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놈들 자기네 비리가 더 큰건 감추고..... 총선 공명선거 하자고???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목사놈들 자기네 비리가 더 큰건 감추고..... 총선 공명선거 하자고???

동포 1 2,584 2004.03.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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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즈음한 총회장 담화문

‘제17대 총선 한국교회 공명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제88회기를 맞아 ‘보혜사 성령이여 깨끗케 하소서 - 바른 교회, 바른생활, 바른 나라’라는 주제를 정하고 그 실천을 위해,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월 27일 총회를 섬기는 일꾼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통해 간절히 기도한 바 있으며, 그 자리에서 ‘바른 나라’ 구현을 위한 실천의 일환으로 ‘제17대 총선 한국교회 공명선거 운동’을 총회적인 역량을 기울여 전개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공명선거는 민주주의 구현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선거는 각종 불법 탈법으로 얼룩졌으며, 이러한 선거풍토를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면서, ‘제17대 총선 한국교회 공명 선거 운동’를 통해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공정하고 합법적인 선거풍토가 정착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기를 다짐하면서 아래의 몇 가지를 전국 교회와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모든 민주 시민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1. 이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공명선거가 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국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은 이번 선거가 공명선거가 되고, 우리 교회가 이를 위한 파수꾼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선거 때까지 다음과 같은 기도 제목으로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직하고 유능한 일꾼들이 선출되게 하소서.
둘째, 모든 유권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선거가 되게 하소서.
셋째, 금품수수 향응제공 등이 근절된 맑고 깨끗한 선거가 되게 하소서.
넷째, 법에 따른 공정하고 합법적인 선거가 되게 하소서.
다섯째, 거짓 흑색 정보가 아닌, 진실되고 투명한 정보에 의한 선거가 되게 하소서.
여섯째, 지연,학연,혈연 보다는 정책과 자질로 선택하는 선거가 되게 하소서.

2. 이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빠짐없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거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실천의 장입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선거를 통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은 모든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이번 공명선거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불법 부정 선거를 감시 감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 여러분들이 총회의 공명선거운동에 참여하여, 선거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불법 타락선거가 다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 총회와 산하 전국 노회와 지교회, 그리고 남녀 선교회를 비롯한 모든 산하 단체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운동에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4. 총회와 산하 교회가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위해서도 엄중한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이여 깨끗케 하소서’란 제88회기 총회 주제에 걸맞도록,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먼저 우리들 자신의 부끄러운 잘못들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생활을 실천하고, 아울러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여 바른 교회를 정립해야 합니다. 이번 공명선거 운동을 통해 우리 자신의 개혁도 실천한다는 각오로 총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공명선거 운동은 어떤 특정한 정파나 세력을 편들거나 교회가 정치 세력화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감시함으로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선포되고 올바른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들의 의식에 뿌리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전국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 5:13상)

2004년 2월 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김순권







그러나...... 실상은?



호텔에 차린 선거 대책 캠프

금권선거 징후가 최초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5월에 있던 전국 장로교역자 기도회였다. 우리는 라마다 호텔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 많은 목회자와 장로들이 당회장 K 목사에게 인도되었다. 흰 봉투가 준비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평균 10만원이 든 봉투가 전달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일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대책팀인 우리들이 보는 자리에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뒤에 확인된 것이지만 모든 교역자나 장로가 돈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주 드물게는 단호히 제의를 거절, 다시는 K 목사 주변을 어슬렁거리지 않은 총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분들이 너무 적게 확인이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기는 했지만, 이 일로 나는 생전 처음 내노라 하는 호텔의 특실을 들어가 보았고 근사한 식사도 해보았다. 하루 밤에 40-50만원짜리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때 처음 보았다.

약 한 달 뒤에 있었던 전국 목회자 수련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대책팀은 대회 일정보다 먼저 들어가 역시 캠프를 차리고 많은 분들이 당회장 K 목사를 만나도록 도왔다.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른다. 나는 교회 내 상황실만을 지켰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 수련회에서는 두 후보의 공식적인 정견 발표가 있었다. 모든 교역자는 수련회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의 어떤 위락 시설로 총동원되었다. 내 생각으론 적어도 이 때까지만 해도 총회 선관위는 그래도 제목소리를 낸 것 같다. 양 진영에 경고도 했고, 그 경고를 지키기 위해 후보자들도 조심을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총회 선관위는 선거 막판에 거의 손을 놓는 듯했다. 우리 팀장의 말로는 선관위 위원들의 공정성이 부분적으로나마 훼손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수련회 이후는 잠시 소강 상태를 이루었다.

