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이만열이 같은 개독을 앉혀 놨으니 중국애들이 깝치지..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이만열이 같은 개독을 앉혀 놨으니 중국애들이 깝치지..

※※※ 7 3,423 2004.08.31 14:55

단군상 반대 세미나 1: 단군상 문제와 기독교계의 대응(2000.3.21.)

 
   
단군상 건립 반대 세미나 강연 :
2000. 3. 21.(화) 14:00 - 19:30,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
주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단군상건립반대추진위원회
이  만  열 교수(숙명여대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1. 기독교계의 단군상철폐 주장의 논리

  최근 기독교계에서는 한문화운동연합(총재:이승헌)이 건립한 단군상을 철폐하여야 한다고 오랫동안 여론화하였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단군상 건립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우상숭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역사로 보아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은 전통적으로 민족의 시조로 떠받들여진 존재이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의 이같은 행위는 자칫 민족문제와 관련, 반민족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계가 단군상을 철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대략 이렇다. 첫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승(佛僧) 일연(一然, 1206-1289)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일종의 신화에 의한 존재인데, 이것을 국조라 하여 떠받들어 섬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둘째, 단군상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참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거기에 참배하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 1, 2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이는 곧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 단군상을 초중고등학교에 세우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데, 초중고등학교에 단군상을 세운 것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째, 단군을 치켜세우는 것은 민족주의를 고양하겠다는 것인데, 세계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기독교도는 이같은 시점에서 기독교 정신과 맞지 않는 민족주의를 고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강 이같은 논리를 기반으로 하여 단군상 철거를 주장하는 기독교계는, 각종 기독교 언론매체들과 교회의 설교, 교회 교육 및 대중적인 시위 등을 통하여 그들의 주장을 나타내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단군상의 목이 잘려가난 것과 관련, 그것이 기독교도의 소행이라 하여 언론에서마저 기독교를 비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가 단군상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만시지탄이 없지 않지만, 숙고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2. 단군상 철폐를 주장하는 기독교계의 고충

  이번에 한민족운동연합이 세웠다는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은 그것을 반대 내지는 철훼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기독교계의 입지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부분이 있다. 우선 단군상을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것도 그 하나다. 민족통일 문제와 관련, 그 상징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가 ‘단군’이라는 점을 동상건립 행위가 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상 건립의 이면에는 ‘민족통일’이라는 지상과제를 명분으로 내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기회에 남북이 민족정신의 구심점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 존재는 국조 단군 밖에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계가 놓치지 않고 알아챈 그 機微대로,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감히 이의를 걸지 못하도록 ‘국조 단군’을 내세움으로 그 이면에는 어쩌면 자신들의 다른 의도를 관철하려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며, 그런 점에서 따지고 보면 그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단군상을 건립한 한민족운동연합은 ‘국조 단군’을 내세움으로 거기에 반대하는 자들 - 그들이 기독교도이건 아니건 - 을 일종의 ‘반민족주의자’로 몰아부칠 수 있는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한민족운동연합이 <단군의 목을 자르는 테러집단에 박수칠 국민은 한사람도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낸 광고에는 그런 점이 물씬 풍기고 있다.

  그들은 또 단군상을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과 공공시설 내에 세움으로 ‘국조 단군’을 민족적인 뿌리교육에 활용하려 한다. 지난 번 284개교 교정에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세운 교장들은 교정에 ‘국조 단군상’을 세우자는 제의에 선뜻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이야말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민족의 뿌리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심어주겠다는 뜻에서였습니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 가운데 식민사관은 우리를 역사조차 없는 민족으로 전락시켰지만, 사실은 만주 일대까지를 포용하던 단군과 선조들의 역사적 실체를 진실로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말이 진정 교장들 자신들의 목소리인지, 또 그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낼 수 있었는지 의심가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것은 그들이 그 본질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민사관’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과, ‘단군상’을 세워 “만주 일대까지를 포용하던 단군과 선조들의 역사적 실체를 진실로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이다. ‘식민사관’에서 단군을 말살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주 일대까지를 포용하던 단군’에서는 그들의 역사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사교육의 맹점과 왜곡을 지적하는 듯 싶은 교장님들의 말씀은 지당하지만, 그것을 단군상 건립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듯 싶다. 

