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김삼환 가세 ... 김삼환 사모하는 개독들 보거라...

비정상적인 개독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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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0 3,772 2004.08.23 16:57
김삼환 목사의 금란교회 입당예배 설교

한국교회 병들게 하는 '교회 대형화=하나님의 축복'
2001년 06월 11일 00:00 [조회수 : 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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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교회(담임 김홍도 목사) 입당 예배를 축하하면서 행한 김삼환 목사(명성교회)의 설교는 교회 건축의 대형화를 찬양하면서, 이를 강력하게 부추기는 설교였다. 교회의 대형화가 반드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교회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을 은혜의 척도로 삼음으로써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신학적 오류가 그의 설교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홍도 목사 자신의 비리가 아직도 명확하게 정리되고 있지 않고, 대형 교회의 신앙적 방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고통과 시련’이라는 식으로 짚고 넘어가고 있다. 또한 교회 건물의 대형화가 한국 교회의 나갈 방향이라는 식으로 못박아 교회 건축에 몰두하는 것을 신앙적 성숙과 동일시하는 쪽으로 논의를 몰고 가고 있다.

이러한 논법과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그리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갈 길의 이정표로 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우리는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의 곳곳이 경제적 고통과 부담으로 신음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 건물을 최고, 최상으로 짓는 것이 구원의 징표인 것처럼 역설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함께 논의해 보는 것은 방향타를 잃고 있는 ‘교회론’의 실체를 바로 잡는 일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바로 생각하고 아는 일은 교회 건축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는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을 잡아줄 것이다.

대형화 지향하는 교회 건축론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입당 예배용이라는 점에서 교회 건축의 의미를 설명하고, 건축을 축하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 건물의 건축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입당 예배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은 교회 건물의 건축 과정에서 들인 신도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이 건물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임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를 신앙적인 차원에서 전개할 때 등장하는 신학적 논리와 성서적 근거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김삼환 목사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몸이요, 주님의 나라라는 정의를 내리고는 이렇게 못박는다.

“교회는 주님의 거룩하고 신령한 몸이지 절대로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 자체를 교회라고 여기지 말라는 것이며, 보다 중요한 교회의 실체는 하나님의 신령한 몸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 나올 수 있는 논리는 건물이 어떠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된 교회로서 우리 자체가 성전이 되고 있는 것을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성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회론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규정이다. 예루살렘의 거대한 성전을 보고 경탄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이 건물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일갈하셨던 것은 교회의 건물이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시고, 교회 건물의 웅장함 자체로 신앙을 대체하려는 위선적 경향에 대하여 노골적인 질타를 하신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삼환 목사의 설교 대목인

“교회는 주님의 거룩하고 신령한 몸이지, 절대로 건물이 아닙니다”
는 성서적 근거로 볼 때 옳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교회론은 중간에 갑자기 건물 자체에 집중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교회는 신비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이 잘 되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아버지 집 성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그럴 만한 신앙적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가장 소중한 사건을 이것이라고 한다면 매우 타당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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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이 과연 인
간이 교회건물을 짓는 열정
과 그에 들이는 자원의 수준
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인
가?(사진 김승범)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교회가 귀한 줄을 알고 교회를 아름답게 짓고 교회를 거룩하게 짓고 최고의 정성을 다하여 최고의 모든 재료를 동원하여 아버지 집을 짓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왜 크게 짓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몰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크게 지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크게 짓는 것보다 교회를 크게 지었던 문화와 권력과 국가가 하나님 앞에 한없는 복을 받고 또 다른 것도 다 잘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가는, 인간 존재의 신앙적 건축 과정을 중시하고 이를 강조하는 신학적 깊이를 담아내는 논리가 아니라 건물로서의 교회를 최상으로 짓는 것이 축복의 요건이 된다는 쪽으로 그의 설교는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최고의 재료’를 동원해서 ‘크게 지을 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교회 건축론’의 핵심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집, 교회의 가치가 지상의 재료가 가진 질적 수준으로 판단되고 그 규모로 가늠된다면 이것은 외형적 조건으로 하나님의 집을 평가하는 논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최상의 재료가 아니고 크지 않은 교회는 그렇지 못한 교회에 비해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적으로 건축의 조건이 떨어지는 교회를 짓는 문화, 권력, 국가는 그렇게 하는 문화, 권력, 국가에 비해 축복의 질 또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과연 인간이 교회 건물을 짓는 열정과 그에 들이는 자원의 수준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인가? 이보다 더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있을까? 하나님이 교회를 제대로 짓지 않았다고 축복을 덜하시고, 잘 지었다고 더 축복하시는 수준의 하나님이라는 식의 논리가 진정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인가? 그렇다면 갈릴리 선교 사역에서 한 번도 교회 건축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시고, 교회 건축의 기준과 내용에 대한 기본적 지침에 대하여 가르치신 바 없는 예수님의 삶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사도 바울이 언제 교회 건축을 가지고 논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여기에 연결시킨 바가 있는가? 그는 교회의 건축을 신앙 인격의 성장으로 정의하면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가 서로를 버팀목처럼 받쳐주고 그로써 최상의 은사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삼환 목사는 사도행전이 곧 교회행전이라고 했는데, 사도행전 어디를 읽어보아도 교회 건축과 관련한 복음적 논의가 없는 것을 그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김삼환 목사가 거론하고 있는 바울의 에베소교회 교회론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로써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새롭게 변화하여 사랑 안에서 자라나라는 격려의 말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교회 건축의 수준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을 논하는 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실체를 왜곡하고 교회 건축을 통한 교권주의적 영광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서구 기독교사는 교회 건축의 대형화가 교권주의적 위용과 연결되어 끝내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서구 기독교사의 현실도 자신의 대형교회 건축론을 포장하기 위해 철저하게 곡해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서구 기독사도 교회 대형화하면서 교권적 횡포 늘어

교회를 크고 웅장하게 지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예를 김삼환 목사는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의 설교를 들어보자.