총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다시 선거 대책팀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교회 내 선거 대책팀과 전국을 커버하는 선대위팀이 거의 한 달을 호텔에 캠프를 치고 전국의 표 관리에 들어갔던 것이다. 호텔도 노출을 피하기 위하여 계속 옮겨 다녔다. 그 한 달 동안을 우리 대책팀 목사들은 돌아가면서 호텔 근무(?)를 했다. 어쩌다 돈을 지불할 기회가 있었던 한 동료 교역자는, 자신이 지불한 한 주 호텔 사용료가 1,500만원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혀를 찼다

매우 검소하기로 유명한 목사였으니 그런 반응이 당연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귀를 의심했다. 혹시 두 주간 동안의 호텔 사용료를 한 주로 잘못 본 것은 아니었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한 “NO!"였다. 스스로 상황실 근무를 자청했기 때문에 그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진행되었는지는 소상히 알지 못한다. 양심적으로 매우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총대들을 위한 숙소 확보


드디어 총회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 대책팀에게는 총회 전 중요한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총회가 모이는 교회 주변의 호텔과 장급 여관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우리 쪽을 지지하는 목사나 총대 후보들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어렵게 필요한 만큼의 방을 확보했다.
때문에 그 근방의 호텔과 여관 위치에는 도가 트이게 되었다.
물론 예약은 가명으로 이루어졌다.

총회 전날 우리 전체 남자 교역자는 라마다 호텔에 집결했다.
휴일을 반납한 모든 남자 교역자들이 약속된 장소로 모인 것은 오후 1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약속된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노출을 피하기 위하여 호텔의 회의실 하나를 비밀스럽게 빌려 놓았던 것이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우리는 그 방으로 인도되었다. 이유가 설명되었다.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이하 교갱협)이란 단체에서 현장을 덮치기 위하여 주변 호텔을 돈다는 첩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임무는 비교적 단순했다. 우리 선거 대책팀이 한 달전 미리 예약한 호텔과 장급 여관에 이미 배정된 총대들을 무사히 안내하는 것이었다.
일을 할당받은 교역자들은 약도와 전화번호와 지불해야 할 돈, 그리고 행동 지침을 숙지한 후 각자의 여관과 호텔로 행했다.

우리의 역할은 선관위나 교갱협에 들키지 않고 총대들을 숙소에 잘 모시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들이었다.

지방에서 오는 총대들을 맡은 교역자들은 매우 늦게 귀가를 했다.
나는 비교적 시설이 좋은 노보텔을 맡았다. 우리의 역할이 정해진 후 나는 몇 분 교역자와 꾐(?)에 빠져 당시 한참 뜨고 있던 영화 ■에어포스 원■을 도둑질하듯 보고 왔다. 학창 시절의 연소자불가 영화를 보듯 짜릿했다. 대책팀장에게 핸드폰 꺼놓고 어디 갔었느냐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예정된 투숙객들을 기다리며 우리는 어쩌다 이런 총회 선거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신세타령으로 시간을 죽였다. 끝내 투숙하지 않은 분(미도착자)의 방을 독차지하고 오지 않은 잠을 청했다.


"20 받았는데 그쪽은 얼마 받았어?”

드디어 총회 날이 밝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당회장 K 목사의 숙소가 있는 르네상스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옮기고 나니 지난밤 늦게까지 숙소를 돌면서 총대들에게 인사를 했고, 총알(선거자금)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쯤에서 이점 또한 분명히 해 두자.
선거 대책팀원 중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아무도 이 일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
모두가 많은 양심의 괴로움을 느끼며 마지못해 이 일을 했다.
이일로 즐거운(?)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부목사에게 아무런 고뇌도 없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교회 내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맡은 B 목사와 유초등부 및 중고등부 교육을 총괄하는 Y 목사, 그리고 검소하고 성실하기로 유명한 J 목사는 정말 많이 괴로워했다. B 목사는 양심 선언이라도 하고 자기의 시민권이 있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다른 M 목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총회 기간 중 매우 민망한 일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이미 증경 노회장을 지냈거나 머리가 희끗해진 분들이 우리 젊은 교역자들과 옳지 않은 일로 귓속말을 주고받거나, 총대들을 으슥한 곳에서 만나 돈을 전달하거나, 할당된 총대들을 인솔하고 오셔서 돈을 받아 가는 것이었다.

