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목사가 독립운동유공자로 둔갑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친일목사가 독립운동유공자로 둔갑

꽹과리 0 2,103 2004.05.05 22:25
독립유공자 이승길 목사, 친일행적 논란
"교회에 일장기 게양했다"…"변함 없이 독립운동 외길 걸으신 분"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교계 원로 고(故) 이승길(1887∼1965) 목사의 과거 행적에 대해 친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승길 목사는 일제시대인 1936년 장로교 총회장을 지냈으며 평양노회, 황동노회, 황남노회에서 노회장을 수차례 역임한 거물 인사다.

사건의 발단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지난 2월 27일 국가보훈처에 이승길 목사를 비롯해 20인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재심을 요청한 것에서 시작했다. 연구소가 보훈처에 보낸 공문에는 20인의 친일행각을 담은 자세한 자료가 덧붙여졌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는 3월 2일 방영된 'PD수첩' 프로그램을 통해 친일파가 애국지사로 둔갑한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독립유공자 재심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친일파는 살아있다3'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이날 프로그램은 "역사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선과 악이 뒤바뀌는 사례가 많다"며 "잘못된 역사를 덮어두면 다시 유사한 불행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이어 문제는 더욱 커져갔다. <인천일보>는 3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4건의 기사를 통해 이승길 목사의 친일 행각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승길 목사의 아들이 인천시가 주관한 3·1절 행사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사건이 문제의 시초였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변신했다(?)

총회장과 노회장을 수 차례 역임하며 교계의 '큰 어른'으로 불렸던 이승길 목사의 친일행적 논란에 대해 유가족들은 "선친은 일관되게 항일운동을 펼치신 분"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이들이 이승길 목사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소위 '정방산 사건'.

정방산 사건은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황해도 황주에서 일어난 기독교지도자 탄압 사건으로, 유가족들은 "선친은 동료 목사들과 더불어 정방산에 모여 기도하고 시국을 의논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다가 해방과 더불어 출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길 목사가 1946년 1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김구 선생 등과 찍은 사진 역시 유가족들이 내세우는 증거 중 하나다. 이들은 "선친이 독립군 군자금 모금에 참여하다 문제가 된 소위 '안명근 사건' 때문에 7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김구 선생을 알았다"며 "선친이 정말 변절을 했다면 김구 선생님이 해방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같이 사진을 찍을 리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 외에 유가족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이 목사가 목회하던 황해북도 송림시(과거에는 '겸이포'로 불림)에서 발간한 「송림시지」, 이승길 목사의 자서전 「나의 갈 길 다가도록」, 황해도 지역 교회 역사를 다룬 「황해도교회사」 등이 있다. 이 저서들의 내용 중 유가족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대부분 '정방산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관되게 항일운동 펼친 분"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이승길 목사의 친일행적 역시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연구소는 보훈처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총독부경무국이 편찬한 「조선치안상황」 등을 이승길 목사의 친일행적 근거로 제시했다.

1937년 1월 19일자 <조선일보>는 "조선장로회총회장 이승길 목사가 숭실학교 학부형회를 소집해 경영권을 인수하려다 실패했다"며 이를 "숭실중학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던 이승길 일파(一派)의 기도가 좌절된"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이 발행한 자료인 「조선치안상황」 399쪽에는 이승길 목사의 친일행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자료에는 "북장로파 주최 한일교역자간담회가 평남 평양철도호텔에서 개최된 바, 여기에서 이승길 이하 3명은 한일교회일체운동을 실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라고 적혀있다.

일제시대 기독인들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 준 신사참배 문제를 기록한 자료에도 이승길 목사의 이름은 발견된다. 박용규 교수가 편찬한 「평양노회사」는 신사참배를 가결한 27회 총회 풍경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신사참배안을 편법적으로 가결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위량(W. M. Blair) 선교사에게 이승길 목사는 "선교사 형님들은 말하지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일갈한다.

