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톨릭에서 본 한국 개독교 [펀글]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개톨릭에서 본 한국 개독교 [펀글]

꽹과리 0 3,001 2003.10.09 22:48
오늘날처럼 다원화되고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상대방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종교란 삶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궁극적 의미를 제공하는 절대적 신념체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타종교에 관해 언급한다는 것은 적어도 학문적인 입장을 떠나서는 자칫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신교는 기성 교단만 하더라도 1백 개가 넘고 있으며 각 교단마다 신앙적 흐름이나 활동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를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시각장애자가 한 부분만 더듬으면서 코끼리 전체를 논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타자의 눈을 통해 살펴보려는 주최 측의 '열린 마음'이 어떠한 이야기도 감싸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평소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한국 개신교에 대한 소회를 열어보기로 한다. 오늘의 말씀은 천주교 측의 공식적인 의견이나 천주교 신자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아니다. 단지, 종교사회학을 전공하는 한 천주교 신자 개인의 소견일 뿐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한국 개신교를 바라볼 때 가장 부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발간되는『크리스챤 월드』가 1993년에 발표한 세계 대형교회의 순위를 보면, 세계 10대 대형교회 안에는 한국 교회가 1위와 2위를 포함하여 5개 포함되어 있으며, 20위 안에는 10개, 그리고 발표된 50위 안에는 23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조선일보〉1993년 2월 8일자, 23면 참조). 한국 개신교가 선교 원칙을 제정하여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 1892년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 개신교는 불과 1백 년만에 세계 선교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놀랄만한 성장을 나타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은 하느님의 은총일 뿐 아니라 신자들의 적극적인 전도활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실상, 한국 개신교 신자들의 선교 열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남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기꺼이 증거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물을 아낌없이 헌금하며, 적극적으로 선교한다. 이러한 한국 개신교 신자들의 열성적인 신앙생활은 천주교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된다. 최근, 한국 천주교 일각에서 가두 선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선교활동은 개신교의 노방 선교활동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성장을 선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종교의 발전이나 성장이 양적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개신교가 경이적 성장을 이루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파간의 대립과 분열, 시한부 종말론을 비롯한 성숙되지 못한 신앙의 표출, 무인가 신학교의 범람과 신학교육 수준의 저하, 자체의 비리를 성스러움으로 포장시킴으로써 사회적 공론으로부터 제외 받으려는 풍조 등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몸이 커지면 생각이 성숙되어야 하고 행동 또한 어른다워야 한다.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에 걸 맞는 사회적 도덕적 의무도 함께 지녀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종교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가 과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종교로서의 도덕적 책임감을 지니고 있으며, 다종교상황을 나타내는 한국의 종교적 상황에서 성숙한 종교문화의 형성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개신교 신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초월하는 성스러움과 궁극적 세계를 추구한다. 세상 속에 함몰되어서도 안 되고 세상으로부터 초월해서도 안 되는 것이 종교의 특성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이 되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5:13∼15, 루가 13:20∼21)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위반되는 것들을 복음적인 것으로 인도하라는 분부라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사회 풍조는 성장주의와 친미·반공주의였다. 이 두 가지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발전을 위한 목표로, 또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독재정권들이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항용 내세워 온 지배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였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의 사회풍조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이러한 사회풍조가 수반하는 반(反)복음적인 것들을 복음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 개신교가 나타낸 모습은 성장주의나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의 극복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사회 풍조들을 교회 내부로 유입시키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성장주의가 수반하는 사회적인 병폐들, 예를 들면 물질주의·물량주의·개인주의·경쟁주의·업적주의·형식주의·권위주의 등과 같은 풍조들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개신교가 광복 이후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보급의 기지로 적극적인 기능을 하여 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실, 성장주의는 한국 개신교가 초기부터 추구해 온 교회의 대표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자급적이고 자립적이며 자치적인 교회를 지향한다는 네비우스(Nevius) 선교 원칙에 따라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개교회의 자립과 성장에 전력을 경주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고 친미·반공 이데올로기 또한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지배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였다. 주로 미국 개신교로부터 복음을 수용하였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친미적 성향을 나타내는 동시에,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유신론과 유물론의 대결구도로 파악함으로써 반공을 신학적으로 확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성향은 미군정 기간과 이승만 정권 기간을 거치면서 정치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한편, 다종교 상황에서 종교적 우위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는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보급의 기지로, 또한 미국문화의 수용 통로로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 한국 개신교의 선교사들이 한국 천주교를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라고'고 비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 또한 '미국보다 더 근본주의적이고 더 미국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비만증은 유연성을 상실케 하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한국 개신교가 종교로서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자체의 성장과 사회적 영향력의 강화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더 과감히 나누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수난과 고통으로 이어져 온 민족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투신하는 한편, 민족의 전통문화와 만나 대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탈산업사회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보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른 정보화와 세계화이다. 