  사족이 되겠지만, 이러한 ‘국조 단군상’ 건립측 내지는 건립을 동의한 측이 제시한 광고 문안상의 주장에 대한 기독교측의 대응(광고)은 그 논리가 대단히 빈약하고, 국민을 향해서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느껴진다. 기독교계 안의 고함소리는 될 수 있어도 국민에 대한 호소력은 약하다는 뜻이다. 건립 내지는 건립에 동의한 측이 민족의식과 국사교육을 내세우고 있는 데 비하여 이를 반박하고 있는 기독교계의 앞서 지적한 논리들은 빈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고함소리를 높여가며 시위로 해결하려는 기독교계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기독교계의 고충은 또 있다. 그것은 최근의 단군상 건립이 1984년~85년의 단군신전(檀君神殿) 건립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 사직동의 사직공원에 국민의 세금으로 단군신전을 건립한다고 하였다. 그 때 기독교계는 첫째 국민의 세금으로, 둘째 특정종교의 단군신전을 짓는 것은 부당하다 하여 두가지 문제점을 들어 반대하였고 이점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일정하게 끌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다 단군의 신전을 짓는 것은 단군을 신격화하는 것이며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것임으로 거기에 기독교계의 신앙적 반대의 명분도 충분하였고 그것으로 기독교계를 단합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단군상 문제에 대처하는 사정은 1984~85년의 경우와 완전히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시와는 달리 단군상을 사설단체에서 세우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문제되었던, ‘국민의 세금’ 운운할 수도 없게 되었다. 또 단군상의 의미와 관련, ‘참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신격화’하여 참배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성격만이 부각되는 부분이지, 과문인지는 몰라도 신격화를 ‘현재’ 본격화했다는 점은 아직 확증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도들의 반대명분도 그만큼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기독교계의 단군상건립반대의 고민이 있다고 할 것이다.

  고민은 또 있다. 한민족운동연합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일제 어용학자들의 식민주의사관은 단군을 말살하는 데에 앞장섰는데, 그런 전례에 비추어 본다면 단군을 부인하는 것은 식민주의사관과 가깝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때문에 단군을 역사적으로 부정하는 기독교도들의 주장은 식민주의사관에 가깝다고 비판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도들이 단군의 역사화를 부정하는 그들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당연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비판이다.

  식민사관론자들은 단군이 한국사의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식민지 본국인 일본의 역사를 능가하고 식민지 한국의 독립사상의 상징이 된다고 판단하여 한사코 이를 역사적 존재로서보다는 신화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뒤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삼국유사』는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의 역사적 존재를 설명하였는데, 현존하는 『위서』에는 단군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기』라는 기록을 인용한 내용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므로 역사적 존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민사관론자들이 내린 결론은 고려인들이 고려 후기 몽고와 싸우면서 민족적인 긍지를 높여 몽고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식민주의사관론자들의 이 같은 주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군의 신격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것은 자칫 일제의 단군말살논리를 연상케 한다. 이렇게 되자 비판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일제의 주장이었던 단군말살론을 되풀이하는 반민족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민족사에서 독립의 상징이었던 단군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제의 관학자들과 기독교도들은 동류였다고 비방해도 여기에 대응하는 기독교의 논리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

3. 사료에 나타난 단군과 그 인식의 한계

  ‘통일기원국조단군상’과 관련, 한민족운동연합이 남북한의 역사와 이념을 아우를 수 있는 존재로 ‘국조 단군’을 내세우고 있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북한의 역사학은 종래 단군 문제를 ‘비과학적’ 혹은 ‘신화’라 하여 역사인식의 대상으로서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 역사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백남운(白南雲)의 저서에서 이미 보였다. 그러다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93년 10월 북한의 사회과학원에서 단군능을 발굴하게 되면서 그 분위기는 매우 달라졌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단군을 내세우게 된 것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저의가 다분히 개재되어 있다고 비판되고 있다. 그것은 소위 ‘단군능’의 갑작스런 발굴과 유물 내용, 그 복원과정에서 막대한 경비를 들여 호화로울 정도로 단군능을 치장하였다는 데서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단군능 소재처로서의 평양의 위상과 평양 정권의 정통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남한의 경우, 단군신화를 비신화화(非神話化)하여 역사적 인식으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오랜 동안 고민해 왔다. 그리하여 단군을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올 무렵의 군장(君長)의 칭호로 이해하는 한편 그것이 뒷날 민족신화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서 신화의 비신화화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검증, 인식하려는 한 방법으로, 이 점과 관련, 필자도 이미 기독교계의 여러 모임에서 간단하게 밝힌 바 있다.

