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학문성 비판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기독교의 학문성 비판

안티포르츄나 0 2,491 2003.07.24 17:20


교회의 1세대 우두머리들은 꼴통이 대다수다.
현재 거의 모든 지도자들은 꼴통적 정신으로 밀어붙이기로 끝장을 봐서 성공한 케이스들이다.
그들의 성공의 비법은 자신의 언어의 매력, 또는 자신의 가르침의 내용의 능력, 자신의 현명함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그들은 오직 밀어 붙인다.
2-3세대는 이러한 꼴통적인 성향에 약간의 지적인(그리 지적이지 않지만)캐릭터를 이용하여
영업하여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교회 회중들이 지적으로 변화한다기 보다는
단지 꼴통에 싫증이 나서 똑같은 내용을 신선하게 말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정도이다

100명이 동시에 시도해서 운좋게도 성공한 5의 케이스인 것이다.
정명석 같은 놈도 뭔가 일을 저지르는데
어떤 넘이 무엇을 못하랴 우매한 대중 울려먹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성인은 대중들을 대접하기 때문에 대중을 속이고 갈취하지 못한다.
그러나 원시인들은 대중들을 개다루듯이 무식하게 다루기 때문에 추종자가 생긴다.
희안한 대중의 심리...어쩌면 꼴통들이 사는 동네에서 꼴통목사가 성공하는 게 아닌가 싶다.

1세대 목사 그들은 자신의 교회개척에 대해서 상당한 교만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교회에 대해서는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약점이 있다.
그들 스스로 못배웠다는 것에 대한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설교단상에서 학벌에 대한 타파를 외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믿음의 순수성만이 그 모든것에 앞선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너무나 자주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자신의 학벌에 대한 핸디캡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학벌을 외치면서도
일상생활의 대화와 만남 그리고 학문의 연구와 설교연구 속에서
자신의 짧은 식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심리적인 부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은 학벌의 필요성에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개먹들은 자신들의 식견이 짧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뭔가 좀 현명하고 날카로워 보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목사들의 집에 가보면 대부분 온갖 주석서와 참고서들이 빽빽하다.
그들은 이 것에 대해 은근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고
목사들의 책구입의 비용이 한국 출판계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조그만 교회의 목사라고 해도 그는 서재가 있고 서재는 몇백만원 수천만원어치의 책이 쌓여있다.

그것이 허세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많은 목사들의 서재에 꽃힌 책들의 종류에 개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똑같은 책, 똑같은 출판사, 똑같은 주제의 책들....

보통의 지성인이라면
자신이 어떤 지식을 얻고 , 그지식이 특별한 책을 다시 필요로 하고, 다시 보충하고
지식의 체계에서 고리가 끊어진 부분에 대해 다시 책을 찾고 ....이렇게 지식의 확장에 따른
책의 목록은 전체적인 흐름이 있다. 다시말해서 책들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먹들의 책은 장식이다.
그것은 설교를 하기 위해 베끼기 위한 자습서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지식확장체계 속에서 기독교는 교리적으로 무한한 단결성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 책을 쓴 사람과 똑같은 사고와 인식과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해석과 그로 발생한 믿음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확신한 믿음과 질이 틀리다."



어쨋든 개먹들의 지적열등감은 이에 확장된 형태로 학벌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그 것을 찾기가 어렵다...고등학교 성적증명서,,연합고사,,,수능으로 이어지는
각종 자격이 너무나 기간이 길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래서 눈을 돌리는 곳이 바로 해외의 신학교 부설 연구소이다.
여기서 학위를 받을 필요는 없다. 수료만해도 그의 캐리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엠디비 학위가 난무하게 된다.

성도가 60명만 넘으면 목사들은 해외의 엠디비를 하나 돈주고 살 생각을 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의 해외 엠디비 러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일반인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1년이상을 지내면서 공부하는 목사는 하늘에 별따기이다.

1년에 2번정도 일주일씩만 가면된다.
그렇게만 하면 학위를 주는 해외신학교가 널려있다. 제대로된 신학교인지 무슨 학위판매업소인지
그럴듯한 영어로 된 수료증만 받아오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어느대학원인지 어떻게 아랴..
심지어 미국에 있는 얄팍한 신학대학원은 국내에서 미국학위를 주기도 한다.
한국에 한국목사를 위한 출장소가 있는 셈이다.
미국까지 안가도 한국에서 미국 신학대학원 졸업증을 1년에 상하반기 2주만 출석하면 준다.

그리고 교회 주보 앞에다가
영어로 American Bobjohnson Collage M.Div.  수료
이렇게 적어놓고 만족해한다.


이런 지적인 열등감이 가장 확실하게 들어나는 것이 어디인가.
바로 신학교다..

