 빠졌다. 개혁적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의 양희송 편집장은 “교계 지도자들이 자주 정부를 비판하며 정치에 개입하려고 하고, 수구적 태도를 강하게 나타내는 건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상실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과잉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와의 유대 단절은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현실 위기의 문제다. 그리고 이들에게 현실적 위기는 교회 밖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 안의 위기다. 양희송 편집장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이해가 걸리거나 목사의 도덕성과 관련한 사안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이들이 자기 교회의 문제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계에서는 대형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하는 일이 최근 눈에 띄게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목사 한 사람의 말에 수만, 수십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이제 흘러간 시대의 향수가 되어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는 “권위주의가 대형 교회 안에서도 조금씩 깨어져 가면서 대형교회 목사들의 신도들에 대한 영향력도 예전 같지 못하다”며 “평신도들로부터 교회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과 의사결정 구조의 수평성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어 목사들의 위기감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빈번한 반정부 집회의 이면에는 외부와 전선을 형성해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언론과의 관계에도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구 사무국장은 “월간조선의 조갑제 같은 사람들이 ‘이 시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한국 기독교’라고 부추기고 대형 교회 목사들과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목사들이 ‘이제 한국사회를 살려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며 “양쪽에 정치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되면서 비기독교 수구세력과 함께 연합전선이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행동으로 표출한 위기감이 갈수록 상식에서 일탈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슬프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면 할수록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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