또한 정보화와 세계화는 다양한 문화들간의 접촉과 교류를 촉진한다. 따라서 전통사회에서와는 달리, 오늘의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 신념, 종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하나의 가치나 신념만으로 사회를 통합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종교적 신념체계는 궁극적 존재나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절대성만 고집하면서 여타의 것들은 사악하거나 이단인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기 쉽다. 만일, 한국사회와 같이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는 다종교사회에서 하나의 종교가 자신의 절대성만을 내세우면서 다른 종교들을 배척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공허한 사투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종교간의 대립과 갈등은 엄청난 사회갈등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긴장과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견지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보다 성숙된 자세가 필요하다. 즉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적 신념체계를 견지하면서도 다른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인 선과 사회적 가치를 긍정하고, 그러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협력하려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은 일차적으로 복음을 신앙의 핵으로 삼는 그리스도교 교파들간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랜 동안 개신교를 교회로부터 갈라져 나갔다고 하여 '열교'(裂敎)라 지칭하던 천주교에서는 1960년대 초에 개최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그리스도교 교파들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공의회에서는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일치의 재건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 사이에 촉진하자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라고 선언한 다음(제1항), "분열은 분명 그리스도의 뜻에 위배될뿐더러,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 수행에 지장이 되고 있다."(제1항)고 천명하면서, 천주교회는 개신교 신자들을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제3항)고 선언하였다. 이때부터 세계 천주교회에서는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를 '일치주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 중에는 미사 때나 기도 때마다 "같은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주님을 모시면서도 서로 갈라져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미움과 불신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문' 중에서) 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에는 전 세계의 많은 개신교 교회들도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국 개신교만은 이 운동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상당수의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를 '마리아교', '이단', '적 그리스도교', '음녀(요한 묵시록 17장) 등으로 지칭하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타종교에 대한 한국 개신교 신자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극도의 배타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족 간의 종교 갈등을 비롯하여 훼불사건, 단군상 파손 등과 같은 타종교 시설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거의 모두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촉발되고 있다는 사실들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타종교에 대한 배타와 공격적 태도는 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로서 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중림동성당의 전소(全燒) 사건이나 명동성당의 제대 파손 사건, 그리고 제주교구에서 9개 성당과 2개 공소에서의 20여 개의 성모상 파괴 사건 등은 경찰의 조사결과 모두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으로 밝혀졌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한 뿌리에서 나온 교회들이다. 하느님의 인류구원역사는 종교개혁이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초대교회를 거쳐 중세교회를 지나 근대교회로, 그리고 오늘의 교회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어 자신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미워하는 것은 성부·성자·성령의 일치의 하느님을 신앙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화해하고 사랑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이고, 세상의 복음화도 보다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내용들은 결코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동안 한국 개신교가 나타냈던 모습을 보면서 갖게 된 소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이 한 개인의 소감만은 아니라는 점은 그 동안 폭발적 성장을 나타내던 한국 개신교가 최근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자체 집계를 보더라도 1999년 말 신자 수는 전년도에 비해 1,029,327명이나 감소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관광부, 2000, 7쪽),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연구한 조사보고서(『한국개신교인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 '98 한미준 한국갤럽 조사보고서』, 서울: 두란노, 1999)에서는 비신자들이 새로이 신앙을 가질 경우 선택할 종교로는 불교 42%, 천주교 38%, 개신교 21%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개신교의 기여 여부를 묻는 항목에 대해 88%가 '없다'나 '모르겠다'라고 응답하였으며, 전도를 받을 때의 느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는 응답이 84%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 개신교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 측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안 한국 개신교가 나타냈던 성격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의 지적들은 한국 개신교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는 물론 한국의 모든 종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 주최 측에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개신교를 포함하여 한국의 종교문화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화해와 일치를 통해 이 땅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하느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친다.

노길명(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개톨릭 주교회의 신앙교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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