저분들은 과연 “각자의 교회나 노회로 돌아가서 어떻게 설교하고 권면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을 발전시켜 그 궁금증을 밝혀 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서글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목사되고 싶은 맘이 점점 줄어드는 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더 심란했던 것이다.
전도사와 목사 사이에, 그것도 평생을 목사로 헌신했다는 분들과 나와 같이 신령치 못한 전도사 사이에 뭔가 하나쯤은 다른 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치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동료 목사가 호텔을 돌다가 우연히 듣고 드려준 이야기다.
“어이, H 장로! 당신은 그 쪽에서 얼마나 받았어?”
“20 받았는데 당신들은 얼마야?”
“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그쪽으로 가는 건데...”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외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되는 순수 그 자체인 B 목사의 이야기니까 믿을 수밖에.
때문에 가장 핵심부에서 총회 선거를 지켜 본 우리의 생각은 대체로 같았다.
총회 현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돈을 주고받는 일이 관행화되어 있었고 구조적이었다.
양쪽으로부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현장에서 어럽지 않게 듣고 볼 수 있었다.
정말 이런 풍토 아래서라면 바울이나 베드로가 총회장으로 출마해도 돈을 쓰지 않고는 낙선할 것 같았다.
사실 거의 노골적으로 총알(돈)을 요구하는 민망한 전화를 우리 대책팀 목사들은 적어도 몇 건씩은 받았었나 보다.
물론 누구도 자기 몫을 요구하는 식은 아니다. 어떤 총대들을 데려왔는데 왜 빨리 해결해 주지 않느냐는 투였다.




긴급 공수된 ‘총알 봉투’

선거 당일 아침은 매우 분주했다.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은 단순했다. 총알이 언제 도착하느냐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분들이 그렇게 천박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선대위는 당일 날에도 보안 유지에 매우 신경을 곤두세웠다.

드디어 모 은행의 지점장인 재정부장 장로가 3,000만원을 현금으로 긴급 공수해 왔다.
시간이 바쁜지라 선거 장소에 투입되지 않은 나와 M 목사, 그리고 재정부장 등이 열심히 돈을 헤아려 흰 봉투에 넣었다.
각각 20, 30, 50만원씩 분배했다. 20이나 30이 가장 많았다. 특별 주문에 따라 100만원이 든 봉투도 몇 개 만들었다.
그 돈을 헤아리고 봉투에 담으면서 얼마나 참담했던지... 굴욕감을 느꼈다.
나보다는 목사 안수를 받은,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M 목사의 고통은 더 커 보였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자꾸 내 시야에 들어 왔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책팀원이 되면서 늘 해 왔던 고민이었지만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하면서는 그 고민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오전 내내 돈 봉투가 들어 있는 방을 수 없이 들락거렸다.
물증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증을 들고 양심 선언을 하기 위해 빠져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몇장의 봉투를 뺀다 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 한사람이 3천만원을 움켜쥐고 돈을 내주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어떤 장로는 100만원 짜리 봉투를 안 받았다고 하고, 팀장은 어떤 자리에서 주지 않았느냐고 부드러운 설전을 벌였다.
나는 그 상황을 주의 깊게 살폈다. 과연 저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눈앞에서 그 사건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렇게 쉽게 100만원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게 누구 돈인데”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십중팔구 헌금이 아니겠나 싶어지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실패로 끝난 물증 확보’

돈을 빼돌리고 싶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일단 그 돈을 빼돌린 다음이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의 양심 선언을 끝까지 보호해 주면서 이 부정선거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관이 보이질 않았다.

일반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이지문이나 윤석양이나 이문옥의 경우처럼 크게 다루어 줄 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기독교언론은 믿을 수가 없었다.