  단군이 역사적인 존재로 설명된 전거(기록)는 고려시대 이래, 단편적이긴 하지만. 꾸준히 전수되어 왔다. 우선 단군의 개국을 알리는 기록으로 일연이 쓴 『삼국유사』 기이 제 1권 「고조선(왕검 조선)」조에는 『위서』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하고, 이어서 『고기』를 인용하여 환인?환웅?단군의 삼대에 관한 신화를 실었다. 『삼국유사』의 이 기록에는 전반부의 역사적 사실과 후반부의 신화적 요인이 뒤섞여 있다. 전반부의 역사적 사실도 현존 『위서』에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여 일본인 어용학자들이 부정하였지만 그들의 주장은 최남선이나 정인보에 의하여 격파된 지 오래다.

  신화는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는 고대인의 사유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신화 속에 고대인이 겸험했전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담겨져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신화 중에 환웅이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역사학계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환웅은 자기 종족의 근원을 하늘에 대고 있는 천손족(天孫族)이 이동한 것을 의미하며, 웅녀는 곰이 여자로 화한 것이라기보다는 곰 토템족의 여자로 해석하고 있다. 웅녀란, 자기의 조상이 곰에서 나왔다 하여 곰으로 종족의 칭호로 삼던 족속의 여자란 뜻이다. 고대사의 이부체제 이론에 의하면, 단군은 천손족인 환웅과 지신족인 웅녀의 결혼관계에서 가계의 유래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승려였던 일연과는 달리 유교적 입장에서 삼국의 역사를 쓴 고려시대의 역사가는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다. 그는 사대적 입장에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썼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는 삼국 이전의 역사기록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했던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즉 “평양은 본래 선인왕검(仙人王儉)의 거하던 곳이다. 혹은 왕의 도읍지를 왕검이라 한다.”라고 남겼다. 김부식이 평양을 ‘선인왕검의 거하던 곳’이라고 한 것은 지금의 평양이 신인(神人) 왕검의 도읍지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김부식은 『고기』를 많이 인용하였는데(지리지 고구려조, 잡지 일 제사조, 열전 김유신 상 등), 앞의 왕검에 관한 기록도 『고기』나 『단군기』를 인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학자인 김부식이 고기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왕검에 관한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남겼다면, 일연이 인용한 『고기』의 단군 기사도 근거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대로, 일연이 마치 근거도 없이 『고기』를 들먹여 단군기사를 조작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처음 실린 ‘단군’에 관한 기사는 그 뒤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제왕운기(帝王韻紀)』, 조선조 권근(權近, 1352-1409)의 <응제시(應製詩)>와 그의 손자 권람(權擥, 1416-1465)의 <응제시주>, <세종실록 지리지> 및 17세기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썼다는 『규원사화(揆園史話)』와, 『환단고기(桓檀古記)』등에서 보인다. 학자에 따라서는 단군의 전승자료를 네 유형으로 나누는데, 첫째는 삼국유사형이고, 둘째는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와 자신의 손녀를 박달나무신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그 사이에서 단군이 탄생했다고 전하는 제왕운기형, 태초에 하늘로부터 신인이 내려와서 인간세상을 다스렸는데 이분이 단군이라고 설명하는 응제시형, 그리고 환인이 천지를 창조하고 환인이 창조의 마무리단계에서 인간세상에 자기의 부하인 환웅을 내려보내서 인간세상을 교화하게 했고 그가 인간세상을 교화하다가 다시 천상으로 복귀할 때 그의 아들인 제일대 단군 환검선인부터 마지막 47대 단군까지 1195년에 걸쳐 고조선을 통치했다고 하는 규원사화형을 들고 있다.