신사참배 앞장서서 동참했다

1938년 8월 18일 일본에서 발행된 기독교 계통 신문 <복음신보>에 실린 기사는 이승길 목사의 구체적인 친일행각을 명시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기사는 이승길 목사가 친일문인으로 알려진 오문환 씨 등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후 쓰여진 것이다. 큼직한 이 목사의 사진과 함께 '조선야소교겸이포장로회 목사 이승길 씨'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기사에서 이 목사는 자신의 친일운동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충분히 성공하리라 생각했습니까."
"허허허, 꿈이었습니다. 큰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열심히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명근에게 독립자금을 준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7년 동안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의 회고치고는 의외의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승길 목사 실체를 의심하게 만들만큼 구체적이다.

"군(기사에서 군(君)은 이승길 목사를 지칭)은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동양에서의 조선, 특히 교회 사명을 자각했다. (…) 내지(內地·일본을 지칭)와 제휴하여 동양에서의 민족과 기독교인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어리석음을 알았다. 군은 지금 내선융화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에 국기게양대를 세운 것도 군이 최초였다. 겸이포 거주 내지인(일본인을 지칭) 출정장병 가족의 위문, 유족에 대한 의연금을 모아 이것을 호별로 주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군이다. (…) 내지와의 속마음의 융화야말로 민족 장래의 향상을 약속한다는 것을 간취하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군의 민족에게(한국인을 뜻한다) 가장 충성하는 소이로 알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일장기를 걸어놓고 이에 배례하며, 지역의 일본군인 가족을 위문하는 등의 행동은 부인하기 어려운 친일행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제가 지배 말기 내세운 '내선일체'에 높은 가치를 매겼다는 부분도 충격적이다.

친일행각 자세히 묘사한 <복음신보> 뒤늦게 발견

이승길 목사가 신사참배 가결 이후 '신사참배를 전제로 한 변질된 신학교'로 평가받는 '평양신학교'에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친일행적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이 목사는 1941년 4월 정식 개교한 평양신학교의 설립대표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전임강사를 맡기도 했다.

평양신학교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각종 역사서에 골고루 나타난다. 이찬영 목사는 본인의 저서 「한국기독교회사총람」 518페이지에서 "1939년 이후의 평양신학교는 우리 법통사에서 제거되어야 마땅한 역사의 한 편(片)으로 남을 것뿐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장합동 신학교인 총신대가 펴낸 「총신대학교백년사」 역시 평양신학교를 "이승길 오문환 김선환 등의 친일 세력이 교권을 장악하고 세운 학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장통합 교단 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김인수 교수가 쓴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도 이승길 목사를 '친일파 목사'로 규정하고 "이 목사 주도로 신사참배 결의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예장고신의 최덕성 교수가 쓴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은 평양신학교에 대해 "한국교회의 배교와 변절의 배후에는 교회를 분탕질하고 신앙과 민족혼을 일제에 갖다 바친 황민화기관"으로 혹평하고 있다.

보훈처 결정 따라 진실 밝혀질 듯

이승길 목사가 '을사조약 반대 투쟁' '신민회 활동' '안명근 사건' '군자금 모금' 등에 깊이 관여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해방 후 월남하여 옹진군에 '토마스 전도단'을 조직하고 여러 교회를 설립한 교계의 '어른'으로 명성을 떨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총회장직에 오른 1936년부터 친일로 돌아섰다는 학자들의 주장과 여러 증거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공은 국가보훈처로 넘어갔다. 보훈처는 1996년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1년 정도의 심사 기간을 거친 후 5명의 훈장 서훈을 취소한 일이 있다. 이들의 친일행각이 구체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현재 이승길 목사가 인천에 세운 교회는 그의 손자가 담임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상당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이승길 목사의 아들 이아무개 장로는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광복회 인천지부장 자리를 사임했다.

보훈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자료와 각종 사료들을 종합해 이승길 목사를 비롯한 20명의 친일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사료들을 취합하고 있다. 이들의 공방전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단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억울하게 친일파로 몰린 한 목회자의 결백을 드러낼 계기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양정지건 nunmul25@newsnjo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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