기독교 언론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매우 죄송한 표현이지만 나는 결코 크리스천 언론을 언론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금란교회 문제에 대한 크리스천 언론의 침묵과 비굴함을 예로 들기 위해 아까운 이 지면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한 달 동안의 시사정보를 스크랩 해주는 어떤 잡지는 ‘2580’ 보도가 온통 새간의 시선을 모으고 있을 때 단 한 줄도 스크랩해 주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 잡지가 그 문제에 대한 논평을 거부함으로 시비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랄 만큼 세상 물정을 모르지도 않는다.

나를 흥분시킨 것은 그 달의 핫 이슈, 그것도 거의 모든 교인이 알고 싶어하는 기독교의 가장 민감한 현안에 대해 단 한줄의 기사 인용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그 침묵은 무책임 정도가 아니라 비리의 묵인이고 동참이었다.

다른 언론이 보도한 자료를 논평 없이 인용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문제였던가.

따지기 위하여 편집부에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만을 듣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금란교회 뉴스보다 훨씬 작은 교회의 어떤 목사가 곗돈인지 건축 헌금인지 모를 70억을 챙겨 달아났다는 일간지의 보도는 당당히(?) 스크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목회자의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어도 거기에 실렸을까를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고도 언론을 참칭하겠는가”라고 악을 쓰고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정말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서 돈을 빼돌리는 것은 포기했다. 그러나 양심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회용 카메라를 구하고 싶었다.
돈이 수북히 쌓인 장면이며, 노트북과 집계표 용지에 기록된 명세표를 촬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용이치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노트북 컴퓨터와 집계표 용지에 기록된 자료들(어느 노회 누구 목사에게 얼마가 갔다는 상황표)을 복사해서 윤석양 이병처럼 선거 상황실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나의 양심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잠시 주어졌다. 나는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핵심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은 농담이었지만 거의 귓속말 수준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N 팀장! 나야. 지금 당회장 K 목사의 선거 상황실에서 전화하는 거야. 완전히 금권 선거인데, 나 이 자료 들고 당신 단체로 가서 양심 선언하면 나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어?”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말로는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시간은 오후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돈은 다 뿌려졌고(물증 확보에 실패했고) 선거는 조금 있으면 끝날 것 같았다. 내가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은 만일을 대비한 자료의 확보였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호텔 주변을 찾아보아도 복사집이나 문방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 상황이 끝날지 모르는데 그많은 자료를 가지고 멀리 원정을 가서 복사를 해 올 수도 없었다. 하나만 확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컴퓨터용 3.5인치 공디스켓을 찾았지만 40분을 돌았는데 헛수고였다. 겨우 지하철 역 안에 있는 문방구에서 공디스켓을 구입했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료 복사가 되지 않는 게 아닌가? 거의 컴맹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화면에 뜨는 내용 또한 전국 총회총대의 주소와 전화번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더군다나 도둑질을 하듯 상황을 빨리 끝내야 하지 않았던가.



당선사례

낙심하고 있는 사이 연락이 왔다. 당선이었다.
이제부터는 축하 리셉션을 준비하는 일이 우리 몫이었다. 호텔에 급히 뷔페 식당을 예약하고, 커다란 케이크를 주문하고, 수고한 노회와 참모 그리고 원로들을 위한 포켓용 꽃다발을 준비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직 총회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 대책팀들은 이틀 동안을 더 호텔에 머물면서 정리를 했다.
장급 여관은 이미 각 목사님들을 통해 선불로 숙박비가 제공된 상태였지만, 호텔의 체크아웃은 아직 총회에 참석 중인 총대들로 인해 기다려야 했으니까.

우리는 노보텔, 리츠 칼튼을 비롯한 호텔을 돌며 숙식비를 계산했다.
여기서 일일이 그 액 수를 밝히고 싶지는 않다. 작년 수첩 어딘가를 뒤적이면 나오겠지만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
나는 기자로 사건을 취재하는 것도 아니고 검사의 신분으로 재판을 준비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나는 이제 양심 선언이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따라 다니면서 지불되는 상황을 보기만 했다.