  단군이 고려 후기에 역사전면에 기록으로 나서게 된 것을 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고려 초기에는 고려가 고구려계승의식을 갖고 북방 여러 민족과 겨루며 그 전통을 자부하였다. 그 뒤 ‘묘청(妙淸)의 난’(1135)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계승의식론자들이 제거되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게 되면서는 신라계승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30년 전쟁을 거치게 되면서 내면적인 민족의식이 정립됨에 따라 단군이 민족적인 시조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연과 이승휴의 기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충숙왕(1294-1339) 때의 한 개인관리의 묘지명에서 이미 그가 ‘단군의 자손’이라고 강조하는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다. 고려 초와 중기에 고구려계승의식과 신라계승의식을 가졌던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민족의식이 성숙되면서 단군을 민족사의 체계 속에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단군은 한말 일제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에서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반외세?반침략적 독립운동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다.

  고려후기 단군을 민족적인 시조로 발견하게 되면서 민족사 인식은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되었다. 고려 때까지 거의 삼국시대를 넘어서지 못하던 민족사 인식의 폭이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그 상한선을 삼조선(三朝鮮, 檀君, 箕子, 衛滿)에 확대하게 되었다. 이같이 역사인식의 폭과 깊이가 확대, 심화됨에 따라 조선조에 들어서서 민족사는 단군을 정점으로 하여 체계화되기 시작하였고, 거기에 따라 민족문화가 정리되고 재창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세종 대와 그 이후에 나타난 찬란한 민족문화는 확대?심화된 역사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되고, 아악이 정리되었으며, 과학기술도 발달하였다. 우리의 문학을 정리한 『동문선』이 나타났고, 인문지리학을 정리하여 『동국여지승람』으로 나타났으며, 중국에서 의학서를 집대성하여 『의방유취』로 정리하면서 우리의 의학을 체계화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였고, 드디어 중국의 법체계에다 우리의 것을 가미하여 『경국대전』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조선조는 단군을 국조화하는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냈는가 하면 <단군세년가> 같은 노래를 만들어 단군을 칭송하는 등, 우리 민족이 단군의 후손이라는 것을 널리 전파하고 또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단군은 중국의 요(堯) 임금에 비견되는 민족의 시조로, 외침을 당할 때에는 민족주체성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 밖에 한말 일제하에 들어서서는 근대적인 연구방법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단군관계의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런 연구 가운데는 일제의 단군 및 한국 상고사 말살의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이뤄진 것도 있다. 단군 연구에는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김재원의 것이 두드러진다.

4. 구분되어야 할 역사화와 신격화

  필자는 기독교계의 단군상 건립반대가 자칫하면 반민족적 행위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일제가 단군의 역사적 존재를 말살하려 한 전례에 비추어볼 때, 기독교계가 단군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명분 하에 단군의 역사화를 반대하게 된다면 그런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계가 단군의 역사화를 반대하는 것은 단군상설립 반대 혹은 단군상 철폐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단군이 역사적 존재냐 아니냐 하는 것은 종교적 영역이나 신앙적 관점에서 다뤄야 할 성격의 것이 아니고 학문적 영역에서 천착해야 할 과제다. 신앙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이성과 학문의 영역에서 따지고 토론해야 할 과제다. 학문 연구에는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연구자가 갖고 있는 종교적 혹은 신앙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서도 안되고 임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자세는 비단 기독교도들 뿐만 아니고 대종교인들에게도 해당된다. 기독교인도 그렇지만 대종교인도 어쩌면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벗어나야 단군의 실체가 보일 수 있다.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색안경을 쓰고 보는 한 한국 역사상의 단군은 진면목 그대로 보일 수가 없다. 따라서 대종교든 기독교도든 그들은 한국인으로서 단군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활성화되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종교나 신앙적인 입장에 따라 단군 연구를 하려는 선입견을 떠나 학문의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단군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도들의 경우, 지금까지 단군을 대하는 태도는 선입견 혹은 편견이 심했다. 이 점은 단군상을 건립한 측에서도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계의 단군연구를 외면해 왔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또 그 연구성과를 원용함에 아전인수격으로 혹은 의도적인 취사선택을 통해 공정성을 상실하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도들은 『삼국유사』를 승려의 저작이라 하여 폄하하였고, 그 밖의 자료들도 의도적으로 외면하였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쓴,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몇몇 글을 보면, 학계가 그 동안 연구한 것을 전혀 참고하지도, 소화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종교인들도 그 점에서 오십보 백보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군을 가장 위하는 척하면서도, 학계에서 이미 위서(僞書)로 판명된 『환단고기』류를 그들의 단군인식의 근거로 삼음으로 학계의 단군인식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단군을 과학적으로 역사화하려는 것조차 가로막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가령 기독교 국가라 하더라도,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같은 내용은 건국설화로서 대단히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그것을 비신화화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독교도들은 이같은 중요한 문화적 유산마저 자신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허황된 신화’로 몰아붙이는 편협성과 독단성을 드러내었고, 대종교인들 또한 중요한 문화적인 유산인 단군신화를 비신화화하여 한국의 상고사를 연찬하려는 데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 기독교도들이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기독신자들은 학문적으로 단군이 실재인물이며 국조로 증명된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에 하등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단군의 실재가 증명되어 국조화(國祖化)된다면 그것이 곧 단군의 신격화로 나아갈 근거가 됨으로 아예 그 실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방향으로 강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비주체적이고 반민족적이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단군의 실재가 증명된다면, 그것은 민족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심을 갖게 할 망정, 그것으로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훼손케 하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단군이 실재했던 존재이고 또 국조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신격화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단군이 ‘국조’로서 존경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단코 종교적 참배나 신앙적 예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1984년-85년의 단군전 건설 문제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단군이 또 다시 신격화되거나 신격화를 위해 어떤 운동을 벌인다고 할 때,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단군의 역사화와 신격화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된다. 단군의 역사적 존재 여부를 탐구하는 역사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신격화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화가 곧 신격화로 오해되어서는 안되며, 신격화의 우려 때문에 그 역사화를 주저하거나 반대해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민족은 하나님이 축복 가운데 주신 것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민족의 시조(그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도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셨다. 역사화시키는 일이 학문의 영역이기 때문에 기독교계는 차제에 오히려 단군의 역사화 여부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그 연구에 힘쓰거나 연구를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오히려 단군의 신격화를 막는 데에도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덛붙여, 기독교인들도 차제에 조형물에 대한 관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단군상 건립과 기독교계의 대응>에서 간간하게 언급한 바 있다.