신학교들은 도서관을 크게 지으려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경을 연구하는 학교가 왜 꼭 그렇게 많은 책과
큰 건물을 필요로 하는가...도서관이 크다는 것은 책의 다량확보라는 좋은 점도 있지만
지식의 전문성은 없다는 반대급부에 도달한다.
그들은 그 거대한 도서관의 규모를 통해 그들의 지식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한다.

신학교의 도서관이 얼마나 큰지 한번 가보라...우리나라 최고의 도서관은 신학교에 있다.
목사들의 서재에 일관성 없는 책들이 쌓여있는 것과 동일한 심리적인 이유로.......

신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한다.
신학교는 고등학생들과 맞먹는 수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공부를 수험생과 같이 한다.

지식의 꼬투리를 잡고 그것을 근거로 의심의 클루로 삼아
몸체를 연구해내는 자발적,능동적인 수업이 아니다.
신학교의 수업은 연구가 아니라 고등학교의 그것이다. 외우기,외우기,외우기
외우기가 지식습득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양 외운다. 그리고 또 외운다.
밤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은 외운다...

무엇을 외우는가...왜 외우는가...그들은 사전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전이 되고 싶어하는 그 들의 욕구 ...그것이 그들 현명함의 한계가 심리적으로
잘 들어난 병적인 현상일 뿐이다.

요즘 신학대학원에서는 신학만을 연구한 학생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일반대학 출신이 오히려 더욱 대접을 받는다.
많은 대형교회 당회장들이 전도사를 뽑을 때
일반대학 출신이면서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사람을 뽑는다.
상대적으로 대학때부터 신학은 전공한 사람은 위축된다.
왜 그런가 그들의 믿음이 순수하다면
이미 대학을 선택할 때부터 순수한 신앙의 연습을 한 신학생을 쓰지 않을 까.
그것이 이미 스스로 속에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순수함 보다 허세의 지식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다.

목사들 스스로가 불완전한 지식에 대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믿고 있는 바에 떳떳하고 순수하고 확신한다면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의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신학교에서 그들중에 누군가 어느정도 비판력이 있으면 대단한 대우를 받는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새롭고 신선한 접근방법을 보이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그는 메시아처럼 대접 받는다...그의 설교는 단번에 유명해져서 책으로 출판되고
교회마다 불려다니면서 설교한다.
그의 새로운 접근방법은 곧 신학적인 분파의 형성과 연결된다.

"비판력"

이 것은 신학생들이 가장 염원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온갖노력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적인 학문토양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지식체계가 닫혀있기 때문에
비판력이라는 고급지식은 결코 배양될 수 없다.

그들이 비판력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내부적인 것이다.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비판....
성경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우길 수 있는 그럴듯한 비판 만이 인정받는다.
그들의 학문은

"우물안 개구리이다."

식당에 앉아서 밥먹으면서 밥을 먹지 않고 논쟁한다.
논쟁의 내용은 별 의미없다.
누구누구 목사의 설교가 어떠니...누구누구의 정치적인 색깔에 대해서 논쟁한다.

이런 논쟁은 학구적인 방법론의 논쟁이 아니다.온통 정치와 당파와 요즘 가장 인기있는 설교방식과
성도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현실적인 목회론의 논쟁이다.

성경본문에 대한 논쟁이라고 해야
성경의 진실성은 불변이고...이 것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주관적인 해석의 충돌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학구적인 논쟁이 되지 못한다. 방법론적 절차의 논쟁이 아니다.
그냥 논쟁하는 것이다.

비판력이 있는 듯이 보이려는 허세의 논쟁이다.
비판력이 있는 듯이 보이려는 허세의 논쟁이다.


그것은 공허한 논쟁이다.
그것은 공허한 논쟁이다.

내용이 전혀 없기에 결과에 도달할 수 없는 논쟁이다.
내용이 전혀 없기에 결과에 도달할 수 없는 논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학구적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결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아무런 지식의 기본단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리적인 지식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일을 학문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전도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도 전도활동의 전략에 있어서도
최대한 연구를 해서 효과적인 의도적인 전도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어줍잖다.
그들은 대단한 의도와 대단한 열의를 갖고 있으나
언제나 근거없는 공허함을 자본으로 출발했기에
부족하다.


기독교의 학구열과 허세는 그야말로 모래위에 지어진 탑이다.


그들의 학구열은 언제나 행위의 의도성으로 전락한다.
그들의 하나하나의 행동이 어떤 의도를 지닌다는 것이 마치 학문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의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에 대해 의도적인, 계획적인, 작전적인 본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학문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학문은 학문이 아니라 처세술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학문을 한다고 도취되어 있지만
그들은 세상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듣고 평가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상한 결과없는 논쟁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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