참고로 하나만은 밝혀 두겠다.
선거 상황실로 사용됐던 라마다 호텔의 체크아웃은 30% 할인을 받은 상태에서도 3,000만원이 넘었다고 들었다.
이 또한 여러날을 호텔에 머물면서 체크아웃을 도왔던 후배 교역자의 이야기다. 선거가 끝난 당일 날 저녁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또 벌어졌다.
저쪽 선거팀이 호텔에 아직 총대들이 있는데 돈을 지불하지 않고 달아났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씨 좋은 당회장 K 목사는 승자의 아량을 마음껏 베풀었다. 400인가 500인가 돈을 대신 지불했다니까...

선거가 끝나니 밖에서는 ‘10당(當) 6락(落)’이 회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30당(當) 20락(落)’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와서 열을 올렸다.
독자들은 이쯤해서 조바심을 내며 묻고 싶어질 것이다.

“대충 감잡았으니 각설하고 이제 본론을 말해주쇼. 그러니까 작년 선거에서 K 목사가 얼마를 썼다는 거요? 원 세상에, 말을 할 듯 말 듯 하면서 자꾸 뜸을 들이니 답답해서 어디 견딜 수가 있나?”

그런 독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해 줄 말이 없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이번 선거에 들어간 돈의 총액이 얼마인지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 총액의 규모가 주요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보았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총액의 규모에 따라 달라질 사인이던가. 그렇다고 해서 500만원을 쓴 것과 10억원을 쓴 사람을 똑같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단 돈 100원도 안 쓰는 총회 선거를 상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정치판을 졸지에 그렇게 정화시켜 주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날 것같지 않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차선과 차악을 선택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이 보다 실현 가능한 교회 정치의 개혁이 아니겠나 싶다.
액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한 말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돈을 뿌리면서 기도는 왜 하나
총액의 액수가 중요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교회 내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는 고민이 있던 대부분의 교역자들을 정말 슬프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헌금이 남용되고 악용된다는 것도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기만 당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들던 불쌍하단 생각보다 더 아프지는 않았다.
교회의 지침에 따라 “목사님께서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총회를 바로 세우게 해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교역자들은 금품 살포를 위해 돈을 헤아리고 있었다는 것을 성도들이 상상이나 했을까.
총대들을 휘젓고 다니면서 열심히 돈을 뿌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교회에서는 당회장 K 목사의 당선을 위한 24시간 릴레이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기도회는 선거가 모두 끝나고도 3시간이나 더 지속되었다.

나는 여기서 잠시 당회장 K 목사의 정견 발표에서 중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그분의 정견은 상대 후보에 비해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앞서 있었다.
그러나 우리 K 목사는 다른 것으로 승부를 걸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라는 것, 단순히 당회장 목사의 당선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지금도 1,000여명의 기도 특공대가 매 시간 기도한다는 사실을 더 알리고 싶어했다.
온 교회가 담임 목사의 당선을 위하여 매일같이 기도한다는 이야기나 하지 말지, 아니 돈을 쓰지 말던가 릴레이 기도를 시키지 말던가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 다음 주일은 성대한 축하 예배가 치러졌다.
모든 기관이 금일봉과 화환을 2열로 도열해서 당회장 내외분께 드렸다. 오케스트라의 은은한 반주와 박수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축하 순서는 진행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당선된 분에게 왜 금일봉까지 전달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화환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을까.
사회를 보던 모 장로는 그걸로도 모자랐던지 온 성도에게 기립 박수를 요구했다.
90년대말에 웬 기립 박수!
그런데 웬 일인지 지휘자석에서 바라다 보이던 그 광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TV가 비춰 준 통일 전망대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1990년대 후반을 사는지 아니면 60년대를 사는지도 헷갈렸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그 장면을 보며 김일성 생일을 떠올린 성도의 삐뚤어짐과 지도층의 과잉 충성 중 어느 것을 먼저 바로잡아야 하는지가 도무지 헷갈렸던 일이 생각난다.