5. 현재 건립된 단군상은  단군의 역사화와 가치관 확립에 기여할 수 있는가

  앞에서 단군의 국조화와 단군연구에 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였지만, 한말 일제하에는 나라가 외세의 강점위기에 처함으로 단군을 중심으로 한 ‘단군민족주의’가 일어났다. ‘단군민족주의’는 단군을 민족운동의 중심에 놓고 자강독립운동과 국권회복운동을 강화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하여 ‘민족종교’로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민족종교로 숭앙하는 경우도 독립운동과 일정하게 관련을 맺고 있엇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른 바 대종교 혹은 단군교는 민족종교화의 작업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종교들은 한 때 항일독립운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해외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들 가운데는 많은 애국자들이 대종교와 관련을 맺기도 하였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도 한때 대종교와 관련을 맺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한글학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상동(尙洞)교회에서 교회장으로 마지막 길을 갔지만, 한때 대종교에 입문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군민족주의’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단군과 관련하여, 주의를 요하는 것이 있다. ‘단군민족주의’가 자칫 단군을 신격화하거나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든지, 최근에 부쩍 강조되고 있는 『규원사화』나 『환단고기』류의 기록을 이용, ‘과학적 단군인식’에 혼선을 가져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민족운동연합이 각급학교에 세운 단군상에 부기해 놓은 단군소개는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운동연합이 단군상을 세우면서 단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단군상을 건립한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단군상과 함께 써 놓은 일종의 ‘단군상 건립기’다.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건립하며
동방에 찬란한 정신문화를 꽃피웠던 동이배달 겨레의 유구한 역사는 세계사 속에서 실로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B.C 7197년 중원대륙 천산에 안파견 한인(환인, 桓人) 천제께서 하늘로부터 천부삼인을 받아 세상에서 나라를 세우셨으니 국호는 한국(환국, 桓國)이다. 한국(환국)의 마지막 왕이신 지위리 한인(환인) 천제께서 B.C 3898년 태자(거발한)에게 천부삼인과 천부경을 하사하시니 이를 받아 무리 3000명을 이끌고 천산에서 삼위 태백산 기슭으로 옮겨 신시를 세우고 국호를 '배달'이라 선포하셨다.
18대 거물단 한웅(환웅) 천황께서는 웅족의 황녀를 황후로 맞아드려 태자를 낳으니 한배검(왕검) 단군이시다. 한배검께서는 38세 되던 B.C 2333년 수도를 아사달(오늘날의 백두산 기슭)로 옯기고 천부삼인과 천부경을 이어받아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으로 조선(단군조선=고조선)을 세우셨다.