“오늘의 유럽이 1500년 내지 2000년 동안 이렇게 세계를 향하여 위대한 일을 하고 앞서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를 귀히 여기고 교회를 잘 지었기 때문입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이 즉위하면서 교회 시대가 유럽으로 불붙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부흥합니다. 교회의 종탑이 높이 올라갑니다. 신전을 짓던 나라들이 신전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높이 세웁니다. 경기장, 운동장을 크게 세우던 저들이, 목욕탕을 크게 세우던 저들이, 다 무너뜨리고 교회를 높이 세우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크게 지으면서 저들은 성장합니다. 국력도 세계적인 국가가 되고, 저들의 도덕도 회복되고 경제도 발전하고 저들의 문화와 예술도 한없이 부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1700년 동안 저들의 하늘과 땅이 모두 번영을 이룬 이유는 교회를 앞세우고 교회를 최고로 생각하고 물밀듯이 교회를 찾고 교회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영적 부흥과 함께 능력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굉장한 것 같지만 다른 나라 가서 구경해 보십시오. 그 나라가 십자가 높이만큼 높아지고 교회만큼 풍요로워지고 교회를 세우는 것만큼 그 민족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우선 유럽의 발전을 모두 교회의 덕으로 돌리고 있으며, 따라서 유럽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워진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기독교가 유럽의 정신을 석권하면서 초기에 존재했던 신앙적 열정과 헌신은 그야말로 순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대형화하면서 신앙은 지배의 도구가 되고, 교권적 횡포가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한 것에 대한 이해가 김삼환 목사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유럽 중세가 교회의 절대적, 교권적 지배로 인해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고 신앙을 병들게 했으며 대형교회 건축을 위한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교회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과 적대감이 깊어졌던 역사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역사적 뿌리에는 중세 유럽의 교권적 교회 건축이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는 점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럽의 발전이라는 것이 식민주의적 팽창 정책에 따라 비기독교 지역을 정복해 유린한 결과의 측면과, 기독교를 앞세워 종교 탄압과 인종 청소에 이르는 학살들을 저질렀던 역사에 대해서도 눈감고 있다. 유럽의 교회가 최대의 지주(地主)로 존재하면서, 유럽 농민들의 피를 빨고 그 위에 군림했던 반기독교적 역사에 대한 반성적 이해 역시 그에게는 없다. 이 모든 사태가 교회를 웅장하게 건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史實)은 서구 기독교사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지 못해 저주받은 땅으로 터키를 예로 들고 있다.

“터키에는 소아시아의 안디옥, 서머나 등 일곱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전부 버리고 이슬람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이슬람 교회를 세운 터키는 터졌다 하면 지진입니다. 불쌍해서 볼 수 없을 정도로 터키 경제는 엉망입니다. 터키는 안됩니다.”

지진이 일어나 터키인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식인데, 이렇게 되면 지진이 일어나는 곳마다 그런 식의 사태 해석이 있게 될 것이고 그 해결은 교회를 세우면 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과연 그럴까? 교회를 세우면 터키의 지진은 해결되는가?

한국교회 병들게 하는 '교회 대형화=하나님의 축복'

김삼환 목사의 이러한 논법은 결론적으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에 대한 지원과 찬사로 이어진다. 김홍도 목사의 비리를 덮고, 그를

“더 밀어드려서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금란교회 입당 예배는 ‘대형교회 건축을 이끈 김홍도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라는 식의 논리가 그의 설교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교회 건축의 대형화를 부추기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시키면서, 교권적 영광을 강조하는 김삼환 목사의 설교 같은 주장들이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는 보기이다.  

작고 초라한 교회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있을 때 그것이 교회의 축복인 것을 격려하고, 능력이 많아져서 크고 웅장한 교회가 될 때 조심해야 할 바가 또한 무엇인지 깊이 있게 일깨우는 설교, 그것이 오늘날 이토록 방황하고 있는 한국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요체가 아닐까? 대형 교회를 적대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 정작 있어야 할 성령의 놀라운 힘과 그 힘의 축복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감격, 이것이 교회의 기쁨이 되는 성서적 본질로 돌아갈 때 대형 건축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 병든 교회론은 한국 교회에서 추방되고 힘을 잃게 될 것이며, 작은 교회들의 아름다움도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꼬리말 쓰기꼬리말 쓰기 

dongyoul lee 지랄하고 자빠졌네 .. 이새끼 진짜 사탄같은 새끼네 .. 교회가 대형화 되면 어때 병신아 교회가 맨날 빌빌되고 .. 쬐끄매 서 되겠냐 목사님이 주님앞에 겸손하시고 .. 예수님 잘섬기니깐 교회가 자연이 커지는거지 또라이 띨박같은 새끼야 . [2004/04/19]

인드라 니가 사탄아니냐? [2004/04/19]

권광오 내가 봐도 저게 사탄이네... ㅋㅋㅋ [200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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