총회는 끝나고

총회 석상에서 그러니까 선거가 끝났고 회무가 처리되던 총회석상에서 두 분의 교계 지도자가 타락한 금권 선거에 대하여 눈물의 호소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 분은 지금이라도 받은 돈을 돌려주자는 이색 제의를 했다고 한다.
물론 돈을 돌려 주었다는 후속 보도는 없었다.
그들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비웃는 이야기만이 난무했을 뿐, 그 두 분중 한 분의 목사와 우리 당회장 K 목사는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 때문에 두 분 사이가 몹시 섭섭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그렇게 총회는 끝났지만 가슴 속의 불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교회 내부에서는 교역자 사이에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고, 나는 그 일을 도무지 신앙 양심상 덮어 둘 수가 없어서 비장한 각오로 어필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지난 늦가을부터는 몹시 추위를 느꼈다.
결국 그 사건에 소신을 굽히지 않고 버티다가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춥던 시절 나는 버스를 타고 오가며 총회 석상에서 눈물로 호소하셨던 O목사를 참 많이 생각했다.
비록 독백으로였지만 그 분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때는 달리던 차에서 내려 그 분을 만나러 가고 싶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그토록 유명하고 바쁜 분이 나같은 교역자를, 그것도 총회 부정을 들먹이겠다고 찾아온 나를 만나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분을 만나는 것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조바심이 나 있기도 했다.
만약 그때 그분을 만났더라면 총회 결과가 번복될 수 있었을까?


눈물과 용기와 양심을 짓밟는 선거


이제 결론을 쓰려고 한다. 두세 가지를 더 말하고 싶다.
하나는 4년씩이나 몸을 담았던 교회에 대한, 그리고 K 목사에 대한 내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청년들보다 함께 사역하지 못하는 것을 더 아쉬워한 많은 선후배 동역자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나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그 교회는 90년대 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신앙 선배들이 가졌던 숭고한 신앙 전통을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교회에는 교역자들을 감동시키는 신실한 성도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교역자들의 고백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곳이 내가 섬겼던 바로 그 교회이다.

K 목사에 대하여도 나는 자랑할 것이 참 많다.
나는 아직까지 K 목사의 성경보다 많은 밑줄로 더럽혀진 성경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아버지도 성경에 대하여서라면 뒤지지 않는 분이었지만 K 목사의 성경만큼 더럽지는 않았다.
그 분의 성도 사랑과 살핌은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떠나는 교역자마다 떠날 수밖에 없는 교역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나 사랑이 그런면에서 상처 많던 나를 얼마나 감동시키고 위로했는지 모른다.
나이를 초월한 그 분의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또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분명 그 분에게는 따르고 배워야 할 많은 장점들이 있다.
때문에 이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스스로 내 몸에 계속해서 상처를 내는 고통스런 행위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도무지 협조를 모르는 비판자, 입만 있고 행동이 없는 반대자이다.
그 공동체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기 전에는 그 공동체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 나의 소신이란 것도 머쓱하지만 밝혀 두고자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들이 이 글을 쓰는 진정한 어려움은 아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비록 선거에 부정한 돈을 살포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찌 나의 죄악과 불성실을 모르는 체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선거 대책팀을 하면서 식사비와 상황이 다 끝나고 수고의 뜻으로 받았던 10만원과 20만원이 나를 많이도 괴롭혔다.
그것도 거절하지 못하는 주제에, 똑같이 더러운 돈을 되돌려 주니 못하고 먹어 치운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양심을 운운할 수 있느냐는 자책이 너무도 컸다.
내가 받은 돈은 정말 식사비였고, 6개월 동안 그 정도 수고했으면 2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애써 합리화도 해 보았지만 양심의 고통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의 가슴은 무뎌질 대로 무뎌 있었다.
돈을 받았다는 것도 주었다는 것도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선거 날의 그 고뇌와, 버스 안에서 O 목사를 향해 했던 많은 독백들, 그리고 양심선언을 생각하던 그 용기가 남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만약 금란 교회 사건이 안 터졌다면, MBC의 2580 담당 기자로부터 재판이 금란교회 측이 내세우는 조작된 증인으로 매우 불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그 기자의 신앙이 치유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무너졌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확인치 못했다면 십중팔구 나는 상처를 적당히 덮어두면서 또는 합리화시키면서 살아갔을지 모른다


글을 끝내야 하는 이 순간에도 내 마음은 갈대이고, 얼굴에는 별로 표정이 없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순전히 그것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빼앗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젊은이들의 눈물과 용기와 양심을 짓밟는 선거가 없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조용히 기다린다. 바라보련다.