배달시대 18대 조선시대 47대의 제왕들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큰 뜻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음을 볼 때 모두 성인 중의 성인이심이 분명하며 그 핏줄을 이어받은 배달겨레는 세계에서 찾기 힘든 유일한 문화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일제 식민시대에 이르는 약 2천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사실 6962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 식민사관에 동조하여 단군 이전의 역사는 신화로 취급하여 성인이신 단군을 곰의 자식으로 전락시키는 웃지 못할 현실에 처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한가?

이를 평소 애통스럽게 여기고 평생을 민족 정신 광복에 전념해 오신 한민족운동 연합 총재 일지 이승헌님의 제안으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힘을 모아 분단 반세기를 넘긴 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과 민족사 바로 세우기의 정신을 담아 전국에 360개의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 건립을 추진키로 하고 한문화운동연합회원들의 도움으로 여기에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을 세운다.
이곳을 참배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며 가슴 속에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큰 정신을 간직하고, 겨레의 얼을 되새겨 밝고 강한 민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
이 동상은 신라시대 화가 솔거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조선 시대 한배검님의 영정을 원형으로 하여 조각가 이흥수가 제작하였다.

                                단기 4332년 정월
                        한문화운동 연합 총재 일지 이승헌
                        통일기원단군상 건립추진위원 일동”

  이 건립기의 내용을 통해 한민족운동연합의 단군 인식과 단군상 건립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이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위의 글에서 보여주는 역사인식은 그 동안 단군에 관한 역사를 배운 일반 국민들의 역사인식과는 동떨어져 있고, 학계에서 이미 위서로 규정한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류의 역사인식을 과학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이다. 단군조선이 B.C. 7197년에 건립되었다는 것은 학계의 검증을 받은 바도 없고, 지금의 역사연구방법으로서는 좀처럼 증명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말한 몇몇 위서들이 전하는 내용을 과학적인 분석이나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을 채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단군상이 세워진 곳이 초?중?고등학교임을 감안할 때,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학계의 검증을 받지 않은 역사인식을 심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단군상 건립자들은 그들의 ‘애족적인 동기’와는 달리 후세들에게 역사인식상의 엄청난 혼란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들이 알았다면 이런 무모한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문화운동연합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在世理化) 정신을 교육하여 밀려드는 외래 문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튼튼하게 심어주기 위해” 단군상을 세우고, 건국이념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튼튼하게 심어’ 주겠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상고사를 통해 과연 그들의 애족적인 충정이 뜻대로 반영될 것인지 의심된다. 한민족운동연합의 ‘우국충정의 선한 동기’와는 반대로 이같이 검증되지 않은 역사인식 위에서 건립된 단군상은 오히려 민족사를 오도시킬 가능성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단군상 건립이 이같이 검증되지 않은 역사인식을 유포하는 계기가 된다면, 단군상 건립의 선한 동기가 오히려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만약 단군상 건립운동 자체가 우리 나라 상고사 인식에 혼선을 제기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단군상을 각급하교에 건립한 한민족운동연합이나 그것을 용납한 학교장들은 여기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 건립기에는 천부경(天符經)이 소개되어 있다. 천부경은 단재 신채호가 일찍이 위서(僞書)로 취급한 바 있지만, 대종교가 이를 경전으로 수용한 바 있으므로 단군상 건립이 대종교와 관련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천부경은 1909년에는 밝혀지지 않은 경전이지만, 1975년 대종교 교단의 교무회의를 거쳐 경전으로 정식 펀입되었고, 1983년 간행된 『대종교요감』에 처음 경전으로 실리기 시작했다. 『대종교요감』에 의하면, 천부경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천하를 교화하기 위해 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진경(眞經)’이라고 하였다.

