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역촌동 산31.서대문시립병원 뒤쪽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움막촌은 월드컵을 치르는 서울 하늘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얼기설기 판자로 지은 1평 남짓한 쪽방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말기 결핵환자들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 결핵촌이 사회에 알려진 것은 지난 1월 중순 갑작스럽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이곳 결핵환자들 11명이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는 한 민간업자가 놓은 주사를 맞은 뒤 1명이 숨지고 7명이 병원에 입원,경찰이 수사에 나섬으로써 사회의 관심이 이곳에 쏠린 것.

40여년전부터 생긴 이 결핵환자촌은 시립병원에서 결핵치료를 받은 무의탁 환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눌러앉으며 형성됐다.100여 가구에 현재 3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근의 베데스다교회가 결핵환자촌내 환자들과 시립병원 입원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을 꼬불꼬불 돌아 결핵환자촌에 오르면 정말 기구한 인생,기구한 삶들과 만난다.결핵이란 질병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처절하게 피폐케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산소통을 벗고 바깥 공기를 마음껏 쐬는 것이 소원이라는 나수남씨(55)는 커다란 산소통 2개를 1평짜리 방안에 들여놓고 지낸다.20년간 앓은 결핵으로 폐의 3분의 2를 절단,수시로 산소를 공급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여기에 여러 합병증이 더해 약값에다 한달 산소값 40만원,식비 등 최소 80만원은 필요하다.그러나 정부가 지원해주는 생계비 26만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일정기간 병원에서 생활한 뒤 갈곳이 없어 이곳에 둥지를 튼 환자들은 생존 자체에 몸부림치고 있다.생활고에 약값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을 옆에서 6개월에서 1년만 도와주면 보통 완치된다.그러나 이런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특히 결핵은 영양실조로 인한 원인이 커서 잘 먹고 좋은 약을 쓰면 감기만큼 쉽게 치료할 수 있게 돼 진정 도움이 절실하다.

베데스다교회를 중심으로 이들의 생계를 33년간 도와온 이XX 장로(67)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전 재산을 출연해 ‘사랑의 보금자리’란 사회복지법인을 탄생시켰다.그리고 결핵환자뿐 아니라 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어려운 환자들,결식아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앞으로 북한돕기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돈이 없을 땐 사채까지 빌려 결핵환자 생계비를 지원해온 공로로 국민포장,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기도 한 이장로는 “전 국민 1만원 회원운동을 펼쳐 이 나라에서 결핵을 완전히 퇴치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웃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법인의 꿈”이라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며 300만명 정도의 결핵환자가 있는 북한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장로가 도운 결핵환자는 무려 9만8000여명.자신 역시 결핵환자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과거의 처절했던 경험이 더욱 이 헌신에 매달리게 만들고 있다.덤으로 얻은 삶과 재산을 주님께 드려 더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역촌동 산등성이 움막집에서 사랑의 보금자리가 지급하는 생계비와 생필품으로 지내고 있는 김승한씨(57)는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사랑의 보금자리’ 전도사님들과 이장로님의 헌신이 삶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했다”며 “특히 베데스다교회에서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다”고 말했다.

결핵환자촌 주민들은 겨울을 가장 싫어한다.매섭게 부는 바람과 추운 날씨도 문제지만 연탄을 사용하는 난방비도 만만찮기 때문이다.이곳 300여명의 주민들과 시립병원 200여명의 환자들은 곧 다가올 봄소식과 함께 ‘사랑의 보금자리’가 펼치는 1만원 모금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우리 사회가 좀더 따뜻해지고 살맛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했다(02-385-2025).

/moojeong@kmib.co.kr 김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