-끝-









[21세기비전]어느 총대의 고민


개혁과 갱신은 누구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그것을 실제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마치 비텐베르그 성당의 문짝에 루터가 그토록 심각한 파문을 일으키리라고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되지나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글을 적고 있다. 모두가 개혁과 갱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으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쓴다.

가장 깨끗한 선거를 꿈꾸며 양심에 따라 선거에 임해야겠다는 각오로 가장 깨끗한 사람을 투표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모 후보의 진영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타락선거 금권 선거를 막지 아니하는 한 갱신의 길은 요원할 것이 틀림없다. 네덜란드의 한 소년이 둑에서 새나오는 물소리를 듣고 자신의 주먹으로 막으며 밤을 지새웠던 것처럼 사회적으로도 부정한 방법의 선거가 지탄의 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가장 깨끗하고 투명해야 할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 온다면 더 이상 구원선의 역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받은 15만원과 식사비용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돌려 줄 것이다. 지금 내 책꽂이 위에 있는 이 교통비라는 명목의 돈을 받은 다른 사람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거기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에 대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만 의로운 척 하는 것일까?

물론 나에게도 허물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속 침묵만 한다면 불의에 대한 방조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리 같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양심이 있다면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을까? 이 작은 것 하나라도 극복 할 수 있다면 하는 심정이다.

기획기사 사설/칼럼 초점/해설 독자투고/동정





[사설]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



<우리의 치부가 더이상 밖으로 새나가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복회자의 호화생활과 추문에 얽힌 송사, 기독교 이단사이비 교주의 파렴치한 행동과 그 추종자들의 반사회적인 행태, 일부 기성교회 교인의 몰이성과 광신, 종말론 집단의 사회일탈, 기독교인임을 내세우는 일부 「사회지도층」의 비리, 이런 문제들이 텔레비전 사회고발 프로그램이나 보도에서 한국 사회의 주요 병리 현상의 사례로 앞다투어 고발되고 있다. 이것이 시민사회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최근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한국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과제로 내걸고 개최한 발표회에서는 한 강연자가 『한국 교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는 이제 더 이상 분석할 필요도 없다』며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병, 곧 윤리적 타락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이 강연자는 한국 교회가 건강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대중매체는 극소수의 그릇된 목회자나 몰지각한 평신도나 사이비이단 추종자의 일탈 행위를 부각하고 일부 과장하여 우리의 현실인식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내부 비판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너무 일반화하여 역시 냉정한 현실 파악을 어렵게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고백하기 위해 「한국 교회」로 일반화된 문제도, 「아무개 목사」로 축소된 문제도 모두 「나」, 「우리 교회」, 「우리 교단」의 문제로 치환하여 자기비판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 다.

외부에 비친 한국 교회의 모습에는 피상적인 면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 중 더러는 교회가 애매하게 수난을 당한다고 안타까와하고 푸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좀더 솔직하고 냉정한 자세로 우리 스스로를 고발해야 한다.

우리의 치부가 더 이상 밖으로 새 나가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성직자와 평신도 대표가 모여 한 교단의 지도자들을 뽑는 데 금품이 오가고 지역주의가 판을 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교회의 선거에서는 비일비재한 부정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제도적이며 자원적인 감시와 견제, 그리고 시민의식의 성숙을 통해 눈에 띠게 개선되고 있 다. 그런데 한사회의 도덕성을 지키는 최후 보류가 되어야 할 교회가 사회보다 못하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또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 특정지역 특정인사의 비리와 탈선 행위를 폭로하는 고발문서까지 나돌았다. 금권타락 선거를 개탄하는 목소리는 어떤 목회자 모임이 낸 호소문을 통해서도 나왔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림에 있다고 가르치고 배운 우리는 지금 교회 안팎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극도로 가리는 일을 하고 있다. 교회로 모인 우리 스스로를 내팽개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한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기획기사 사설/칼럼 초점/해설 독자투고/동정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8-02 20:34:10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 2004.03.27 00:55
걔들 소꿉장난 잘해, 애들 얼버무리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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