  단군상 건립기에 천부경이 언급됨으로써 단군상 건립이 대종교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민족운동연합은 지금까지 계속 단군상 건립이 특정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부정하였고, 그러기 때문에 공공시설물 안에 설치해도 거리낌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고 또한 정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좀 심하게 말한다면, 그들이 세운 상이 역사적인 국조(나라의 시조)의 상이 아니라 ‘종교적인 교주의 상’ 혹은 ‘종교적인 상징물’이라고 비난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특정종교와의 관련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특정한 종교와 관련있는 상징물을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의한 기독교계의 주장은 그만큼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해온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한민족운동연합이 지금과 같이 단군상을 계속 건립하여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려는 뜻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자신들의 신앙적 이념에 따라 가르칠 교육기관을 세우고 그 안에 단군상을 설립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본다.

  우리 국민은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자든, 세종대왕상이나 이순신장군상을 학교나 공공시설에 세우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온 국민의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단군같이 신격화의 대상이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누구도 믿지 않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군상의 경우는 다르다. 단군이 한국사상 ‘국조’라고 인식하고 있는 국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단군상 건립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세종대왕상 등의 다른 조형물과는 달리,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신격화하는 종교와 국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각급 학교에 건립한 단군상에 특정종교의 경전을 언급하여 그와 관련되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004

  셋째, 건립기에 단군과 우리 민족을 신성시하는 내용을 강조함으로 민족우월의식과 국수주의적인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조선시대 47대의 제왕들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큰 뜻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음을 볼 때 모두 성인 중에 성인이심이 분명하며 그 핏줄을 이어받은 배달겨레는 세계에서 찾기 힘든 유일한 문화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이 내용은 민족적인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선한 동기’에서 쓴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족우월의식을 부추기는 냄새를 부정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이같은 민족우월의식 내지는 과장된 민족의식을 가르쳐 과연 그들이 열린 민족의식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혹은 세계와 더불어 사는 열린 세계주의를 제대로 갖게 될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 이같은 민족우월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시오니즘을 양생하고 나치즘을 낳게 한 분위기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은 굳이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따지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과장된 민족우월의식이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갖게 된다는 것은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단군이 필요합니다>라고 외친 교장님들은 과연 이런 점까지를 고민하면서 자신들이 관리하는 교정에 단군상을 세웠으며, 신문지상에 성명서를 내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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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한주 방 2004.08.31 22:29
저런사람 대가리에는 뭐가 들었을까? 저렇게 해골이 텅빌수도 있나? 그 차~암 ~ 도데체 이해가 안가네 저런넘이 교수라니
기가 꽉 멕힌다. 단군성조여 천지신명이시여 이땅에서 개독을 몰아내어주시고. 야훼를 불러다가 지넘 종자 노예들 빨리
데려가라 하옵소서.
왜 이스라엘의 귀신이 이땅의 선량들의 혼을 갉아먹는지.
먼저 간자들은 말이 없어니 개독의 후손들이 지랄을 하지요
먼저간 개독들아 지금 이땅의 개독들에게 한말씀해봐라.
지금 지옥은 개독들의 영혼으로 가득차있다고.......
이성의힘으로 2004.08.31 21:48
저런 친일 사대주의 새끼가...저런게 교수랍니까?
단군은 실존인물입니다. 누가 단군보고 야훼따까리짓하듯 한답니까?
저런건 공개처형을 해야합니다.
오호라 2004.08.31 19:06
이런 개딱가리 새끼들 때문에 중국 땡놈들이 고구려 역사를 호시탐탐 노리는것 아니오.
10R놈들 단군이 우상숭배면 좆같은 예수 9x2놈은 머냐? 그새끼도 우상 아니냐?
순박한나그네 2004.08.31 16:26
역사학자 교수 및 선생들을 비롯 역사와 관련된 모든 곳에서
개독들을 배제해야 합니다.
무소유 2004.08.31 15:43
개독 교수 저 개호로자식..환단고기나 단군 내용을두고
"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류의 역사인식을 과학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이다. " 라고 씨부리는데 그럼 사막잡신 야훼는 ?
과학적인 검증이나 천국지옥이 검증 됐나..미친새끼 방언이네 뭐네 해서 골수환자들
죽었다 부활했다며 천국 구경하고 왔다는 소릴 믿으란 말인지.. 미친 개독교수..열받네.
이래도한세상 2004.08.31 15:33
도대체 누가 학교에 단군상 보고 '신이여~' 합니까? 누가 단군을 신으로 안다고.. 단지 국조라 칭송하는거지..말도 안되는 ..
참 안타깝네요 저런 인간이 어떻게... 저거 완전 국사책을 성경으로 바꿀인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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